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윤경로 이사장, 한규무 소장)와 (재)대한성서공회 성경원문연구소(권의현 사장)가 26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소재 새문안교회(담임 이상학 목사) 언더우드홀에서 ‘존 로스의 한글 성경 번역이 한국교회와 사회문화에 끼친 영향과 과제’라는 주제로 존 로스 한글 성경 번역 14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온·오프라인 동시에 진행됐다.
이날 행사 1부는 호재민 총무(대한성서공회)의 사회로, 이상학 목사의 개회기도, 윤경로 이사장의 개회사, 권의현 사장의 환영사, 권재일 회장(한글학회 제61대 회장, 서울대 명예교수)의 축사 순서로 진행됐다.
먼저, 윤경로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2022년은 성경이 한글로 처음 번역된 쪽복음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간행된 지 140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오늘 학술심포지엄을 통해 과거를 되돌아볼 뿐만 아니라 오늘을 직시하며 내일을 전망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이 더욱 밝아질 수 있기를 함께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어 권의현 사장은 환영사에서 “존 로스의 한글 성경은 최초의 한글 성경이라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순 한글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하고 출판 보급하였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그래서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었으며, 이 성경을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세워졌다. 양반 지식인들로부터 천대받던 한글로 성경을 번역한 것은, 그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혁신적인 일이었으며, 한글문화와 문명의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이 성경은 한글 성경의 문장과 문체에 있어서 하나의 기준이 되면서 이후에 이루어진 한글 성경의 번역에 길을 열어 주었다. 존 로스 목사와 그 동역자들이 번역 보급한 한글 성경의 가치를 한 번에 모두 다 찾아내서 밝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서 그 의의를 또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권재일 회장은 축사에서 “존 로스의 한글 성경은 한국교회에 복음을 널리 펼치고 신앙을 단단하게 다지는 소임을 다했음은 물론이고 한편으로는 글자 생활에 한글 사용을 정착시키고 체계가 잡혀 있지 않던 국어 표기법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며 “한글 성경은 당시의 표기 음운 어휘 문장의 특징을 고스란히 안고 있어 그 국어학적 의의는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한글 성경 번역이 한글문화와 한국 기독교 발전을 위해 펼친 높은 정신을 받들고 계승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2부 발표회에선 ‘존 로스와 한국 개신교 - 로스의 첫 한글 복음서 출판 140주년에 부쳐’라는 주제로 발제한 옥성득 교수(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한국기독교)는 “올해 4월은 로스 목사(John Ross 羅約翰, 1842~1915)가 첫 한글 복음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를 발행한 지 140주년이 되는 시점”이라며 “한국 개신교 역사의 첫 장에 등장하는 로스의 삶과 사역이 굽이치는 카이로스의 한 전환점을 돌아가는 오늘 한국교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로스에게는 네 가지 면이 있다. 만주 선교와 한국 선교를 개척한 열정적인 목회 선교사, 선교 방법론 타종교 신학 한국어 한국사 중국사 관련 저서만 7권 이상을 출판한 학자 선교사, 10년 만에 첫 한글 신약전서를 완역 발행한 천재적인 성서번역 선교사, 그리고 한국에서도 널리 사용된 여러 권의 주석서를 쓴 성서 주석 선교사였다”고 했다.
그는 “존 로스 목사는 1910년 은퇴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시차로 인해 1910년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사대회에 참석하지는 못했다”며 “대신 그에게 주어진 선교 방법과 복음화 방안에 대한 설문에서 그는 ‘선교사의 극소화와 본토인의 극대화’가 세계 선교의 해답이라고 제시했다”고 했다.
이어 “방대한 중국과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으나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국을 바라보면서 로스는 3자 원리에 입각한 토착적인 교회만이 성장하고 핍박 속에서도 견딜 수 있다고 믿었다”며 “3자 원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기초에 성경을 읽고 성경을 전하는 본토인 신자가 있었기에 그는 성경을 번역하고 출판하여 반포했으며 성경 주석을 썼다. 그가 한국에 준 최초의 한글 복음서와 신약전서는 한국 문화와 한국 기독교에 영원한 금자탑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옥 교수는 “1915년 8월 7일 에든버러에서 로스가 사망하자 그 소식을 들은 만주 선양의 동광교회교인들은 강단 후벽에 기념 비문을 새겼다”며 “그 일부분을 보면 ‘爲道捨身 遠離祖國 三十八春 播道遙瀋 宣布救恩 四方風動 跋涉艱辛 勤艱桓忍 關東一人’ (도를 전하기 위해 몸을 던져 멀리 조국을 떠나 38년 세월을 보내셨다. 라오양과 선양에 도를 전파하고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니 사방에서 바람이 일어났다. 산 넘고 물 건너는 매서운 고난을 근면으로 항상 인내하니 관동 최고의 인물이셨다.) 38년 동안 만주 일대에 성령의 바람을 일으킨 당대 최고의 선생이 로스 박사였다”고 했다.
이어 “로스의 별세 소식에 중국 북영국성서공회 총무 털리(Robert T. Turley)는 로스를 신약의 한글 번역 선구자로 추모했다. 또한 1880년 런던에서 영국성서공회 라이트총무를 만나 한글 성경 번역과 출판에 대한 지원을 받아낸 사실도 강조했다”며 “1882년부터 로스의 성서 사업이 영국성서공회 후원으로 진행되면서 사복음서와 신약전서가 출판되어 한국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그 결과 1884년 이후 한국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70% 이상이 미국 선교사였고, 일본 요코하마에 소재한 미국성서공회의 루미스(Henry Loomis) 총무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영국성서공회가 담당하는 지역이 되었다. 선교회는 미국이 성서공회는 영국이 맡게 되면서 성공회 구세군과 더불어 한국 개신교에 영국적 요소가 일정 부분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로스는 만주와 조선의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38년을 인내하며 전도자의 아름다운 발을 가진 개척 선교사로서 한국 개신교회의 첫 신자들을 만들었다”며 “그는 중국과 조선의 언어 역사 풍속 문화를 깊이 연구한 선교학자였다. 그는 서구 기독교를 이식하는 문화 제국주의 대신 전통 종교 문화의 선한 요소를 기독교의 접촉점으로 수용하는 성취론을 지지했다”고 했다.
아울러 “비록 전통 종교들이 아벨 골짜기의 해골처럼 말랐으나 성령의 바람이 불면 살아날 것을 믿었고, 비록 중국인과 한국인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과거에 여러 종교를 섬겼으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배에서 생수가 흐를 것을 소망했다”며 “한 겨리의 소가 함께 밭을 갈듯이 그는 유교와 기독교가 동아시아인의 도덕성과 영성의 밭을 가는 동역자라고 믿었다. 그는 무엇보다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번역하고 성경을 주석한 성서의 사람이었다”고 했다.
한편, 이후에는 유경민 교수(전주대)가 ‘역대 한국어 성경 번역문 대비를 통한 로스 번역의 언어·문화적 특징 연구’, 박형신 교수(남서울대)가 ‘로스역 한글 성경의 보급과 현재 소장본에 대한 연구’, 이두희 박사(대한성서공회 부총무)가 ‘로스의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가 한글 성경 번역에 끼친 영향과 앞으로의 과제 - 누가복음 20~24장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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