※ 본지는 정일웅 박사(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가 지난 6월 30일 경기도 광주 유나이티드 히스토리 캠퍼스에서 열린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설립 22주년 학술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한 논문을 연재합니다.
그러면 코메니우스가 가장 중점을 둔 기독교 교육의 방향과 과제는 무엇인가?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2. 코메니우스가 지향했던 교육 방향의 실제적인 두 가지 과제?
하나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주께로 다시 돌아오는 방향전환(회개)이며, 다른 하나는 돌아온 기독인들이 복음의 빛을 비추며, 뒤틀린 삶의 정황(세계)을 개선하는 그리스도의 동역자로 활동하게 되는 일이다. 원래 이것들은 구분되지만, 실제는 분리할 수 없이 서로 연결된 하나님의 일(Opus Dei)이 분명하다.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두 가지 방향의 과제성취를 위해 교육을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인류구원과 세계개선의 사역에 교육적 수단의 적극적인 활용 때문에, 그 당시, 코메니우스는 “신인협동설”(synergismus)을 주장하는 구원론자로 오해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고전3:6)라고 한 사도바울의 말씀에서 모든 오해는 극복되었다. 그리고 “중생, 즉 회개”는 신학적으로는 교육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독자적 은혜에 의한 것임을 코메니우스는 분명히 하였다. 그래서 그는 후에 세례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 세례를 기독교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이웃과 세상을 향하여 복음의 빛을 비추는 세계개선(개혁)의 일은 성령의 협력을 전제한 그리스도의 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책임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세계개혁의 필요성은 역시 땅에 사는 인간의 복된 삶을 목표했지만,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의 준비와도 연관성을 지닌 종말론적인 의미가 전제되기도 했다.
어쨌든 회개와 세계개선의 이 두 가지 과제는 코메니우스의 초기 작품인 “세상의 미로와 마음의 낙원(천국)”에서 벌써 잘 제시되었으며. 코메니우스가 인간교육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특히 앞서 소개한 7권의 미완성 대작에서도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할 것이다. 독일의 교육철학자 샬러교수는 코메니우스의 교육적인 대작품 “범교육학”(Pampaedia)의 연구에서 코메니우스가 목표한 교육 방향의 두 가지 과제는 “메타노이아”(Metanoia)와 “인스티투티오”(Institutio)의 관계로 해명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오며(metanoia,회개), 원래 부여한 창조세계의 다스림의 책임을 망각한 인간을 깨우쳐, 그 사명을 바르게 수행하도록 본래 신분의 위치에다 세우는 것(institutio)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코메니우스의 두 가지 과제는 생각하면 한국교회가 그간 성실하게 지향해 온 우리 목사님들의 목회 사역과 같은 것이었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지속해야 할 21세기 기독교교육의 방향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목회자들은 이 시대에 기독교교육실천의 책임자들이며, 모범적이 교사라 할 것이다. 생각하면 한국교회의 어떤 목사님들은 교회의 사명인 이 두 과제를 분리하여 두 번째 과제보다 첫 번째 과제성취에만 책임을 말하고, 두 번째 과제를 간과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아마도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복음의 사회적 실천을 외면한 모습인지를 코메니우스에게서 도전받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본 코메니우스 연구소는 목사님들의 이러한 막중한 교육 목회적인 과제 실천을 돕기 위하여 앞으로 목사님들을 깨우는 재교육의 과제를 힘쓰려 하며, 여기 “히스토리 캠퍼스”는 그러한 교육 실천의 장(場)이 되기를 염원한다.
3. 신 형상회복은 21세기의 기독교 교육이 지향해야 할 실제적인 과제이다.
코메니우스는 바로 인간의 신 형상회복의 과제 때문에, 부모의 자녀교육 책임을 도우려도 “어머니 학교의 소식”이란 책을 만들었으며(1631), 동시에 잘못된 방향에 놓여 있는 일반학교교육의 개선을 위해 “보헤미아의 교수학”(1632)과 후에 “대교수학” (1657)이란 이름의 수정된 책자를 출판하였다. 이 문서들은 오늘날까지도, 신 형상회복을 위한 인간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사교육지침서”이다. 심지어 일반학교의 교사와 특히 기독교 대안학교의 교사, 교회학교의 교사들이 읽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귀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코메니우스의 신 형상회복의 과제는 오늘날 일반교육학이 지향하는 인성교육, 또는 전인교육의 목표와도 연관성을 가진다. 그러나 코메니우스가 지향한 목표는 타락한 인간의 신 형상회복에 두었다. 그의 인간론을 잠시 소개하면, 인간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중앙에 자리한 존재로 인식했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 교육학이 지향하는 인간의 주체성(Subjektivitaet)과 자율성(Autono- mie)확대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창조세계 안에서의 기능적인 역할의 의미에서였다. 특히 거울과의 비교에서 코메니우스는 그 기능적인 역할의 의미를 잘 말해 준다. 인간에게는 이성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것은 둥근 공이 거실에 걸려 있는 모습처럼,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의 현상을 붙들고, 그것들을 반사하는 거울의 역할로 본 것이다. 거울이 그 기능을 잘 수행하려면, 올바르게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빛이 그 위에 비추어져야 한다. 인간이 세계 전체를 하나님께 반영할 때, 그의 과제는 거기서 올바르게 이행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코메니우스는 그 당시 스콜라주의 신학에서 설명했던 대우주(macrocosmos)와 소우주(microcosmos)의 관계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밝힌다. 인간은 하나님의 것(우주 전체)을 축소한 모사(模寫)라는 것이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생각은 신풀라톤주의 유출설의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나아와 하나님으로 말미암다가 다시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관계를 밝힌 것이다(롬11:36). 그리고 인간의 신 형상은 부여된 이성의 사유능력과 자유의지의 선택이 올바르게 행사될 때, 하나님께 가장 뚜렷하게 일치된 모습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고, 하나님 자신을 그 형상 안에서 볼 수 있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불린다(시8:4-5). 모사된 인간의 형상이 원형상을 닮아가면, 갈수록 더욱더 모사(模寫)는 명예롭게 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지닌 자질이나, 속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Relatio)로 인식한 점이 특이하다. 하나님의 형상은 선물(Gabe)로 주어진 은혜이며, 그다음은 과제(Aufgabe)로 여겼다. 인간은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을 완성케 하는 매체이며, 인간은 창조의 완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며, 그의 동역자인 것이다. 생각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것에 따라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인간에게 부여된 목적인 셈이다. 이러한 코메니우스의 신 형상론은 코메니우스의 독창적인 신학이 분명하였다. 인간의 타락은 올바른 신분 관계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며(관계의 단절), 죄는 다른 장소(場所)에 머무르게 된 인간존재 안에서 생기는 일이다. 인간이 더이상 하나님의 빛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거울은 공허(空虛)하게 되며, 인간이 경험하는 것은 허무(虛無)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에게 부여된 신적인 과제를 수행하기에도 부적절한 존재인 것이다. 그는 역시 미로에 갇힌 것처럼, 맹목적인 모습이 된다(자기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상태). 거기서 그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려고 애써본다. 자신을 더욱 의지하면서, 역시 자신이 가진 힘과 빛을 더욱 신뢰하며, 자신의 장점과 자존감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며, 허망함과 불행한 모든 육체의 슬픔을 경험하는 것뿐이다.
오직 자기 자랑과 명예에 근거를 둔(3:27) 인간의 이러한 뒤틀린 형상은 자기 자신의 목적과 사물들의 목적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인간이 그의 타락을 통하여 그의 목적을 상실한다면, 창조는 미완성인 채 머물러 있게 된다. 창조가 완성되게 하려면, 인간은 다시 올바른 장소로 옮겨져야 하며, 올바른 장소로의 옮김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그는 인류의 복구자이며, 그분에게로 향하는 방향전환(회개)에서만 인간의 치유와 그의 본래 목적으로의 되돌림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야만 인간은 그의 본성의 타락에서 벗어나, 원상태로 되돌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말한 인간이 이성적인 본체와 사물에 대한 주인이며, 자신 스스로 왕이며, 그의 창조주의 기쁨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인간이 그리스도와 닮은 태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모든 의지는 전적으로 타락되었으며, 스스로 행하는 것에서는 멸망으로 향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하게 된 하나님께로 향함을 코메니우스는 신앙(경건)이라 부른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되돌려졌다면(회개/은혜), 그는 부여된 과제(Aufgabe)를 올바르게 수행하고, 세계를 개선하는 일이 거기서 가능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기독론은 중요한 의미가 나타난다. 즉 그리스도는 참된 하나님의 원형상(골1:15)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생산하게 된다. 그는 “우리 안에서 더럽혀진 하나님의 형상을 재생산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시아이시다(롬8:29). 여기서 코메니우스는 그리스도의 3가지 직분을 중요하게 여겼다. 즉 선지자(교사)이며 제사장이며, 왕이 되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빛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교사(선지자)가 되시며, 자기 자신을 희생(속죄 제물, 십자가)으로 드리기 위하여 제사장이 되시고, 모든 피조물과 무엇보다도 자기를 다스리기 위하여 왕이 되신 분이시다. 자신에게서 이러한 3가지 직분을 성취한 그리스도는 그의 공동체(택한 자)를 이러한 3가지 직분 가운데서 섬길 일꾼으로 부르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의 성령을 통하여 학문(선지자,교사)과 종교(제사장)와 정치(다스림)의 영역에서 온전한 개혁이 관철되도록 그의 공동체 전체를 능력있게 해 주시는 것으로 이해한다. 코메니우스는 이러한 개혁을 일으키는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그리고 사도바울이 모든 구속자의 이름으로 말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는 사실을 코메니우스가 다시 선포한다. (계속)
정일웅 박사(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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