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기독인연합(이하 서기연) 1학기 개강 예배가 지난 21일 오후 7시 서기연 유튜브 채널을 통해 드려졌다. 이날 예배에서는 이상갑 목사(산본교회, 청년사역연구소 대표)가 ‘설래임(說來臨)’(창세기 12:1~4)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상갑 목사는 “인생은 시계를 따라 살아가는 인생과 나침반을 따라가는 인생이 있다. 시계를 따라가는 인생은 계속해서 성공하려 하고 높이 올라가고 빨리 가고 싶어 한다. 나침반을 따라가는 인생은 나침반이 어디를 가리키냐를 주목한다. 이 나침반은 성경이라는 나침반이다. 나침반을 따라 사는 삶은 성공이 아니라 성경이 초점이 된다. 세상은 시계를 따라가면서 성공을 추구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인생이다. 그러므로 설래임(說來臨), 말씀이 와서 임하는 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창세기 12장 1절에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임했다. 설래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와서 말씀하실 때 1절에 두 단어 ‘떠나라’와 ‘가라’를 주목해야 한다.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세상의 우상숭배로부터 떠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곳으로 계속해서 가야 한다. 우리가 신앙에 있어서 떠나야 할 곳을 가는 것, 가야 할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지치기와 접붙임의 원리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무엇을 가지치기하고 있는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세상은 끊임없이 성공을 추구한다. 성경을 읽어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성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았다. 다른 말로 믿음으로 복음으로 살았다. 어느 순간 기독교가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으면서 조금씩 변질이 일어난다. 계속해서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라고 외쳐야 하는데,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고지론이 한때 유행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아브람이 살고 있던 곳은 우상숭배지였다. 우상숭배지에서 떠나라는 건 단순히 지역적, 지리적 개념이 아니다. 내가 주인 삼은 잘못된 가치, 잘못된 세계관, 잘못된 삶의 방향과 목표로부터 떠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서 계속해서 가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성경에 가지치기와 접붙이기, 떠나라는 것과 가라는 것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 시편 1편이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이 나온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아니하고’라고 가지치기를 한다. 세상이 보기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가지치기하라는 것이다. 말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청년의 때부터 가지치기하는 훈련을 말씀을 붙들고 씨름해 나갈 때 민족을 위해서,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는 인생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를 기독교로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세상과 구별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성경은 떠나야 할 것을 떠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음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말씀에 계속 접붙이기하는 것이다. 말씀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계속해서 읽고 묵상하고 삶으로 연결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기독교인으로 바로 서고자 한다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삶으로 연결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 3절은 모든 일이 다 형통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형통하다’는 의미는 세상의형통이 아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열매다. 우리가 가지치기할 건 가지치기하고 접붙이기할 건 접붙이기 한다면 반드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영성이 열매로 맺어진다. 예수님의 영성은 심령의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 긍휼히 여김, 마음이 청결함, 화평케 함, 의를 위해서 손해 보고 희생하는 삶, 핍박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팔복의 영성이 깊이 뿌리내린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방향성”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말씀을 따라서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관계없이 반드시 맺어지는 또 하나의 열매가 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 신의 성품이다. 기독교가 이 팔복의 영성과 성령의 9가지 열매로 세워진다면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될 것이다. 교회는 세상과 똑같아졌을 때 버림받았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때 세상 속에 소금과 빛으로 분명하게 자리할 때 교회는 어느 시대나 세상 가운데 대안과 희망으로 자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회에 정말 있어야 할 건 말씀의 역사,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임재다. 오늘날 동산과 부동산, 금과 은은 많아졌다. 깊이 들어가 보면 그 중심에 성령의 역사가 사라지고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고 순종하고 예배하는 삶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 부분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우상숭배지에서 아예 떠나게 한 것이다. 지역만 옮길 뿐 아니라 기준, 가치, 방향을 전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삶으로 바꾸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떠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게 하셨는지 창세기 12장 2~3절에 그 목적이 나타난다.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께선 블레싱(blessing)이 되게 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 블레싱은 세상적인 복이 아니다. 성경에 블레싱의 어원 중 하나는 블리드(bleed) 피를 흘리다 이다. 진정한 블레싱, 복이 된다는 건 피 흘림이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리시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친백성이 된 증거가 블레싱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다면 우리의 삶의 자리 곳곳에서 이 피 흘림의 흔적이 나타난다. 이 피 흘림을 통해서 복으로 세워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저는 이 말씀을 대학교 묵상하다가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가 복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본다는 야고보서 말씀에 필이 꽂혔다. 그 당시 저는 한 가지 불평이 있었는데, 왜 교회는 고아들을 돌보지 않는가였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그 말씀을 통해서 네가 그 일을 하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학우들과 보육원을 찾아가서 섬기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우리가 말씀 앞에 순종하며 도전하는 삶,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다. 그리고 교회와 세상이 가진 문제에 대해서 문제제기로 끝나지 않고 내가 교회라는 것, 이 시대 예수라는 것을 인식하고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내가 헌신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부의 목적, 삶의 방향도 거기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다양한 방면의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공부의 최종결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다. 내게 주신 은사와 은혜를 따라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교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머무는 곳에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내가 순종하는 것이다. 청년의 때는 결코 어린 때가 아니다. 말씀을 읽고 순종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통해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저는 지금도 내 삶을 세상이 추구하는 부, 명예, 권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일상과 일터로 연결할 수 있을까를 씨름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영역으로 나가게 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초점을 두고 씨름하기를 멈추지 않길 바란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말씀한다. 기독 청년들이 세상과 다른 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의 씨름이 있는 삶”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창세기 12장 4절에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말씀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가 여러분의 삶에 기록될 수 있다면, 여러분이 받은 은사와 은혜를 따라 여러분이 서 있는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친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나타날 것이다. 세상은 다른 사람의 피를 흘려서 나를 세운다. 기독교가 말하는 블레싱은 하나님 주신 은사를 가지고 내가 머무는 영역 속에서 내가 피 흘림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세워가는 것이다. 그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흉년의 때에 말씀이 와서 임한다. 창세기 26장에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지시하는 땅에 머물라는 말씀이 와서 임한다. 애굽은 비옥한 땅인데 약속의 땅 가나안은 사막이고 광야이다. 왜 이곳이 약속의 땅이냐고 질문하는데 어느 순간 깨달아졌다. 아무리 비옥해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곳이 약속의 땅이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 내 인생의 흉년의 때일지라도 말씀하시는 그 땅에 머물고 씨름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이 시대 필요한 일들을 해 가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삭은 그 씨름을 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그런데 블레셋이 와서 계속 방해한다. 이삭은 포기하지 않고 양보하고 다시 파서 세 번째 우물 르호봇을 얻는다. 중요한건 그 과정이다. 이삭이 정말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계속해서 우물을 팠다. 때가 되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로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심을 우리가 본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최고의 축복이 아닌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 말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초점이 이것이 되어야 한다. 세상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거기서 무슨 선한 영향력이 나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일어나겠는가. 오히려 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성경에서 벗어난 삶을 산다면 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조롱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끝까지 따라가므로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시는 것을 본다는 고백을 듣는 인생이 된다면 이 세상은 이 말씀을 따라 아름답고 가치 있게 세워질 것이다. 청년의 때부터 피 흘림을 통해서 복으로 빚어가는 은혜의 경험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권면했다.
그는 “이삭의 아들 야곱은 얍복나루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야곱에게 임하는데 그 정체성을 확인시키면서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않고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말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자이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 자기정체성을 회복한 삶, 그 정체성을 따라간 삶의 회복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 시대는 굉장한 경쟁의 시대다. 굉장한 스트레스와 긴장에 사로잡혀 죽음 직전까지 갔던 한 형제에게 시편 23편 말씀을 선포했다. 그러자 다 죽어가던 청년에게 생기가 들어가면서 지력이 회복되고 영혼이 회복되고 씨름하던 것에서 완전히 헤어나오면서 초점이 하나님께 맞춰지면서 변화되는 것을 봤다. 그 형제에게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아니다. 네가 정말 씨름해야 하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 자체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세상과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게 주신 은사와 은혜가 무엇인가를 청년의 때에 씨름하면서 계속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뭐라고 하는지 그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요셉은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 하신다. 요셉이 그 꿈을 붙들고 그 꿈을 들으라고 외치자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고 노예로 팔려 가 온갖 고생을 한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하자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죄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요셉을 하나님이 빚어 가신 이유가 여기 있다. 기독교인이 내가 하나님 앞에 죄지을 수 없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코람데오 스피릿만 회복한다면 이 나라가 바뀔 수 있다.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 내가 득죄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 시대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청년들을 하나님이 지금 찾고 계시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의 씨름을 하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도전했다.
이 목사는 “이 시대는 소유 중심의 시대, 맘몬이 지배하는 시대다. 모든 언론이나 매스미디어 심지어 교회마저도 돈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말씀을 같이 바라보고 소유 중심의 삶이 아니라 소명 중심이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가는 각 영역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진다면 이들로 인해서 이 나라 이 민족 이 백성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이 아브라함의 이름에 오늘 이 시대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가기를 축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