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우리가 잘 아는 이 말씀은 지혜롭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함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올바른 판단력이 자라나길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에 대한 올바른 조언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지혜를 깨닫게 해주며 훌륭한 사명과 비전을 말해줍니다.
잠언은 솔로몬 왕과 여러 지혜자들의 말을 담고 있으며, 세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분(잠언 1-9장)은 지혜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지혜는 그에게서 배울 학생을 찾는 선생으로 의인화되어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잠언 10:1-22:16)은 솔로몬의 잠언이 기록되어 있으며, 마지막 부분(잠언 22:17-31:31)은 여러 다른 지혜자들이 남긴 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자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황금기에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통일시켰습니다(왕상 4-9장). 솔로몬은 잠언을 모으고 노래를 만들고, 식물과 동물을 분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업적은 진정한 예배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을 만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즉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봉헌식 당일 이 성전은 과거 성막을 세운 날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 미래가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가 온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잠언이란 도덕적 진리에 관한 짧은 서술입니다. 비록 많은 잠언들이 현실에 적용할 수 있지만 잠언서의 목적은 단순히 조언을 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이 책의 보다 깊은 의도는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경건한 인격을 형성하는 데 있습니다. 잠언서 뒤에는 모든 진정한 지혜의 근본이신 오직 한 분 지혜로우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현명한 자는 그분의 지혜로 인해 찬양하며 매일의 삶에서 길잡이가 되어 주시는 그분의 계명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반대로 지혜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습니다.
잠언서는 실천적인 예배를 강조합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5:8) 우리는 삶에서 그분의 지혜를 찾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 21:3)
고대의 전통적인 지혜들과 달리 성경의 지혜는 여호와께 예배 드리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참된 지혜는 일반적인 상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분의 방법 그리고 우리의 경배 혹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근거합니다. 예배하는 삶은 생명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고 지혜로운 걸음을 준비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를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께 순종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잠언이 예배 예식과 예배 실천에 대해 매우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왕이 제사장이나 선지자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던 것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솔로몬의 잠언은 공식적인 예배 예식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가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이며, 이는 지혜의 근본이 됩니다.
예배의 환경이 다양해지고 지역도 넓어졌지만, 오늘날 예배하는 예배자들 역시 솔로몬이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장소는 하나님과 그 백성들이 서로 만나기 위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와 왕국은 이 장소들에 국한되지 않으나 성소가 있다는 것은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됩니다. 예배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을 주셨고 솔로몬에서 보이셨던 바로 그 신실함으로 그 언약을 지켜주고 계심을 기억하게 됩니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잠언서의 실제적 지혜로부터 분명 유익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지혜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을 봅니다. ‘지혜’가 가르치기 위해 사람을 불러 모으듯이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 우리가 지혜로써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찬양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를 더욱 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 구하게 됩니다.
행동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에는 우리가 한 행동이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잠언은 현숙한 아내를 칭찬하며 마무리됩니다(잠 31:10-31). 이 말씀을 보면 그녀는 성실하게 일하며 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예쁜 옷을 만들며, 사업에도 소질이 있어서 농장을 사고 자신의 소지품을 팝니다. 가족들에게 친절하며 필요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칭찬하고 축복합니다. 참으로 이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내이자 엄마의 참된 모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 말씀은 진실을 한 번에 말하기도 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 말하기도 합니다. 잠언은 젊은 남자에게 문란하고 규율이 없는 창녀를 피하라는 경고로 첫 장을 시작합니다. 마지막 장은 첫 장과 반대되는 특징을 가진 선하고 현숙한 여인을 칭찬합니다. 즉, 두 번째 여인의 초상화는 이전 장의 지혜의 가르침들을 요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장의 타락한 여인의 모습이 잠언의 지혜 말씀들을 통해 현숙한 여인이자 참된 예배자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저자는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를 행하고 있는 현숙한 여인이자 참된 예배자의 삶을 하나님의 모든 예배자들은 본받아야 합니다. 예배자는 지혜를 추구해야 하며 지혜롭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치 허무주의를 연상시킵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여러 곳에서 “헛되고 헛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전 1:2) 어떻게 이런 냉소적인 표현이 성경에 속해 있을까요? 또한 전도서는 많은 이들이 앞만 보고 달리며 성취한 후 느끼는 진정한 허무와 환멸을 말해줍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전도서의 저자는 전통과 글에서 솔로몬 왕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오직 ‘교사’(히브리어 ‘코헬렛’)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긴 연설(전 1:12-12:8)과 그에 앞서는 짧은 서문(전도서 1:1-11) 그리고 에필로그(전도서 12:8-14)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도서의 메시지는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그의 노력에 대한 시원스런 고백입니다. 세상에 대한 관점은 냉소적이며 싫증 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을 거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잘 보이기 위해 하는 매끄러운 말보다는 거칠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솔직한 것에 더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 모든 냉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와 하나님의 관계에 의문을 표하거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전도서는 또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키워야 함을 알려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작은 개념의 틀보다 얼마나 더 크신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지으시고 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교만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전도서는 예배에서의 미사여구와 진부한 말, 반복되는 수다와 같은 독에 대한 해독제입니다(전 5:1-2).
전도자의 메시지는 진실하고 영원한 의미의 유일한 근본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딜라드(Raymond B. Dillard, 1944-1993)와 롱맨(Tremper Longman, 1953- )은 함께 쓴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신약으로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전도자가 고통스레 경험했던 공허함과 헛됨에서 구원하실 분임을 본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것에서 풀어주시기 위해 세상의 공허함을 경험하셨다.”(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1994, 255p)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오셔서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보여주시고 우리를 깊은 구덩이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세세한 부분에 역사하셔서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하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공의로 심판하시고 우리의 선한 일에 축복과 상을 내리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도서의 전도자는 하나님이 예배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 존재의 환경과 여건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예배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가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불의와 불확실함,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예배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고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것인지 말지를 결정해야하는 것뿐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하나님을 알아야 만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분명히 알면 알수록 우리는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떠나서 인생을 즐길 수 없습니다(전 2:24-25). 그리고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전 3:13). 또한 우리의 행위 모두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려줍니다(전 9:1). 전도서의 전도자는 자신의 뛰어난 지혜로도 인생의 신비를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불의와 고통이라는 주제를 두고 고민한 또 한 명의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생각으로만 하지 않고 몸으로도 고민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인생은 여전히 의문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것들을 이미 극복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해야만 그 문제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전도서의 전도자처럼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예배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다”라고 확실히 선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때가 있다고 말해줍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자는 이 구절로 시작하는 한 편의 대조시를 소개합니다(전도서 3:1-8).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전도자의 마음속에는 ‘때’, 곧 ‘시간’이라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시의 각 구절과 각 행위들의 사이를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만 우리의 행위는 그렇지 않습니다(전 3:1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라질지라도 그분은 그렇지 않고 영원하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전 3:11).
전도자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 12:1).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곧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그분에 대한 헌신의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것은 우리 예배자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