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가 예상보다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수출입 기업들의 고충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의 글로벌 공급망·물류망 교란이 수출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면서 2분기(4~6월) 수출 전망도 악화된 상황이다.
한국 수출의 러시아 의존도는 2021년 기준 1.55%에 불과하다. 국내 산업계에 큰 타격이 없을 것이란 전망과 달리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의 여파와 공급망 차질 문제가 발생하면서 산업계가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29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7일까지 32일간 집계된 국내 수출기업의 애로사항은 총 565건이다. 대금결제와 관련된 문제가 304건으로 53.8%, 물류·공급망 문제는 190건으로 33.6%로 나타났다.
무협에 따르면 국내 수출입 기업들은 수출대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물류를 국내로 반송하는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최종 목적지까지 운송을 못 하고 긴급 하역 등으로 항만 지체료 등의 운송비도 추가 발생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A사는 우크라이나에 선적 예정인 제품과 관련해 대금결제를 받지 못했고, 이 때문에 항구에 보관 중인 제품에 대한 보관료와 정박기간 이상 항만에 머무른 '체선료(정박료)' 등을 요구받고 있다. A사가 제조하는 제품은 우크라이나 외에는 수요가 없는 품목으로 다른 나라에 다시 팔 수도 없는 상황이라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선박자재 제조 및 수출업체인 B사는 발주처가 지정한 운송주선인을 통해 간접수출 거래를 진행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 발주처에서 대금을 지급 받지 못 했다. 중소기업진흥원에 긴급 자금을 신청했으나 해당 거래가 직수출이 아니라 지원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실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2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96.1로 조사됐다. 지수가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기업들이 다음 분기 수출 경기가 전분기보다 악화할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격화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의 여파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실제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상승'(27.3%)과 '물류비 상승'(25.2%)을 수출 애로사항으로 지목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對)러시아·벨라루스 수출통제가 26일부터 시작돼 피해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26일부터 57개 비전략물자 품목과 기술에 대한 러시아와 벨라루스로의 수출 통제를 시행했다. 통제 대상에는 반도체와 노트북, 스마트폰, 항공기탑재 통신 장비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나 벨라루스에 해당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코로나19 재확산 조짐이 보이고 있는 중국의 상황도 변수다.
상하이시 정부는 위챗(중국판 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도시 동부와 서부를 4일간 순차 봉쇄한다고 밝혔다. 도시 봉쇄가 길어질 경우 반도체 대란을 비롯해 공급망 문제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상하이는 중국 금융 허브이자 경제 수도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모두 564개사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 LG이노텍, SK하이닉스, 현대오일뱅크 등은 현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롯데케미칼, SK종합화학(상해국제무역) 등이 현지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농심, 오리온 등 식품기업도 상하이에 생산 공장을 가동 중이다.
정부는 공급망 차질이 발생할 경우 신속통관 지원, 제3국 대체수입선 발굴 등 지원에 나선다. 기획재정부는 현지 공관과 코트라 무역관, 무역협회 지부, 한국상회간 유기적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소재부품수급대응지원센터, 공급망 분석센터 등을 통해 기업 공급망 애로를 발굴하고 맞춤 지원을 진행할 계획이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