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에서 지난 21일 열린 상반기 마지막 ‘워십 위드 지저스(Worship with Jesus)’ 집회에서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인 이지선 교수(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가 ‘삶은 선물입니다’(고후 4:6~7)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지선 교수는 대학교 4학년 때 오빠의 차를 타고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중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중화상을 입었다.
이 교수는 “먼저 정신을 차린 오빠가 저를 꺼냈을 때는 이미 제 상반신에 불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오빠가 저를 안고 나오자 차도 폭발했다. 그전까진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고, 세상의 어려운 일들은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 교수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사고를 만났지만 헤어진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고를 당한 피해자로 살고 싶지 않았고, 또 하나님도 저를 피해자로 살게 하지 않으셨다. 길다가 어깨를 부딪치면 툭 털고 가던 길을 가지 주저앉아 울면서 내 인생이 망했다고 하지 않는다. 저도 사고와 만났지만, 어깨를 툭툭 털고 그다음시간을 살아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이어 사고와 헤어지는 과정 중에 받은 선물들을 나눴다. 이 교수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고, 생과 사를 오가는 어려운 시간이 있었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옆구리엔 폐에 찬 유독가스를 빼기 위해 튜브도 꽂혀 있었고 의식도 없었다. 제가 기도할 수 없었던 그 시간에 저를 위해서 권사님, 집사님들이 1분도 기도가 끊기면 안 된다고 릴레이로 금식기도 해주셨고, 하나님께선 그 중보기도에 응답하셨다”고 했다.
이어 “의식이 돌아오고 폐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산소호흡기를 뗐다. 눈도 못 뜨는 깜깜한 중에 입에 빨대를 넣어 물을 조심스럽게 넘겼는데 너무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 물을 마시고 나서 살아남기 위해 지나와야 할 과정들은 그때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어려운 시간이었다. 사는 게 죽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늘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제가 마셨던 물맛을 기억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맹물마저도 큰 기쁨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살아 있어서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집중하면서 그 시간을 지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지선 교수는 전신 55%에 전신 3도의 화상을 입어 재생되지 않는 피부에 여러 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 했다. 그는 “7개월 만에 얼굴까지 피부 이식 수술을 마쳤고 이제 학교도 가고 성가대도 서고 곧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이식한 피부가 쪼그라들면서 얼굴에 변형이 오기 시작했고 목이 당기면서 턱이 내려앉고 입이 안 다물어지니까 침을 흘리게 되고 척추는 다 굽어졌다. 거울을 들여다볼 용기도 없었다. 밤에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 숟가락에 비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얼굴이 아니라고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썼던 시간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어느 토요일 오후 재미있는 예능프로그램을 보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사고 전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엔 제 삶이 너무 많이 달라져 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아픈 걸 참고 견뎌도 그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보게 되었다. 현실을 보고 나니까 마음에 절망이 가득 찼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파트 옥상을 찾아서 올라가는 일, 또 하나는 하나님을 찾는 일이었다”고 했다.
이어 “몇 시간 고민하다가 교회에 가서 따져보기로 했다. 살려달라고 했지만 이런 삶을 살게 하실 줄은 몰랐다. 교회에 가서 불도 못 켜고 맨 앞자리에 엎드려서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전지전능하시다는 그 말이 너무 야속했다. 살려놨으면 대책이 있으실 거 아니냐고 왜 나에게 아무것도 하시지 않냐고 몇 시간을 따지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으셨다”고 했다.
다음날 주일 아침, 교회에서 이제 더 떨어질 바닥도 없다고 마지막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던 이 교수에게 하나님은 위로와 약속을 주셨다. 이 교수는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께서 저를 껴안아 주시면서 기도하시는데 ‘사랑하는 딸아’라고 시작되는 기도였다. 저조차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을 한 저에게 여전히 사랑하는 딸이라고 하시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나님은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서 저를 위로하시면서 두 가지 약속을 주셨다. 너를 세상 가운데 반드시 세우시겠다고 그리고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네가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할 거라는 약속이었다"고 했다.
이어 "기다렸던 약속은 아니었지만,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아주 분명하게 여기가 끝이 아니야, 내가 준비한 해피엔딩이 있으니까 제발 여기서 슬프게 끝내지 말아 달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다 이해할 순 없었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해피엔딩을 나도 살아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 내일부터 어떻게 사는 거지 하는 고민은 제 소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엄청난 자유를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제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달라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서 8개월 동안 저에게 일어난 일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음에 용기가 자라나기 시작했는데 거울을 보는 일이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자꾸 보니까 정이 들고 조금씩 가까이 가서 보게 되고 오래도 보게 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저를 다시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정하고 싶었던 제 모습을 다시 제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안고 사랑하는 그 힘은 내 안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여전히 저를 향해서 사랑하는 딸아,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가족, 친구, 교회 식구들 모두 내가 사랑했던 자매가 여기 살아있다고 같은 마음으로 대해주시는 그 마음이 진짜 사랑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분들이 받아주신 그 사랑을 내가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고, 그 사랑의 힘으로 제 자신을 다시 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저를 인정해주시고 받아주신 그 마음의 힘으로 제가 저를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을 글로 쓰기 시작했고 책으로 출판되었다. 인생에 예기치 않은 불행과 사고를 겪고 흉터와 상처를 살아가는 분들에게 제 책이 전해졌고, 제가 붙잡은 그 삶의 희망을 나도 붙잡고 다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담아 편지를 보내오셨다. 흉터는 지우고 싶고 가리고 싶고 쓸모없는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시니까 이런 흉터와 상처도 누군가에겐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며 살게 해주셨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제가 사고 이후 받게 된 선물 중 하나가 아픈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제가 받았던 사랑과 도움의 힘을 나눠줄 수 있는 꿈을 꾸게 해주셨고, 아픈 이들을 함께 회복시켜가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공부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지선 교수는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는 “저와 비슷하게 화상 경험을 청소년·청년들을 연구했는데, 수많은 화상 경험자들 간에도 인생의 전체를 흔드는 트라우마 경험을 한 이후에 선물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외상 후 성장이 많이 일어난다는 걸 발견했다. 트라우마를 겪고 나면 스트레스가 발생하는데, 동전의 양면처럼 나쁜 스트레스가 반대로 좋은 것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 빅토르 프랭클 박사는 불행에는 본질적으로 좋은 것은 없지만 불행으로부터 좋은 것을 이끌어내는 건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들 이 위기를 지나고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나서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꽃병이 깨진다.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잃고 싶지 않은 게 때로 깨지는 일이 발생한다. 깨지고 나면 누군가는 남을 비난하고 그 화살을 자신에게 돌려 자신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깨진 꽃병의 조각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산산조각이 나서 예전으로 돌릴 수 없지만, 이 조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거라고 마음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작업을 하시는 거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빅토르 프랭클 박사는 모든 자유가 빼앗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유가 있는데, 그 자유는 바로 내 삶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라고 했다. 우리에게 그 자유가 있다. 학자들은 외상 후 성장으로 가려면 생각을 계속해야 한다고 한다. 제가 사고를 당한 사람이 아니라 만났지만 헤어진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결론은 바로 끊임없는 생각의 되새김질로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깨어진 조각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슬픔, 불안, 공포, 외로움, 섭섭함, 고통에 대해서 편안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어려울 때 글쓰기도 추천한다. 교회 안에서 나누는 나눔도 좋다. 훨씬 더 건강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건 사회적 지지다. 네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걸 믿는다고 손잡아주는 순간의 존중과 관심과 애정과 신뢰가 이 모든 스트레스를 이길 동력을 만들어낸다. 제가 사회적 지지를 통해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던 것처럼 사랑하는 자야 우리 함께 일어나 같이 가자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교회 안 공동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서로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제 인생을 돌아보면 외상 후 성장으로 갈 때 다시 쓰기가 최고였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다시 쓰기 하는 거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다시 쓰기를 하고 계시다. 이사야 6장 13절에 슬퍼하는 자를 하나님이 다시 부르셔서 너는 이제 의의 나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자라고 하신다. 고린도후서 4장 6~7절을 보면 어두운데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말씀이자 예수님 자신인 그 빛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 내 인생, 내 몸이 질그릇이라면 저는 와장창 깨져서 산산조각이 났는데, 하나님은 너는 깨어진 그릇이 아니라 이 보배로운 것을 담은 보물 그릇이라고 저를 다시 불러주셨다”고 했다.
이어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다시 불러주셨고 사망 권세 아래 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 아래 두어 주셨다. 하나님은 다시 쓰게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인생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다시 쓰게 하실 것이다. 이미 하셨고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다. 깨어진 그릇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빛을 담은 보물 그릇이다. 슬퍼하는 자가 아니라 이제 의의 나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자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인생에 시련이 오고 우리를 상처 내고 깨어지게 하는 일들이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서면 좋겠다. 그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부르시는 그 음성이 진리임을 믿고 우리 인생을 다시 쓰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같이 바라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