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2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창조적 선물로서 일과 안식’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최 교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생명력과 온전성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기본 방식으로 표출된다. 바로 일과 안식이다. 이 둘은 상반되는 양식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동일한 출처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 바로 삶의 온전성”이라고 했다.
이어 “일과 안식 모두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다. 일과 안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통전성 안에 있다”며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과 안식 사이의 창조적 긴장과 통전성을 포기할 때는 양편이 따로따로 미친 듯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 이것은 우리 문화에서 일과 안식과 관련하여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일한다는 것이다. 일의 능력은 죽은 자와 산 자를 갈라놓는 차이점”이라며 “하지만 일은 단순한 행동 이상의 것이다. 일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세계를 표현하고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포함한다. 일이란 우리가 성령과 더불어 세계를 공동 창조하는 행위이다. 일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표현하고 배우는 장이다. 우리가 일을 창조적 선물로서 이해할 때 일 또한 영적 실천으로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어 “충만하고 온전한 삶은 일하는 삶 이상을 포함한다. 바로 ‘안식’”이라며 “안식은 창조의 다른 한 형태다. 안식도 창조적 선물로서 일과 분리될 수 없는 재창조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일과 안식은 온전한 삶의 핵심 요소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모든 일과 안식, 노동과 휴식은 모두 창조적 선물로서 영적 가치를 지닌다. 하나님은 인간을 일하는 존재로 지으셨을 뿐 아니라 안식을 누리는 존재로 지으셨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에게 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축제와 같은 친교를 위해서도 영감과 은사를 주신다. 하나님의 영은 일과 안식 둘 모두 가치 있게 한다. 이 둘은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다(미로슬라브 볼프, 일과 성령, 221-22)”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세상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은 쉬셨다고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셨듯이 일곱째 날에 ‘메누하’(menuha, 안식)가 창조되었다. 엿새 동안 창조가 이루어진 뒤에 메누하가 없었다. 안식일이 되자 메누하가 왔다”며 “그리하여 우주가 완전해졌다. 이런 맥락에서 평일의 노동과 일곱째 날의 안식, 낮의 일과 밤의 잠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며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른 온전한 삶은 일과 안식, 노동과 잠이 균형을 이룰 때 온전해진다”고 했다.
최 교수는 “안식의 중요한 특징인 휴식은 그저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나 눈앞의 쓰임새를 떠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묵상하고 즐길 수 있는 정신적, 영적 태도”라며 “일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중요한 수단이듯이, 휴식과 여가도 하나님께 드리는 삶 즉 예배하는 삶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어 “일과 안식, 여가, 쉼의 균형을 잡는 신학적인 기초를 견고하게 다지는 것이야말로 의미 있는 일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는 보편적으로 여가나 휴식을 더욱 더 창조적인 일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가는 단지 더 창조적인 일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을 일하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의미를 일만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된다는 뜻으로 이해서는 안 된다”며 “하나님도 스스로 일하신 후에 쉬셨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많다(창 2:2). 쉼과 여가도 일과 같이 그 자체로 생기를 불어넣는 선한 요소다. 따라서 인간은 일이 없으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지만, 일만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다면 설령 교회의 사역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팀 켈러, 일과 영성, 50)”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쉼의 가치를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안식과 쉼을 방어할 책임이 있다. 진지하게 쉼을 가지려면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우리의 쉴 권리를 주장하며 삶 가운데 쉼을 위한 공간을 개척해서라도 만들고 방어해야 한다”며 “진정한 노동과 쉼은 자신의 시간을 돈과만 맞바꾸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노동과 쉼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능력과 비례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우리는 진정한 쉼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쉼은 달력에만 의존하여 누리기에는 너무나 가치 있고 중요한 창조적 선물”이라며 “창조적으로 일을 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만큼이나 쉼도 창조적으로 누리는 것도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쉼의 형태인 잠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안식도 하나님께 봉사하는 영적 행위”라며 “출애굽기 20장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연결시키고 있다. 안식은 쉼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아름다운 속성을 즐기며 높이는 행위이다. 일이 매우 역동적으로 경험되어질 수 있듯이, 안식도 다양한 형태로 경험될 수 있다. 참된 안식은 예배, 기도, 쉼, 여가, 잠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온전성의 회복으로서 일과 안식 또는 여가에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며 “사람이 일하고 쉬는 것은 각각 독립된 활동으로 드러나지만, 일과 안식은 분리해서 이해될 수 없다. 일과 안식은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상호작용의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일과 안식은 상호순환의 특성을 가진다. 일과 안식은 우열이나 대립의 관계가 될 수 없고, 상호 균형과 상호 순환의 리듬으로 존재한다. 일과 안식을 논할 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의 온전성으로서 일과 안식에 대한 통전적 조망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창조주가 세워놓은 일과 안식의 리듬을 존중하지 않으면 결국 삶은 병들고 만다”며 “진정한 안식은 창조주께서 정하신 일과 쉼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다. 창조 질서의 리듬을 따라 일과 쉼 모두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안식”이라고 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안식이나 여가를 실용적인 공리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라며 “안식을 더 효과적인 일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안식을 일에 종속시키는 관점 말이다. 사회뿐 아니라 교회 역시 삶의 온전성으로서 일과 안식의 통합성을 소극적으로 대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가 안식이나 여가에 대해서 소극적인 이유는 의무, 신실, 봉사, 자기부정 등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여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성경 공부 등만을 영적인 실천으로 여기고 여가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교회가 단지 친교나 여가를 위한 장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단지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 것밖에 모른다면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며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 공유하는 여가 활동을 함께 나누도록 권장해야 한다. 교회가 성도들을 위한 여가 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라고 했다.
또한 “기독교의 구원은 단지 영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육체적, 정서적 차원까지 회복하는 것”이라며 “여가도 우리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기 위한 쉼과 회복과 관련되기 때문에 여가도 인간을 온전하게 회복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점에서 여가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요소”라고 했다.
최 교수는 “많은 교회가 주일을 예배 주일로만 이해하고, 쉼과 여가와 관련된 주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교회는 예배와 같은 영적인 실천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만, 쉼과 여가도 영적인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교회에서 실천하는 예배, 성경 공부, 기도회 등은 영적 여가의 유형들이다. 이러한 영적 여가들만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주일에 육체적, 정서적으로 쉬는 것도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다. 하나님도 제 칠일에 쉬셨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쉼과 여가도 주일 성수와 깊은 연관이 있다. 따라서 주일 오후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성스러운 안식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교회가 주일 오후에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교 중심의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성도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영적 안식을 누리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며 “예를 들면 매월 한 번씩 성도들이 소그룹으로 자연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여유를 누리도록 할 수도 있고, 좋은 카페에서 몸과 마음이 평온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수도 있고, 성경을 한두 장 읽고 묵상을 하며 영적 위로와 안식을 경험하도록 도울 수도 있고, 소그룹 별로 특성에 맞게 치유 중심의 독서모임을 하도록 안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0~40대의 소그룹은 건강한 부부를 위한 독서모임, 60대 이상의 소그룹은 노인의 고통과 우울증을 위한 독서모임을 통해 치유를 경험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에너지를 가지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며 “교회의 적극적인 창조성은 사역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의 영적 안식을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교회의 이러한 창조성은 성도들이 삶의 온전성을 경험하도록 돕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