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자던 북한 김여정의 막말 본능이 다시 깨어났다. 지난 1일 서욱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가 명확할 경우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한 발언에 “미친놈”, “쓰레기”, “대결광”이란 원색적인 욕설을 쏟아낸 것인데 이를 두고 새 정부 길들이기 성격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여정의 막말 퍼레이드는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2020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 20주년 연설을 한 후 “철면피” “구걸” 등의 거북한 표현을 쏟아냈고 3월에는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미국산 앵무새”, 우리 정부를 “특등 머저리”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북한이 ‘선제 타격’에 이토록 발끈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상 자기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가공할 핵 전술을 갖추어도 쏘기 직전에 발사 원점이 타격 당하면 그 피해가 누구에게 가겠는가. 그러니 온갖 저급한 표현으로 조기 차단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선제 타격’은 서 장관이 처음 꺼낸 말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징후가 분명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 전에, 준비 단계의 핵미사일 발사대를 선제적으로 ‘반격’하는 것뿐”이라며 ‘선제 타격’을 처음 꺼냈다. 그 당시 윤 후보를 ‘전쟁광’이라고 몰아붙인 건 북한이 아닌 여당 인사들이었다.
그때는 별 반응이 없던 북한이 정권 교체기에 국방부 장관을 물고 늘어지는 건 아무래도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염두에 두고 수위 조절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정은이 아닌 동생 김여정 명의의 담화를 발표하고, 윤 대통령 당선인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점으로 미뤄 볼 때 새 정부와의 직접 충돌은 피하면서 ‘길들이기’ 사전 포석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김여정이 서 장관에게 욕설을 퍼부은 지 이틀만인 지난 5일 또 다시 서 장관을 비난하면서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 발도 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전과는 다른 결의 담화를 발표한 점이다. 이 담화에서 김여정은 “우리는 남조선을 무력의 상대로 보지 않는다”면서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등 전과 다른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북한은 지난 2010년 해군 천안함을 피격 도발했다.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에 승선한 해군 장병 46명이 사망했다. 천안함 폭침은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 영해에서 정상적 경비 활동 중이던 우리 해군 초계함을 북한 잠수정이 어뢰로 침몰시킨 중대한 군사적 도발이자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이 우리 영해에서 벌인 중대한 침략 행위였다.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그해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가 북한의 기습 폭격으로 불길에 휩싸였다. 북한군의 포탄 사격으로 해병대 소속 2명이 전사, 부상자 16명,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정전협정 이후 처음 발생한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이었다. 2019년에는 김정은이 직접 서해 NLL 인근 창린도 부대를 방문해 포 사격을 지시하기도 했다. 최근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김정은은 ‘남조선에 보내는 경고’라고 했다.
도발을 밥 먹듯 해온 북한이 이제 와서 ‘평화’를 입에 올린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최근 담화에서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과 같은 표현을 쓰면서도 바로 뒤에 “남조선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한다면 우리의 핵 무력은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며 ‘대남 핵 공격’을 시사한 것만 봐도 우리 내부의 분열과 동시에 안보 위협으로 혼란을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한이 한 입을 가지고 냉온(冷溫)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볼 때 안으로는 내부 결속이라는 숙제와 밖으로 새로 들어설 윤석열 정부와의 불확실한 관게 설정, 미국 등 국제사회에 대한 욕구불만 등이 얼마나 복잡하게 뒤섞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매번 유치하고 저급한 욕설과 막말로 배설하듯 쏟아내고 있는 북한 지도부의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지난 5년을 북한에 끌려다니며 얻은 정부의 대북정책의 초라한 성적표가 무엇을 말해주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빠인 김정은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김여정을 대남 ‘막말 전도사’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데 우리 정부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특히 2019년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정부가 김여정의 ‘하명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대북관계에 지나치게 굴종적이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김여정이 지난 2020년 6월 대북 전단을 비난하며 “(금지)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통일부는 바로 “준비 중”이라고 화답했다. 북한이 개성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대북 전단 금지법’을 강행 처리했다. 김여정이 한미연합훈련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문 대통령이 직접 “북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이런 것들이 북한에 김여정의 막말이면 다 통한다는 사인을 준 건 아닐까.
지난 5년간 매번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고도 문 정부는 올해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에 불참했다. 이는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라는 개인 이력의 치명적인 수준을 넘어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인권 퇴보 국가로 낙인찍혀 심각한 국격 손상과 함께 고스란히 국민적 부담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북한이 김여정의 거친 언사를 쓴다고 같은 급으로 맞대응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전 정부와 같은 대북 굴종으로는 저들의 거친 언사를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 큰 화가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즉 이제 출범을 33일 앞둔 윤석열 정부는 현 정부와는 다른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설 안보 대비태세를 새롭게 정비하고 당장 한미연합훈련부터 재가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 질질 끌려다니고도 욕까지 먹고 있는 현 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이 새 정부에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