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지난달 5월은(2022)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 시기였다.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선거법이 지엄해서 불과 0.73% 국민투표수를 더 얻은 윤석렬 대통령 용산 집무실 시대가 시작되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의 최첨단 산업분야 반도체 산업공장의 미국 땅에로의 유치를 위해 일본보다 앞서 한국을 방문하였다. 5.18 광주민주항쟁 기념식장엔 42년이 지난 후에 금년도엔 역사 인식이 갑자기 바뀌었는지 보수정당 국회의원들 전원이 기념식에 참석하라는 동원령을 받들고 참석하였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주먹 쥐고 제창했다.
위와 같은 정치경제계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로서는 미미한 작은 행사이지만, 의미로서 보면 결코 그것들보다 작다고 말할 수 없는 '학술잔치 한마당'이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한신대 신학대학원 소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시대 대표적 동양학자 중 한 사람인 도올 김용옥 선생이 "마가복음과 동경대전"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매주 목요일 오후 80분 동안 공개 강의를 9회 연속 진행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작년(2021)에 『마가복음강해』, 『나는 예수입니다: 도올의 예수전』, 『동경대전 1,2권』, 그리고 『용담유사』를 출판하여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대중 전파매체 유튜브를 통해 종교를 초월한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오늘 칼럼은 도올 선생의 수유리 대학원 학술잔치(심포지엄)를 마치면서 "수운의 시천주와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를 비교하고 수유리 도올 강연의 의미를 되새김 해보려고 한다.
2. 도올의 『동경대전』1, 2 주석과 『용담유사』간행의 한국종교사적 의미
한국 철학계가 두루 존경했던 석학 박종홍 교수는 1974년 최수운 탄생 150주년 기념논문집 발간사에서 다음같이 말했다: "동학이 한국사상에 있어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의는 천도교 신자가 아니라도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짐작하는 바이어니와, 그 기본정신은 우리의 전통적인 모든 사상의 진수(眞髓)가 하나로 엉기어 이루어진 결정체(結晶體)라고도 하겠다."(『韓國思想』, 12호. 발간사)
동학은 1905년 3대 지도자 의암 손병희 때에 이르러, 동학종단의 명칭을 천도교(天道敎)라고 고치고 1919년 3.1 운동 때에 한국 개신교와 긴밀한 협동을 통하여 3.1만세 운동을 성사시켰다. 한국 기독교는 천도교와 여러 가지 점에서 통하는 점이 많았고, 그래서 3.1운동을 추진성사 시키는데 큰 힘을 함께하였다. 그 이후, 여러 가지 정치ㆍ사회ㆍ문화적 현대사의 굴곡을 거치며 오늘의 천도교 교세는 많이 약화 되어 있지만, 3.1만세 운동 시기에 천도교 교세는 300만 명이 넘었고 한국 개신교는 30만 명 수준이었다.
도올이 동양철학자로서 그리고 동서철학을 회통한 인문학자로서, 개인적으로는 어머니 신앙 유산을 받아 기독교인이지만 종파적 울타리를 넘어선 학자로서 이번에 총 페이지 수가 상하권 합하여 1,000페이지에 달하는 『동경대전』을 1권과 2권으로 나누어 간행한 것과 수운 자신이 당시 한글 언문체로 쓴 『용담유사』를 주해 번역한 작업은, 천도교인을 떠나서 다음 같은 점에서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첫째, 『동경대전』이라고 부르는 동학 및 천도교의 경전을 문헌비평적, 역사비평적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그동안 천도교 종단 안에서 밝히지 못했던 수운과 그의 직계제자 해월 최시형과의 관계를 밝히고 여러 가지 목판활자본으로 전해 내려오는 경전사본들을 엄밀한 문헌비평적 학문 방법에 근거하여, 천도교 경전의 인쇄, 배포, 전승 과정을 명료하게 밝혀놓는 업적을 남겼다.
둘째, 도올은 동학 창도자인 수운 최제우의 생애와 사상의 발전과정을, 당대 시대적 맥락과 조선 유학사 특히 영남지방 퇴계 후손들과의 갈등과정을 밝히면서, 20-21세기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전환의 대 사상가로서 수운을 새롭게 조명하여 한국사상사 속에서 바르게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셋째, 동학의 종교적 사상 배경을 살피면서, 동학이 당시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영향을 받았고 당시 서세동점의 그리스도교(당시 천주교)의 인격신관 영향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교의 초월적 유일신관, 가부장적 권위주의, 정신/물질의 이원론, 자연과 초자연의 이중구조 구원론 등을 수운이 극복하고 무위위화(無爲而化) 동귀일체(同歸一體) 론에 근거하여 성경신(誠敬信)의 3대 덕목을 가르친 한국 종교사상의 결정체라고 밝힌 것이다. 수운의 종교철학적 특징은 유불선(儒佛仙) 삼교에 뿌리를 두지만 단순한 종교습합적 혼합이 아닌 독창적 신관, 역사 이해, 민본사상, 혁명사상을 주장한 것이다.
넷째, 수운의 동학론이 현대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소위 서구사상의 영향을 받아 계몽된다는 '개화론'은 자연에 대한 탈주술적 합리적 자연관, 반종교적인 세속주의, 자연 약탈적이고 다른 생명체들을 먹이사슬구조 안에서만 파악하는 '근대화' 개념을 맹종하지 않고 후천개벽(다시개벽)을 주장하고 생명중심, 민본정치, 역사참여, 인간평등과 존엄성을 주창하였다는데 있다. 수운은 서구 기독교 문명의 본질 속에 제국주의적 요소가 있음을 가장 일찍 간파하였고 외세에 저항하였다.
3. 수운의 21자 주문 중에서 '시천주'(侍天主) 의미의 해설
수운 최제우는 1860년 음력 4월 5일, 심원한 종교체험을 한다. 그것은 수운의 하느님 체험이요 득도 체험이었다. 수운은 그 체험을 여러 곳에서 자상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윌리엄 제임스가 『종교체험의 다양성』이라는 명저에서 신비체험의 특징으로 열거하는 4가지 특징을 여실히 나타낸 체험이었다. 4가지 특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움(ineffability), 이해 가능한 특징(noetic quality), 시간적으로 일시성(transiency), 체험의 수동적 성격(passivity)이 그것이다.
수운은 이러한 신비체험, 하느님 체험 후에 약 1년 이상 그 체험을 깊이 반추하고 사색하고 사상적으로 정리한 후 21자로 구성된 소위 말하는 동학의 '21자 주문'을 발표하였다.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願爲大降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 萬事知)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앞 부문 8글자를 강령주문(降靈呪文)이라 하고, 뒷부분 13글자를 본주문(本呪文)이라고 부르는데, '시천주'(侍天主)라는 어휘는 본주문 첫째 번에 나오는 3글자를 말한다. 오늘 컬럼의 주제는 '시천주'개념에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생략하고 수운선생이 직접 '시천주'를 해설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也
(i) 시자(侍者): 모심, 모신다는 의미; 동학과 천도교에서 핵심은 '하느님을 몸으로 모심'이라는 점에 있다. 몸은 인간의 육체성과 정신성으로 분해할 수 없는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다. '몸으로 모심'이란 의미는 사도 바을이 "너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3:16, 고후6:16)을 생각나게 하지만, 동학에서는 사람 몸 안의 지성소에 하느님이 거하신다는 의미보다 더 나아가서 사람 몸 그 자체가 하느님의 존재양태(存在樣態)라는 뜻에 더 가깝다.
(ii) 내유신령, 외유기화(內有神靈 外有氣化): 사람 몸 안에는 신령한 기운이 충만해 있고, 몸 밖으로는 몸이 대면하는 삼라만물들과 신령한 기운으로 서로 통하고 교감하는 느낌의 상태를 직증하고 직관한다.
(iii) 일세지인이 각지불이자야(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세상 모든 사람이 깨달아 알고 느껴지는 것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 동귀일체(同歸一體)요, 한 몸 의식이요, 생명은 유기체적으로 하나이다 라는 깨달음이다.
위에서 살핀 대로 수운 자신이 '시천주' 의미를 자상하게 해설하였다. '시천주'라는 말로서 압축되는 수운과 그 후학들의 근본정신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은 그 몸으로서 하느님을 모시고 살며, 더 나아가서 그 생기(生氣)이자 생령(生靈)인 사람 생명체 그 자체가 빈부귀천이나 사회신분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존귀하고 평등하고 신성한 존재라는 자각이다. 둘째 의미는, 사람은 개체로서 자기 생명을 향유하지만, 소라 껍질 속에 유폐된 각자 분리된 단독자가 아니라, 모든 사람은 더 큰 '한 생명'을 이루는 연대적 존재이며 유기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분리된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인간관을 가진다. 동귀일체(同歸一體)라는 말이다.
수운의 이러한 '시천주' 사상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에 의하여 "사람 섬기는 것을 하느님 섬기듯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발전하고, 3대 교주 의암 손병희 때에 이르러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人乃天)라는 명제에로까지 발전한다. '시천주'에서 '사인여천'으로, '사인여천'에서 '인내천'으로 동학의 핵심 모토가 변화해가는 것은, 그 표기들이 말하려는 속뜻이 변질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학의 창도자 수운의 '시천주' 사상 속에 담겨있는 하느님을 지극한 맘으로 모시는 '경외지심'이 탈색되면서 인간중심의 인본주의(人本主義) 철학적 생명철학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인간에 대한 주체성, 책임성, 존엄성, 신성한 영성은 강화되지만 동학이 조선조 500년간 한민족을 지배하던 지기론적(至氣論的) 형이상학을 극복하고 다시 회복시킨 '하느님 신앙'을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4.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18-19세기는 소위 기독교 문명국들이라는 서구 열강들이 동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시키는 식민지 쟁탈의 제국주의 시대였다. 가톨릭(천주교)의 파리외방선교회나 개신교의 선교사 파송국들이 복음을 전하는 나라마다, 무력적 협박과 공격을 동반하였다. 위험한 이교 국가들에 파송하는 선교사들을 보호하고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려는 의도일지라도,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주권국가에 대한 무력침입이요, 다른 종교를 강요함이요, 2,000년 이상 동아시아 사람들의 심성을 육성해온 유교, 불교, 선도 등을 이교적(異敎的) 3류 종교이거나 미신적 종교라고 폄훼하는 것이었다. 선교 정책이 잘못된 것이다. 수운은 그러한 서양 종교 제국주의에 저항하였다. 그리고 이번 새로 간행한 도올의 『동경대전』역주에서 그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진정한 예수의 복음, 갈릴리의 복음이 아니라 문화제국주의 탈을 쓰고 접근하는 교리적 기독교, 교회당(성전) 중심의 기독교, 교권주의적 기독교, 성직자 중심의 기독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수운에게 있어서나 도올에게 있어서나 정당한 비판이요 정직한 지성인의 용기다. 그러나, 성서가 증언하는 본질적 하나님 이해나 복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와 고린도전후서에 나타나는 '하나님 성전으로서 몸과 몸으로 드리는 산제사' 신앙을 복권할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멀리 보이는 웅장한 당시의 파르테논신전을 바라보면서 아테네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교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殿)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17:24-25,28)
사도 바울이 이러한 아레오바고 설교를 하던 때는, 수운 최제우가 동경대전을 쓰고 '시천주' 강해를 하면서 그가 체득한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설파하기 전 무려 1800년 전의 일이다. 물론 사도바울이 고백하는 창조주 하나님 신앙과 수운이 가르치는 무위이화(無爲而化)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차이를 강조하기 이전에, 바울이 경험하고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하나님 신앙'은 결코 군주적 폭군도 아니고, 무서운 율법집행자도 아니요, 인간의 자유를 압수하고 억압하는 영적 지배자가 아니다. 진리와 은혜의 영이요, 참다운 자유와 해방을 주시는 이요, 불의에 저항하고 생명의 아픔에 동참하도록 힘주시는 인애(仁愛)의 하나님이다.
'몸으로 하느님을 모심'이라는 수운의 '시천주'신앙 또한 사도 바울이 1800년 전에 그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타난 신앙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3:16-17)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 체험과,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가 체험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지만 폭군이 아니며, 인간과 피조물 전 영역에 정의, 자유, 평화가 강처럼 흐르게 되기를 바라시며 힘쓰시는 하나님이다. 예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 나라와 주기도문은 화강암 돌로서 지은 성전 종교가 아니라 영적 공동체이며, 단순한 '인내천주의'가 아니라 경천애인(敬天愛人)하라는 가르침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역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오늘날 본래 '갈릴리의 복음'으로서 모습을 잃어버리고 성전종교, 경전종교, 교리종교, 자본주의와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타락해 버린 오늘의 한국 기독교를 향한 "한 지성인 크리스천"의 애절한 충고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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