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스는 독일인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틴에이저들이 섹스하도록 조장하였다. 청소년들은 (라이히가 말한 대로 성혁명을 위한 최고의 전사들로서) 나치의 정치적 및 기술적 조작에 완벽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것잡을 수 없게 되었고 나치들도 당황하였다.
1936년, 10-18세 남자청소년들은 “히틀러 젊은이”(Hitler Jugend)에, 여자청소년들은 “독일소녀 연맹”(the League of German Girls)에 가입하도록 반 강제적하였다. 가입자는 최고에 달했을 때 870만명이었다. 1945년에는 청소년 10명 중 9명이 가입해 있었다.
틴에이저들은 캠프, 영화, 유람여행, 노래부르기 등으로 유혹되었다. 아이들은 엄격한 학교와 부모를 떠나, 나치스가 조직한 연수회(캠핑)에서 활동하기 좋아했다. 더군다나 이성을 만날 수 있었다. 1930년대 답답한 시대에 이런 활동은 신선한 공기였다. 그들이 재미있어 하던 놀이는 거대한 나치스의 조작 계획의 일부였다. 당시 히틀러는 순진한 아이들에게 스타였고 숭배대상이었다. 당연히 대다수 부모들은 이를 우려하고 반대하였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런 부모에게 거역하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히틀러유겐트 소년들은 나중 군인이 되어 세뇌된 대로 공포심 없는 강인한 군인이 되었다.
이 같은 이 정책은 이성애적 문란을 가져왔다. 그렇지 않아도 틴에이저들 호르몬 영향으로 성욕이 왕성한데, 나치스는 이를 이용하였다. 남녀 캠프를 옆에 두어, 이들이 활동할 때 의도적으로 섞이게 하였다. 자연히 그들 간에 섹스가 증가하였다. 1936년 뉴런베르그대회(Nürnberg Rally) 동안 900명이 임신하였다. 이런 성문란으로 독일 소녀연맹은 “독일 매트리스 연맹”(The League of German Mattresses)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덩다라 청소년 성범죄가 폭증하였다. 집단 성폭력, 소아성폭력 등이 기승을 부렸다. 성병도 폭증하였다. 정부는 당황해 하였다.
지도자들은 소녀들에게 피임은 자연과 모성에 대한 거역으로 간주되고 금지되는 것이라 교육하였다. 소녀들은 장차 건강한 아기를 가질 터이니까 모성을 위해 몸을 소중히 하라, 또한 엄마가 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생각고하라고, 이런 것이 히틀러에 대한 의무로 믿으라고 세뇌되었다. 1943년 낙태 처벌법이 시행되자 병원은 임신한 틴에이저들로 넘쳐났다. 수많은 사생아가 출생하였는데, 정부는 사생아에 대한 스티그마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이 되자 독일 소녀 연맹의 지도자들은 소녀들에게 사생아라도 반드시 아이들을 잉태해야 한다고 공표하였다. 즉 독일 여성의 의무로 총통에게 아기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일 정부는 시민과 군인들은 서로 가까워져야 한다고 선전하였는데, 아이들은 이를 문자적으로 믿었다. 소녀들은 스스로 군기지를 찾아가 병사들과 섹스하려 하였다. 더 한심하게는 독일 소녀들은 프랑스 군인 포로들과도 섹스했는데, 체포되면 프랑스 남자들이 더 잘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치스의 인종 이데올로기와 우생학에 따른 성 정책은 주로 하인리히 히믈러가 주도하였다. (히믈러는 에리히 프롬의 정신분석에 따르면 시체애호증(necrophilia) 환자였다) 반은 정책적으로 반은 선전선동의 의미에서, 나치스는 1935년 “레벤스보른 프로그램”(the Lebensborn program 생명의 샘 프로그램이라는 의미)을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혼외정사로 임신한 여성이 아이를 낳도록 장소를 제공하고, 낳은 아이는 대신 길러주는 것이었다. 이 혜택은 당연히 순수 인종에 한해 제공되었다. 신청자의 40%만 인종적 순수성이 입증되어 입소가 허락되었다. 인종적 순수성은 이전 3세대를 증명해야 했다. 히믈러는 그런 처녀들이 더 이상 수치스럽게 되지 않게 되었다고 자랑하였다.
히믈러는 좀 더 나아가 the SS breeding program을 시행하였다. SS 군인들이 출정하기 전에 아기를 낳도록 하는 것이었다. 아리안 혈통으로 입증된 소녀들이 선택되어 비밀스런 레벤스보른에 초대되었다. 거기서 소녀들에게 SS 군인들이 소개받는데, 대개 그들은 키가 크고 강하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졌다. 소녀는 그들 중 한 명을 선택하여, 월경 후 10일 되는 가임기에 여러 차례 섹스하면서 임신을 시도하였다. (서로 이름도 알 필요도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SS에 넘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태어난 아이들은 레벤스보른 시설에서 집단 양육 되었다. 그런 여성들 중 일부는 1년후 돌아와 다시 임신하려 하였다.
이런 “혁명적” 일들이 독일에서 벌여졌다. 그 결과는 전후 독일(서독)이 조기 성교육, 포르노 산업, 등등 성해방적 문화가 가장 먼저 그리고 열렬히 시작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 것 아닌가 한다. 물론 나치 파시즘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 68 좌파 학생혁명도 (적군파까지) 과격하게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을 지탱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아직도 남아있을, 조용한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아닌가 한다. (계속)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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