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대응과 경제·기술안보 등 한미관계를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에 기반을 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군사·안보 개념의 한미동맹이 경제·기술 분야로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장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미 두 정상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보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공동 인식 아래 강력한 대북 억지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핵심 가치를 요약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한·미 두 정상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여타 아시아 지역 및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는 데 있다. 또 최근 증가하고 있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라는 점에서 이를 규탄하고, 북한의 대량 파괴 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포기를 촉구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공조해 나간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런 내용은 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에 보다 구체화된 표현으로 담겼다. 우선 두 정상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한국 방어와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대한 상호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에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능력을 포함한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역량을 사용한다는 것으로 무엇보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노골적인 도발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번 회담의 성과 중 하나다. 이는 이전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 기존의 한미군사훈련을 축소 또는 연기하는 식으로 한미동맹의 약화 또는 균열을 초래했던 것과 비교할 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변화다. 한마디로 안보에 있어서 ‘비정상’을 ‘정상화’한 의미로 해석된다.
한·미 두 정상의 이번 만남은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빠른 기간 내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는 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첫 아시아 순방 중 첫 나라로 대한민국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회담 성과 못지않게 큰 의미를 남겼다. 특히 취임한 지 불과 11일 만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맞이한 윤 대통령으로서는 세계 외교무대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토록 이른 시일에 우리나라를 찾은 목적 중 하나는 미국이 주도하는 역내 경제협력 구상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의 참여가 절대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21일 IPEF에 대한 적극 지지 의사를 밝히고 출범 회원으로 참여하기로 확정한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협력공동체 출범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을 누구보다 껄끄러워하는 중국의 향후 대응수위다. 중국은 지난 2016년 7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구실로 여러 방식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경제 보복을 단행했다. 특히 자국 내 한류를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으로 한국 문화 산업 전반을 규제함으로써 우리나라에 큰 타격을 줬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동맹 관계를 경제·기술동맹으로까지 확장하기로 한 걸 가장 불편해할 나라도 중국이다. 중국의 정치외교 전문가들은 한국의 IPEF 가입에 대해 “한국이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라면서 “한국 외교의 중대 변화는 중·한 경제 및 무역 관계, 한반도 문제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나 중국이 이웃 나라의 경제기구 가입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식으로 개입하는 건 명분도 없을 뿐 아니라 분명한 월권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전화로 반대 입장을 밝히고 보복 가능성까지 내비치자 “IPEF 가입은 국익 차원의 결정”이라고 못을 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아무리 보복 운운하며 으름장을 놔도 윤석열 정부는 초기에 IPEF에 가입하는 것이 국익 차원에서 실보다 득이 훨씬 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것이 이전 정부와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한·미 당국은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 방한을 전후해 북한이 핵실험 재개 등의 무력 도발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해 왔다. 국가정보원은 19일 비공개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함에도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준비가 다 끝났고, 타이밍만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런 시점에 한·미 두 정상이 유사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 수단 중 하나로 ‘핵’을 못 박았다는 건 대북 억제책 중 최고의 강수를 둔 것이라 평가된다. 이른바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명확하고도 확고한 방침을 한·미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명문화함으로써 북한의 핵 위협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트럼프·김정은 간의 ‘싱가포르 합의’와 ‘4.27 판문점 선언’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요청했고 그런 내용이 공동성명에 들어갔다.
그런데 1년 후 다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북한과 중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자유 진영에서 멀어졌던 한국이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분명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손상된 한미동맹을 회복하는 데서 새로운 한미동맹, 더 크고 든든한 동맹관계가 출발하는 것임을 국내외에 제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