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남성 군인 간 성행위가 합의 하에 영내가 아닌 사적 공간에서 이뤄졌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낸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이번 판결이 경위를 불문하고 남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유죄로 판단했던 기존 판례를 깼을 뿐 아니라 군대 내 동성애 합법화로 확대 해석 될 수도 있는 사건이어서 쉬 가라앉을 거 같지 않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1일 군 형법상 추행 혐의로 기소된 중위 A씨와 상사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군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와 B씨는 영외에 있는 독신자 숙소에서 성행위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군사법원 1·2심은 이 두 사람을 각각 유죄로 선고했다.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92조 6항을 위반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8명이 성행위가 사적 공간에서 자발적 합의에 의해 이뤄진 점을 들어 무죄 의견을 냈다. 이 대법관들은 또 군기(軍紀)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군형법 92조의 6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 같은 8명의 대법관의 의견에 반대한 대법관도 있었다. 조재연·이동원 대법관은 8명의 대법관이 낸 의견에 대해 “법률해석 권한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 대법관 외에 다른 3명의 대법관이 다수 의견에 따르는 취지의 소수 의견을 내면서 이 건은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판결에 따르더라도 남성군인 간에 합의된 성관계가 군기를 침해하는 경우는 처벌 대상”이라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그러니까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 사건이 영내가 아닌 사적 공간에서 이뤄졌다는 점과 군기를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 두 가지를 들어 무죄로 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법조계에선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이 군 형법의 규정 자체를 무력화한 판결이라는 것이다. 특히 군기를 침해했는가, 아닌가에 대한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우려스런 점은 군내 내 동성 간의 성행위를 금지한 군 형법에 ‘자기결정권’이라는 엉뚱한 잣대를 꺼낸 데 있다. 군대에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려면 현재 병역법은 원하는 사람만 군대에 가는 것으로 싹 다 뜯어 고쳐야 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에서 논란이 된 또 다른 하나는 ‘추행’에 대한 해석이다. 8명의 대법관들은 ‘추행’에 대해 “사회 변화에 따라 그 구체적 의미와 적용 범위가 달라져 왔다”며 “동성 간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추행에 해당한다는 판단은 이 시대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대법관의 인식은 법 해석을 넘어 심각한 자기 부인으로 비칠 수 있다. 군대라는 특수한 영역을 전혀 도외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거면 군 형법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대법관들이 군 형법과 일반 형법의 그 적용 대상과 범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건 자기 모순이다.
교계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즉각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교회언론회는 22일 발표한 논평에서 “김명수 대법원이 21일, 사실상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하는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라며 “결과적으로 군형법에서 엄하게 금하고 있는 법률을 무력화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성토했다.
교계는 이번 판결이 그동안의 판례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은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해 2008년, 2012년에 같은 법률 조항을 인정해 처벌해 왔고 헌법재판소도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나 합헌임을 밝혀왔다.
아무리 사회가 변해도 군 형법이 군내 내에서 동성애를 처벌하는 규정을 둔 이유와 목적은 분명하다. 군대라는 상명하복의 엄격한 규율 사회에서 상관의 위압에 의해 하급자인 성폭력 피해자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군인이 영내가 아닌 사적 공간에서는 뭘 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군인은 영내든 영외든 군인 신분이다. 만약 영외라 문제 없다는 논리라면 군인이 휴가 나와서 귀대 날짜를 어겨도 군 경찰이 체포할 수 없다.
지난해 공군 부대에서 상관의 성추행과 2차 가해를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은 고 이예람 중사 성추행 자살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벌어진 상관의 위계의 의한 성추행 사건에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하고 국방부 장관은 여러번 국민 앞에 사죄해야 했다.
이런 현실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분명 국민 눈높이와 동 떨어져 있다. 군내 내 왜곡된 성 문제에 경종을 울려야 할 대법원이 도리어 질서와 규율을 허무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판결 자체를 신뢰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내 아들과 딸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면 그 책임을 대법원이 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