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통합 총회 경북노회청년회가 주관하는 ‘싱글생글 크리스천 연애와 결혼, 세계관 특강’ 2주 차인 지난 19일 오후 평산교회(담임목사 김기동)에서 사자그라운드 대표 ‘책 읽는 사자’가 ‘크리스천은 어떻게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강의했다.
책 읽는 사자는 “넌크리스천과 기독교인은 세계관이 다르다. 세계관은 곧 안경이다. 어떤 안경을 쓰고 사느냐에 따라서 보는 게 달라진다. 보는 게 달라지면 이해가 달라지고, 이해가 달라지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만 산다. 기독교변증가 C.S 루이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건 내 자아를 주님께 양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영혼과 생활과 신앙의 모든 부분을 주님이 왕이 되시라고 결단하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정의는 넌크리스천이 생각하는 연애와 결혼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복음적 논리가 귀결된다”고 했다.
그는 “결혼을 생각할 때 기독교인은 좀 달라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를 수 있다. 영적인 세계를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결혼에 대한 영적 상징을 같이 생각하고 믿어야 한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결혼에 대해서 유물론적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부모의 곁을 떠나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의 신비와 사랑이 서려 있는 제도이다. 우리가 창세기 1장을 진리라고 믿는다면 모든 시초가 하나님이시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은 인간이 만든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창세기에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부터 결혼에 대한 제도를 선물해주려고 작정하셨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다. 인간이 취소하겠다는 개념이 아니다. 기독교인에게 결혼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상징하는 영적 신비의 하나님의 축복의 제도이다. 하나님과 그 백성의 결혼이 원본이고, 남편과 아내의 결혼이 사본이다. 이 본질부터 순서를 제대로 해야 거룩하게 연애할 수 있고, 거룩하게 결혼할 수 있다. 결혼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와 목적이 있다. 결혼은 배우자와 그 길을 같이 걸어가는 여정의 시작”이라고 했다. .
이어 결혼의 영적인 의미를 존 파이퍼 목사의 책 ‘결혼 신학’을 통해 △결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결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두 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결혼은 인간이 유물론적으로 종족 번식과 생계 활동에 더 유리하니까 합쳐서 산다는 개념이 아니다. 주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와를 창조하실 때부터 작정하신 신의 선물이 결혼이다. 그 결혼은 굉장히 큰 영적인 신비가 투영되어 있다. 결혼만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예배드리기 위해서 태어났다.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순간은 예배를 올려드릴 때이다. 우리는 언제나 예배자의 버전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도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다. 이런 예배자의 마음으로 결혼 준비와 결혼식과 결혼생활의 모든 것의 주인공이 하나님 되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런 마음 상태로 결혼해야 자연스럽게 연애에 대한 개념이 생긴다. 연애한 사람과 무조건 결혼하라는 게 아니라 연애할 때 매우 진지하게 시작하라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 진지해야 한다. 연애를 매개로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많다. 상처받아서 다른 교회로 가지만 정착하지 못한다. 특히, 팬데믹 동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번 가면서 나도 모르게 믿음이 예전 같지 않고, 넌크리스천화 될 가능성이 크다. 연애라는 매개를 통해서 사단의 미혹이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다. 상처로 인해서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면 좋은데 이 사람의 인격적 결함과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같이 생각한다. 연애 때문에 시험이 들고 떠난다면 연애 역시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성역 중의 하나”라며 “젊은이들의 연애와 결혼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데이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여기에서 미디어의 문제가 나온다. 우리가 연애할 때 이렇게 사귀어야 한다는 방법론을 어디에서 배우는가. 예수를 왕으로 모시지 않는 PD들이 만든 컨텐츠, 예수를 왕으로 모시지 않는 연예인들이 웃으면서 한 이야기, 그 잔상들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남는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받아들이는 그 인상은 철저히 거룩과는 등진 컨텐츠가 많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했다.
이어 “연애는 인격적인 대화이다. 신앙은 기본이고 신앙관이 엇비슷해야 한다. 부부간 유사성이 높을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결혼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교제 기간에 서로의 생각과 신념, 느낌, 행동을 최대한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컨셉팅으로 연애하는 분이 있는데, 컨셉팅으로 상대를 속이는 격차만큼 결혼하고 나서는 더 벌어진다. 진지한 고민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진지하게 내 신앙적 고민을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중요하다. 이게 인격적 대화, 연애”라고 했다.
이어 “올바른 영적인 유사성은 올바른 성경 이해에서 비롯된다. 크리스천의 결혼, 연애는 서로 간의 영적 유사성을 높여야 한다. 영적 유사성은 성경적으로 높여야 한다. 행복은 하나님이 살라고 하신 길대로 살아가는 게 행복이다. 기독교인은 신이 있다고 믿는 유신론자다. 그 신을 인격신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인은 성삼위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하신 신이라는 것을 믿는 유일신론자다. 또 기독교인은 끝이 있다고 믿는 종말론자이다. 끝날에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데 선악을 구별하는 주체, 기준이 예수님이다.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 도덕관점, 윤리관점, 결혼의 기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기독교인이 넌크리스천의 세계관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부부생활을 한다면 영적인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모든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다. 세상이 말하는 절대주의자다. 우리는 예수님 밖에 구원의 길이 없고 예수님께서 옳다고 하는 게 선이다. 넌크리스천은 신이 없고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가 다라고 믿는 유물론자이다. 이런 관점으로 사니까 결혼은 진화론적으로 종족번식이 유리하게, 둘이 함께 살아서 재산 증식하는데 유리한 게 결혼이다. 우리가 성경이 진리라고 믿는다면 주일에 한 시간 예배드리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내 전 인격이 바뀌어야 한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말씀대로 사는 게 옳다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예수에 사로잡힌 인생은 반드시 거룩과 음란의 개념이 생긴다. 성경을 안 믿는 사람들은 거룩과 음란의 개념이 없다. 그러니까 연애할 때 방법론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성경은 거룩과 음란이 있다고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연애하는 생활도 거룩의 연장이 되어야 하는데 힘들다. 음란의 컨텐츠가 쓰나미처럼 빨려 들어와 여러분의 동공 속으로 들어간다. 사탄은 우리의 영적인 목덜미만 보고 있다가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이건 연애, 취미, 습관, 특기라고 카테고리를 나눠놓는데 사탄은 카테고리를 나눠놓고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에베소서 6장에 성령의 전신갑주가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과 성령 충만으로 사단을 이길 수 있다. 사단은 우리가 방패를 앞에 들고 있는데 칼로 찌르지 않는다. 우리가 거룩하게 예배드리고 밖에 나가선 기독교 세계관의 안경을 벗고 세속적, 인본주의적 안경을 쓰고 연인과 카톡을 하고, 스마트폰을 열고, 넷플릭스를 본다. 그 컨텐츠를 만든 제작자와 창작자가 어떤 세계관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복음의 필터도 없이 사탄의 설교를 쏟아 넣는다. 우리가 영적인 무장을 다 풀어놨을 때 공격하는 게 사탄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음란컨텐츠를 빨아들인다. 미디어로 받아들이는 걸 끊거나 거룩으로 돌아서지 않으면서, 연애할 때 넘어지면 안 된다고 하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연애, 결혼이 되려면 내가 거룩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요한일서 4장 7~8절을 보면 사랑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창세기 1장 1 절이 진리라고 믿는다는 건 우리의 모든 감정의 원출처와 저작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여기서 기독교인의 부부생활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는 영적인 유기성이 이어진다”고 했다.
이어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서 선포하고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는 개념이 자주 나온다. 우리가 너무 음란한 세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참고 견뎌야 한다. 우리가 작정해야 할 건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을 걸 작정하는 게 아니다. 주께서 인도하셔서 은혜로 죄를 뛰어넘게 해달라는 게 믿음이다. 우리의 연애가 거룩하려면 나부터 거룩해져야 한다. 우리가 자의적으로 거룩할 수 있다는 건 거짓이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연애와 결혼을 잘하려면 나의 성령 충만이 정답”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가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한 커플이 마태복음 1장 23~25절에 나온다. 요셉은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성욕 자체가 더럽다는 잘못된 근본주의에 빠질 수 있다. C.S 루이스는 성욕을 피아노 건반으로 비유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악보를 보여주실 때 성욕이란 피아노 건반을 눌러야 할 때 눌러야 한다. 성욕 자체는 축복이고 성관계는 축복이다. 피임도구가 개발되면서 성관계와 결혼을 뜯어놓고 있지만 원래 성관계는 하나님께서 소중한 생명을 주시는 축복의 도구이자 매개이다. 성욕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것이다. 단 언약 안에서 결혼 후에 배우자와만 누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영위하는 게 참 행복이라는 걸 진지하게 깨닫기 바란다. 사탄은 이 영적 원리를 잘 아니까 우리가 결혼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또 결혼은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이기 때문에 극도로 싫어한다. 사탄은 생명이 잉태되니까 우리가 아름답게 배우자와 성 생활 하는 것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옳다고 하고 축복이라고 하는 게 세속사회에서는 점점 내가 기준이 된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게 하는 것도 선택권의 문제라고 한다. 연봉이 낮으니까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한다. 내가 맞다는 걸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축복의 질서를 깨기 시작한다. 연예인들이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혼전순결을 비웃는 풍토가 토크쇼에서 나오고 그런 문화가 점점 익어간다”며 “우리의 연애와 결혼은 생각보다 진지한 본질적인 영적인 싸움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 회개의 완성, 마침표는 습관의 변화이다. 눈물 흘리고 두 손 들고 찬양하는 건 시작이다. 실제 생각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염려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미디어를 끊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욕조다. 욕조에 불순물이 들어와 있는 상태인데 어떻게 청소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불순물에 집중하는데 욕조의 불순물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맑은 물만 틀어놓으면 된다. 말씀으로 씻겨야 한다. 우리의 불순종과 미혹과 타협됨은 말씀이 아니면 씻기지 않는다. 말씀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말씀을 듣고 미디어를 끊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연애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연애인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연애를 할수록 나와 예수님의 관계가 깊어진다. 우리가 연애를 하면 할수록 예배자의 일상성이 깨진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연애는 나와 예수그리스도의 예배자의 일상성이 깊어진다. 두 번째는 연애할 때도 내 생활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일상성이 유지된다. 세 번째는 거룩의 열매가 맺힌다. 이와 반대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연애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행복한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다면 먼저, 서로 간 영적인 유사성을 높이기 위해서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갖춰야 한다. 두 번째는 나 자신의 습관부터 거룩으로 바꿔야 한다. 세 번째는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연애하고 결혼해야 한다. 네 번째는 연애 결혼의 막연함에 짓눌리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시급한 연애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답안은 예수님과 나의 관계 개선, 즉 나 자신의 성령 충만이 답이다. 예수님보다 애인을 더 사랑할 때 영적 긴장과 균형이 깨지기 시작한다. 예배자의 일상성을 잘 영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마지막은 채점이 아닌 용서와 관용으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걸 부추기는 게 관용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관용은 진리의 울타리 안에서 올바른 걸 선포하고 설명해주고 기다리는 게 예수의 사랑이다. 사람을 너무 기대하지 말고 이 사람을 붙들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강하신 오른팔을 의지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지금은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현실이다. 메타인지적으로 돌아볼 때 왜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으로 태어나서 이런 이야기를 지금 듣고 있을까. 거룩한 동역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속뜻을 공유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진지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한 비전을 나의 영혼의 반쪽과 함께 풀어가는 영적인 여정의 시작이다. 그 아버지의 속뜻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