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필도 목사님의 헌신과 기도, 오래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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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로교회, 22일 본당에서 고인 입관예배
故 정필도 원로목사 입관예배에서 부산 석포교회 원로 이정삼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수영로교회 영상 캡처

부산 수영로교회(담임 이규현 목사)가 22일 오전 11시 본당에서 故 정필도 원로목사 입관예배를 드렸다. 예배에선 부산 석포교회 원로 이정삼 목사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단12:2~3)’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정필도 목사님이 회복되는 모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큰 어른을 잃었다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몰려왔다”고 고백했다.

이어 “(故 정필도 목사는) 1941년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데,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뜨겁게 체험했다”며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께서 장사를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팔지 말아야 할 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 정 목사는 어머니께 가게 문을 닫을 것을 촉구했다. 어머니께서 가게 문을 닫지 않자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다급한 마음에 어머니는 당시 정 목사님이 다녔던 창신교회 부목사님을 찾아가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고, 부목사님이 찾아가 설득을 했지만, ‘가게 문을 닫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처럼 정 목사님은 어렸을 때부터 주님을 향한 일사각오의 신앙이 뿌리 깊이 내려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결국, 가게 문을 닫았고, 정 목사님 본인이 가정교사 생활을 하며, 소년가장으로서 역할을 했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걸었다. 창신초등학교, 경기중·고교, 서울대를 졸업하고, 총신신대원을 나왔다. 정필도 목사님의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반드시 도를 깨닫고 전하리라’라는 뜻에서 개명한 것이다. 군에 입대하여 군목이 되었다. 그리고 부대 전원을 전도하기로 마음먹고 생활을 했을 정도로 복음의 열정이 대단했다”고 했다.

이 목사는 “군을 제대하고 나오니 서울 다섯 개의 교회에서 청빙이 왔다. 정 목사는 기도를 했고, 부산에서 구름떼처럼 양떼가 모이는 환상을 보게 되면서, 마침내 수영로 쪽에 개척하자고 했던 교회에서 시무하게 되었다”며 “실제로 구름떼처럼 성도들이 모여 교회는 확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IMF 영향으로 예배당 건립의 어려움이 찾아 왔지만, 정 목사는 예배당을 다 지을 때까지 무릎으로 예배당을 짓고, 목회를 했다. ‘눈물이 채워지는 만큼 은혜가 채워진다’는 말을 늘 하면서 결국 빚 없이 교회를 준공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든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은 이후 움직였고, 또한 성도들을 정말 사랑했다”며 “설교 중에 ‘미운 성도가 있을 때 미운 마음이 설교에 반영되면 그것이 독소가 되어 영혼이 병든다’는 말을 강조했다. 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이게 되면서 문제가 생길 때, 입을 닫고 기도할 것을 촉구했다. 본인의 체험을 늘 말했다”고 했다.

이어 “대외적으로 인기 있는 자리는 한 마디로 거절했다. 부산성시화운동 뿐만 아니라 은퇴하신 이후에는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말씀을 전했다”며 “이규현 목사님이 수영로교회에 부임하시던 날 권면했다. 대다수 교회들이 목사가 은퇴하면 가족에게 이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故 정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한 이후 신앙훈련을 하고 호주에서 목회를 하던 이규현 목사를 후임으로 세우셨다. 사람에게 욕심이란 있을 수밖에 없음에도 사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 그리고 복음전파에 중심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고수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정 목사님이 은퇴 이후 은퇴금, 사택, 자동차 등으로 시끄러웠다. 그러나 정 목사님이 현재까지 거주했던 사택까지도 교회 이름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 저는 박 사모님이 존경스럽다. 내 것이 없이 모든 것을 교회 이름으로 등록을 했다”며 “그리고 저와는 오랜 세월을 같이 지냈다. 성도들의 후원금과 헌금을 선교 지원에 모두 보탰다. 이후 선교비 계좌를 따로 만들었다”고 했다.

아울러 “그분의 삶은 사심을 버리고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오직 예수, 오직 성령, 오직 믿음이었다”며 “우리는 섭섭하지만, 정 목사님은 그렇게 주님의 품에 가셨고, 그의 많은 열매들이 또 다른 다음 열매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영전에 부치는 글’을 읊으며 말씀을 끝 맺었다.

“당신의 아픈 몸을 천사가 업고 떠나는 그날, 몹시 외롭지 않았습니까? 82년의 생애가 아픔에 피 흘리며, 인생의 터널을 조용히 빠져 나갈 때 목사님도 우리처럼 슬펐습니까? 우리의 문병도 끝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서둘러 빠져 나가시니, 진달래 꽃망울 보다 더 빨리 터져 버린 이별의 슬픔을 알게 하신 정 목사님, 살아서는 말이 없던 목사님, 떠날 때는 구름처럼 말을 건네 오시네요. 목사님을 알던 이들은 모두 그 깊은 목소리를 생년보다 더 가까이 듣고 있습니다. 3월에 목사님을 입관하면서 바람은 멎었지만 눈물은 멎었지 않았습니다. 82년에 목사님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삶이 슬프도록 아름답고 성실해서 당신의 양떼들은 숨죽여 울고 있습니다. 평소의 더 드리지 못한 사랑의 한을 가슴으로 불러내며 숨죽여 울고 있습니다. 시들어진 갈대풀 대신 영혼들이 표현된 눈물의 꽃으로 영전 앞에 올려놓고 우리는 살기 위하여 집으로 갑니다. 살아가며 더러는 목사님을 잊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정 목사님. 한 번의 기도만도 못한 이 엽서를 바람에 띄워 보내는 어리석음도 아직은 저희가 살아있다는 탓이겠지요. 이제는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하늘로 올리는 기도의 시작이니 우리들의 만남 또한 새로운 것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죽었다고 하지 않고, 떠나셨다고 말하렵니다. 정 목사님, 언젠가 다시 만날 환희의 그날까지 평안히 계시길 빕니다.”

부산성시화여성기획단장 조금엽 권사가 조사를 전하고 있다. ©수영로교회 영상 캡처

이어서 부산성시화여성기획단장 조금엽 권사가 조사를 전했다. 조 권사는 “이 시간 어떤 말씀을 전해야할지 다 알 수 없지만, 우리와 이 자리에 함께 계시는 성령님께서 사랑하는 박신실 사모님과 유가족 그리고 수영로교회와 성도님들, 우리 모두를 위로·격려하시며, 슬픔을 뛰어 넘는 감사와 소망 주시길 기도하면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이어 “어제 故 정필도 목사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 들었던 생각은 부러움이었다. ‘평생을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의 전진과 확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던 목사님은 선한 싸움을 잘 싸우시고, 달려갈 길을 잘 마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는데, 남은 나는 어떻게 이 삶을 살아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 안에 있었다”며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오늘처럼 장례예배를 드리지만 모두가 잘 사셨다고 박수를 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목사님을 보내야 하는 슬픔 중에도 있는 힘을 다해 마음에서 울어나는 사랑과 존경의 박수를 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故 정필도 목사님의 삶을 아름답게 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우리 하나님을 찬양한다. 두 번째 드는 생각은 목사님께서 선한 모범이 되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라며 “누군가 길을 가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는 뒷모습을 보며 따라가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제가 아는 정 목사님은 그 삶이 단순하고 선명했다. 목사님의 삶을 요약하면 그저 기도와 선교였다. 성도로서 어떤 가치를 좇아야 할지 고민하는 저와 우리에게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실제 그 삶을 삶으로 살아내신 멋진 스승이었다. 우리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주셨다”고 했다.

이어 “저는 마리아처럼 기도하고 마르다처럼 섬기는 마마클럽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는데, 마마클럽은 2008년 하나님께서 여섯 명의 무명의 여인들을 모으시고, 기도를 시작하게 하셨다. 그 당시 저는 방송사 일로 부산의 16개 부근의 교회들을 다니다가 항구도시인 부산과 교회들의 어려움을 보게 되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에 어머니 몇 사람이 모여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어머니금식기도회가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수6:16)’라는 주제로 열렸고, 부산성시화운동 이사장이셨던 정 목사님이 말씀해 주시길 ‘이것을 예수님 오실 때가지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부산에 기도의 불이 붙고 부산은 어미니들이 기도하는 도시로 운동이 일어나면 엄청난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3년이 지난 지금 부산을 비롯해 전국 14개 지역에 모여 기도하고 흩어져 개교회와 가정과 도시 그리고 나라를 위해 기도의 발전기를 돌리는 어머니연합기도운동, 도시연합기도운동으로 세워졌고,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갈망하는 그 불은 또 다시 다른 도시로 번져갈 준비를 하고 있다”며 “목사님의 격려는 단순한 격려가 아닌 우리가 사는 모든 땅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길 소망하는 기도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기도가 오늘 우리의 기도로 이어져서 하나님의 역사가 되고,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목도하며 놀라게 된다”고 했다.

또 “하나님의 심장으로 한국교회를 사랑하시고, 이 도시와 열방을 사랑하셨던 故 정필도 목사님의 헌신과 수고와 기도를 우리는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라며 “죽기로 결정하고 사명의 자리를 지킨 그 뜻을 마음에 새기며 따르겠다”고 했다.

아울러 “故 정 목사님을 하나님의 품으로 보내드리는 시간인 동시에 목사님의 손에 쥐었던 기도·선교·부산성시화의 배턴을 우리가 받는 시간이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의 끝에 서 본다.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고 물으실 주님의 질문 앞에도 서 본다. 우리에게 남은 날을 계수하며, 이대로는 안 되는 우리의 삶에 대한 각성과 결단을 선물로 받는다”며 “목사님께서 감당하셨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기도의 자리를 우리가 채우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열방을 향해 손을 펴는 선교의 심부름을 우리가 감당하길 원하며, 언젠가 우리의 여정이 끝나는 날 주님과 함께 목사님을 만나 뵙길 소망하면서 믿음과 소망으로 다시 허리를 동여맨다”고 했다.

한편 위로예배는 23~24일 오전 11시, 천국환송예배는 오는 25일 오전 9시 수영로교회 본당에 드려질 예정이다. 본당 1층 평강홀에서 조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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