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2. 가장 성경적인 선택 교리는?: 칼빈주의 선택 교리
이런 여러 구원론에 대해 개혁주의 구원론은 언제나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어떤 사람은 택함을 받아 생명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르도록 작정되었다는 것입니다.
1) 앞의 것을 선택이라 부르고 뒤의 것을 유기라 말하므로 이를 두고 고트살크(869년 사망) 같은 칼빈주의자는 ‘이중예정설’이라 불렀습니다.
2) 이후 츠빙글리는 “만사는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지고 결정된다”도 전제하고 “어떤 일이듬 하나님의 의지나 명령 없이는 일어나지 않으며,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이지 인간의 행위나 공로나 하나님의 예지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3) 마르틴 루터(1546년 사망)는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조건적 선택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죄인의 의지가 부패에 묶여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복음에 저항한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못박았습니다.
4) 하나님의 선택 교리를 성숙하게 완성한 사람은 존 칼빈(1564년 사망)입니다. 그의 주권적 선택 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선한 기쁨과 자유로이 베푸신 자비에 근거한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며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유효한 의지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조건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어떤 이들에겐 영원한 생명이, 어떤 이들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되었다. 나아가 단 한 명의 반역한 죄인도 하나님이 구원해 줄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셋째, 선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먼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언약적으로 선택하셨고,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이방인 들 중에 특정 개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넷째, 선택은 그 결과에 있어서 확실한 것이다. 택한 백성이 확실히 구원을 받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변한 사실이라 했습니다.
다섯째, 그러므로 모든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아무런 자격이 없이 구원을 은혜의 선물로 받은 것이므로 언제나 감사와 겸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선택에 대한 칼빈의 가장 명료한 입장은 기독교강요 3권 22장 1항에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성경이 선포하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 ‘창세 전에’(엡1:4)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았다고 가르칠 때, 그는 우리 편에 있는 가치를 전혀 고려치 않는다. 그가 한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늘 아버지는 아담의 모든 후손 중에서 그의 선택하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자를 하나도 찾으실 수 없기 때문에(중략).... 인간들이 자신의 힘으로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귀한 구원을 받도록 택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3. 성경적 근거
이러한 선택 교리를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들을 찾아봅니다.
1) 먼저 오늘 소개한 본문 말씀들을 다시 읽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7)
“내가 나의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사 4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해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라”(시135: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2) 이외의 말씀도 소개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살후 2:13)
”이방인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하나님이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합이라“(고전 1;26~31)
4. 결어
한때 저는 캐나다를 방문하고 잠시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百聞이 不如一見이라 했듯이 나이아가라 폭포는 정말로 웅장했습니다. 말 그대로 그 폭포 앞에 섰을 때 나이는 물론이고 내 존재 자체마저 잊어버릴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면서 언뜻 머릿속에 이 놀라운 광경을 구경한 사람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대다수 사람들은 이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물 중에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한 것들은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이 너무나 짧고 유한하여 아무리 다녀도 다 다니지 못하고, 아무리 보아도 못 볼 것이 너무 많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가 다 할 수 없고 아무리 배워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주어진 시간 안에만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 보고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통해 얻는 인생의 답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이 폭포를 구경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을 보도록 택하시고 허락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앞에 서서 이 위대한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느껴보도록 하나님이 내게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수많은 사람 중에 극히 일부를 택하시어 나이아가라 폭포를 눈으로 목격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택하심에 내가 포함된 것입니다.
오늘 주제의 질문에 이제 결론을 내립니다.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답은 하나님이 구원을 받도록 영원 전에 택하신 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예정과 선택의 교리입니다. 이 택한 자에게 때가 이르자 믿음이 주어졌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먼저 선택하시어 나로 하여금 믿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과 믿음의 선물이 없었다면 우리가 무슨 수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알도록 허락하기 이전에 감히 누가 하나님을 스스로 알고 믿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택한 자가 아니라면 무슨 수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죗값을 갚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이야기하면서 자꾸 인간의 공로나 행위를 개입시키면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희망 사항이라면 모를까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선택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구원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전제하므로 오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가운데 마귀의 자녀들이 함께 섞여 살고 있음을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8:44을 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들이 왜 마귀의 자녀인지 어떤 경로를 통해 마귀의 자녀가 되었는지, 마귀가 자신의 자녀를 낳을 권한이나 능력을 가진 것인지에 대해 성경은 침묵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왜 마귀의 자녀들을 허락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비밀한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한 뜻과 계획의 섭리가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신 우리의 창조주요 구원자이시며 주님이시며 심판자이신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겐 오류가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은 여러분 모두를 축하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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