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이야기] 작곡가 신앙인 멘델스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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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미션대학교 윤임상 교수

천재 음악가 멘델스죤(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은 19세기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Romanticism)음악을 주도 하면서 요한 세베스챤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를 오늘날 있게 만든 장본인으로, 지금까지 유럽에서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라이프지히 음악원(University of Music and Theatre "Felix Mendelssohn Bartholdy" Leipzig)을 설립한 교육가로, 그리고 라이프지히의 명성 높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ra)의 지휘자 로 활동하며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한편, 신앙인 으로서의 멘델스죤을 조명해 보면 그가 가진 교회음악철학이 오늘을 사는 교회음악인들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다.

먼저 그는 서양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를 재 조명하여 오늘날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 받게 한 역할을 하였다. 바흐는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마지막엔 라이프지히 성 토마스 교회 음악 감독으로 생을 살았고 슬하에 20명의 자녀를 두다 보니 항상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면서 그의 작품활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급급하게 지내게 되었고, 또한 당시 유명한 작곡가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이나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같은 음악가들의 빛에 가려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한 가운데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어느날 멘델스죤은 바흐의 마태 수난곡(St. Matthew Passion BWV244)을 발견, 그 곡을 해석하면서 뛰어난 가치를 깨닫고 연주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바흐의 다른 음악들을 소개 하면서 그를 서양음악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음악가로 평가 받게 한 것이다.

한편 그가 세운 라이프치히 콘서바토리(Leipzig Conservatory)는 오늘날까지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음악학교로 성장시킨 위대한 음악교육가였다. 지난 1992년에는 독일 최고의 연극학교인 한스 오토 연극학교(Theaterhochschule Leipzig)를 흡수해 라이프지히 펠릭스 멘델스죤 바르톨티 예술대학으로(Hochschule für Musik und Theater "Felix Mendelssohn Bartholdy" Leipzig)개명을 하고 오늘날까지도 계속적으로 뛰어난 예술인들을 배출하는 학교로서 독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유명한 음악인들은 뉴욕 필하모닉을 크게 성장 시키고, 음악을 통해 독일 통일에 큰 공헌을 하고 얼마전에 작고한 유명한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Kult Masur 1927-2015), 독일의 대표적 합창 지휘자, 작곡가인 게오로그 크리스토프 빌러(Georg Christoph Biller 1955-) 19세기- 20세기 초 체코 음악의 자존심이라 일컫는 레오시 야나체크(Leoš Janáček1854-1928) 등 수많은 유명음악인들이 있다. 이처럼 음악교육가로서도 멘델스죤은 역사적으로 크게 평가 되고 있다.

멘델스죤은 짧은 생을 살면서 당시 독일을 대표하는 라이프지히의 명성 높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ra)의 뛰어난 지휘자로 활동 하였다. 이 오케스트라는 1781년 창단되어 지금까지도 독일의 정통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표본이 되고 있는 가운데 그 유명세를 이어 오고 있다.

그 동안 카를 라이네케(Carl Heinrich Carsten Reinecke 1824-1920), 아르투르 니키쉬(Arthur Nikkisch 1855-192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 1886-1954) 브루노 발터(Bruno Walter Schlesinger 1876-1962)등 독일의 가장 대표적 지휘자들이 이 곳을 거쳐 갔고 현재는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1953- )가 지휘를 맏고 있다. 멘델스죤이 그의 나이 20세에 이 유명한 그룹의 지휘자 가 되었는데 이 때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가며 바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등을 연주 하면서 역사를 뒤로 한 음악의 선배들을 재 조명하여 음악 역사를 재 창조 하였고, 자신의 창작곡을 사회에 선보이는 역할을 하며 오늘날의 지휘자 역할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지휘자 였다.

멘델스죤은 여느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깊은 신앙을 소유한 개신교 음악가 였다. 원래 유태인인 그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루터교로 개종하여 세례를 받게 하면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 멘델스죤은 항상 성경을 가까이 하며 말씀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 그리고 원본을 충실히 해석하여 그것을 음악에 접목시키려 부단히 노력했던것 같다. 그것은 그가 쓴 두 개의 오라토리오 가사를 만드는 과정을 유추해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처음 쓴 오라토리오 사도 바울(St. Paul Op.36)은 바울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기 위해 그의 절친한 친구 개신교 목사인 쥴리어스 슈블링(Julius Schubring1806-188)과 사도행전의 내용을 구약과 연관시켜 연구하여 원본을 충실히하여 가사로 접목 시켜 음악에 대입시켰다.

한편 그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오라토리오 엘리야(Elijah Op.70) 를 극음악으로 만들기 위해 당시 극적인 대본을 가장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나 있는 칼 클링게만(karl Klingemann 1798-1861)에게 부탁을 했다가 각 장면들의 극적인 요소는 잘 나타냈지만 성경의 원본을 의역화 하여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그와 손을 떼고, 다시 슈블링 목사와 손을 잡고 그 곡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그는 말씀을 말씀대로 올바로 해석해서 음악에 붙이려 부단히 노력했던 음악가였고, 단순한 예술 행위와 연주를 위해 작품을 쓴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과 복음을 드러내기 위한 음악을 만들었던것 같다.

 멘델스죤은 음악가로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었던 뛰어난 예술인이었고, 균형잡힌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무엇 보다 귀한 것은 그가 품었던 교회음악에 대한 이해가 오늘을 사는 교회 음악 지도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또 무대 예술을 위해 음악을 했던 당시 유명한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찬양의 본질에 대해 깊이 주목하였고, 성경을 성경대로 음악에 접목시키려 했던 진정성있는 교회음악인이었다.

오늘날 교회음악은 점점 더 미를 추구하는 탐미주의적(Aestheticism) 사상에 심취되어가고 있다. 말씀과 전통의 본질이 외곡된 채 현대 사회만을 대변하는 실용주의적(Pragmatism) 교회음악으로 대중화 되어가고 있는 이 현실에 신앙인 멘델스죤이 외치고 있는 교회음악철학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싶다.

윤임상 교수(월드미션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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