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5월에는 대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성대하게 열린다. 지난 2년 동안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집회가 금지되어서, 성대한 졸업식이 영상으로 대체되었었다. 올해는 다시 예전의 졸업식 가운과 장식들과 순서들이 회복되었고, 미국식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의 졸업식은 웅장하고 거대하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행사들이 많고, 가장 화려하다. 어떤 대학에서는 모든 졸업생들에게 그동안 공부하면서 누적된 학비 대출금을 다 갚아준다는 발표가 있었다.
졸업식은 성취와 보람의 예식이요, 앞날을 향한 각오와 축복의 순간들이기도 하다. 모든 졸업식장 마다 학위증을 받게 된 졸업생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성취를 축하하고, 앞날을 축복한다. 더욱이 우수한 학생들을 칭송하고, 숨은 공로자들을 표창을 받는다.
미국 대학교의 졸업식은 공부하는 과정에 따라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는 자격을 드러내는 "가운"을 착용하는 의식이 있다.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학문적인 예복을 입는 전통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미국교육위원회의 설명을 참조해 보자면, "가운들은 중세 시대에 대학에서 난방을 하지 않았던 추운 날에 몸을 보온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착용되기 시작 했었다"고 나와 있다. 또한 전문 학위를 표시하는 "후드"와 "모자"는 "삭발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되어있다.
오늘날의 대학은 유럽에서 13세기로부터 확대 되어진 것인데, 초기에는 교회에 부속된 학교체제로 운영되었다. 중세시대에 교육은 오직 수도원에서 이뤄졌고, 귀족들의 자녀들에게는 개인교습을 했었다. 차츰 대중교육이 확대되어질 때까지, 대학의 교수들은 대부분 성직자들이었고, 그들은 삭발한 채 단순히 검정색 가운을 착용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유럽 대학의 가운 엄숙하고도 근엄했다. 예를 들면 영국 대학교에서는 교수들은 강의 시간에 반드시 가운을 착용해야만 했었다.
미국의 대학교에서는 교육위원회의 지침에 따라서, 가운의 색깔과 후드의 치장들을 착용하고 있다. 미국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에 세워진 아홉 개의 대학들이 오래된 역사를 통해서 학교의 상징인 색채를 지정했고, 역시 그렇게 장식된 가운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는 심홍색(crimson),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는 녹색, 금색, 은색을, 예일대학교는 청색, 펜실베니아 대학교는 빨간 색과 청색, 프린스턴 대학교는 오렌지와 검정색, 콜럼비아 대학교는 연한 청색과 희색, 브라운 대학교는 밤색, 다트머스는 푸른색과 희색, 럿거스 대학교는 주홍색(scarlet)이다.
가운과 후드의 길이도 규정에 따른다. 학사 학위를 받는 졸업생은 36인치, 석사 학위는 42인치, 박사학위는 48인치이다. 모든 후드와 걸치는 장식은 그 대학교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만들어진다. 전공별로 색깔이 다른 후드를 착용하는데, 예술과 인문학은 흰색, 경영학은 진흙색(drab), 형사적 범죄와 정치전공은 보랏빛(violet), 교육학은 밝은 청색, 법학은 자주색, 간호학은 살구빛 황적색(apricot), 공공정책과 행정학은 푸른 공작색(peacock blue), 철학은 청색, 과학은 금색, 사회분야 학과들은 레몬빛(citron)이다.
필자는 막내 딸 졸업식에 참석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뉴져지 주립대학교, 럿거스 법학대학원 졸업식이 뉴어크 예술 공연센터에서 5월 20일 거행되었다. 지난 3년간 법학을 공부하여 장차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나가게 되는 2백여 명의 젊은이들은 활기찬 모습이었다.
미국 대학교 졸업식 순서의 하이라이트는 초청 인사의 강연이다.
럿거스 법학대학원은 이 날의 중심 강연자로 법조인이 나왔다. 맨해튼 검찰총장 알빈 브래그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와 하버드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검사로서 20여 년을 맨해튼에서만 봉직했고, 마침내 지금은 검찰총장의 지위에 올랐다. 그런데 브래그는 딱딱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아주 실제적인 강연을 했다. 장차 법조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졸업생들에게 정의로운 사회로의 중요 과제 하나를 제시했다.
그는 매우 소박한 일상에서의 고통을 말하면서, 자신의 아들, 9살짜리가 느끼는 미국의 현상을 간략하게 풀이했다. 브래그 검찰총장은 아프리컨 아메리칸으로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여전히 범죄율이 가장 높은 맨해튼 할렘가에서 살고 있는 "흑인" 아이일 뿐이다. 어느 날 얼굴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하는 대답이 놀라웠단다.
"아빠,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래요, 얼굴이 가려지면, 내가 누군지 경찰이 구별하지 못해서, 혹시 잡혀갈지도 모르니까요. 누군가 나를 도독놈으로 보고서, 실수해서 잡아갈 수 있지 않을까 겁이나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브래그 검찰총장은 역시 오늘의 성공이 있기까지의 어려운 고난들을 언급했다. 그가 대학교에 진학하기 이전에,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총기 사고가 많았다. 이를 수사하러 찾아온 경찰들이 총으로 자신을 직접 겨냥하는 아찔한 순간들을 여섯 번이나 맞이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세 번이나 총으로 위협당하는 순간들을 넘겼다고 한다. 그러니 미국 그 어디에 정의로운 질서가 있느냐는 자괴감을 갖고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범죄와의 싸움을 진두지휘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신념을 장래 법조인들에게 호소했다.
인종차별. 미국에 건너와서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혐오범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아시안 혐오범죄가 날마다 폭증했다. 언론이나, 신문에 실리지 않는 사고들도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뉴욕이나 로스엔젤레스나 그 어디에서나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아시안이나, 흑인이나, 소수계 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이 팽배하다. 미국의 주류사회를 이끌어 가는 백인들의 우월의식이 도를 넘어서 빚은 참상들이 많았다. 미국인들에게는 이미 아시안 이민자들에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필자는 우리 한민족의 후예들이 이 미국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민자로 왔든지, 잠시 학업을 위해서 머물고 있든지, 다양한 인종들 속에서 한국 사람들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기여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두렵고 무서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재성 교수(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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