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이역만리 한국에 온 지 4개월 만에 사망한 에티오피아 유학생의 소식을 듣고 한 유학생선교단체가 추모공간을 만들고, 현지 관습에 따라 시신을 본국에 이송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운 사연이 알려졌다. 모자이크 선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외국인 유학생 전문선교단체 글로벌비전센터(GVC, 대표 문성주 목사)의 이야기다. 이번 일을 계기로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과 국내 에티오피아 교민 사회, 현지 유가족 등과도 긴밀하게 소통하며 양국 우호 증진에 기여하는 등 민간 외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에티오피아 S씨, 한국 유학 생활 4개월 만에 유명 달리해
지난 1월 19일 오후 1시 40분경, 서울 용산 이촌동 한강대교 북단에서는 에티오피아 유학생 S씨(38, K대 박사 과정)의 시신이 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한 시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에 외상은 없었고, 에티오피아 여권이 함께 발견됐다.
하루 전날인 1월 18일에도 S씨와 통화한 에브라임 헤센 박사(서울대 에너지정책학)는 S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주변에 알렸고, 이튿날 자정이 넘은 시각 평소 멘토링 관계를 맺어온 문성주 목사에게도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전했다. 헤센 박사는 국내 1,200여 명의 에티오피아 교민 사회에서 리더십을 가진 이로, 특별히 같은 에너지정책 분야인 수자원 분야 관개를 연구하는 S씨와도 각별했다. S씨에게는 본국에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3개월 후 태어날 아이가 있었다.
문성주 목사는 “이미 본국에서 지위를 갖고 있는데, 국가 차원에서 전문지식이 필요하니 인재를 선발해 유학을 보낸 것”이라며 “지인들에 따르면 S씨는 아주 성실한 사람이고,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낯선 한국 땅에서 언어적 장벽과 문화적 장벽을 경험하고,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과 학업에 대한 부담 등으로 S씨가 극심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유학 초기는 누구나 적응 스트레스가 가장 높을 때다. 결국 S씨는 유명을 달리했고, 이 소식이 문 목사에게도 알려진 것이다.
문 목사는 S씨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도록 가장 먼저 센터 한편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주한 에티오피아 교민회 회장이 보내온 S씨와 가족 사진들을 사진관에서 인화하여 액자도 제작했다. 추모공간이 마련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한 에티오피아대사관 관계자를 비롯하여 에티오피아 교민과 학교 관계자 및 동기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에서도 방문해 고인을 추모하고 부의금을 전달해 왔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17일간 100여 명이 다녀갔다.
구정 당일에는 글로벌비전센터에서 에티오피아 유학생들과 교민 가족들이 모여 신년성회를 열었다. 문성주 목사는 “이날이 글로벌비전센터의 다니엘 작정 새벽기도 700일이 됐을 때였는데, 70명 가까운 에티오피아 교민이 모여 성회를 열어 감격스러웠다”고 말했다.
장례를 도우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시신을 에티오피아로 이송하는 일이었다. 에티오피아는 화장이 아닌 매장 문화이기 때문에, 1천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들더라도 시신을 본국에 이송하기로 했다. 또, 시신이 도착하기까지 금식하는 문화가 있어, 둘째를 임신 중인 S씨 아내가 금식에 들어가자 신속한 모금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시신 운반과 장례 등에 필요한 총 2천여만 원의 적지 않은 비용은 하나님의 은혜와 한국교회의 비움으로 넘치게 채워졌다.
지난 2월 5일 글로벌비전센터에서는 정성구 목사(전 총신대 총장, 한국칼빈주의연구원 원장)의 설교로 S씨의 발인예배가 드려졌다. 에티오피아학생연합회 대표 에욥 원두는 “S는 아주 헌신적이고 가정적인 사람이었고, 필요할 때 항상 도와주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우리의 짐을 많이 덜어주시고 친절함과 관대함을 보이신 문성주 목사님은 진정한 목사님”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S씨의 지도교수는 “어떠한 말로도 애도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그의 영혼이 죽은 것이 너무나 애석하고, 그의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며 “S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그의 추억은 영원히 남기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전쟁 때 도와준 나라가 에티오피아로, 한국과 에티오피아는 점차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많은 사람이 처음 이런 일을 경험했지만, 이번 기회가 소통의 시작이 되어 양국이 더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문성주 목사는 에티오피아 현지에 있는 S씨의 미망인과 두 자녀에게 기본 생계비와 양육비 등을 꾸준히 지원할 뿐 아니라, 자립을 돕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여건이 허락되면 에티오피아 현장을 직접 방문해 유족을 만나 필요를 듣고 지원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문 목사는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이기 때문에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교민 회장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번 계기로 에티오피아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에티오피아 기독 교민들은 “이 일을 겪으며 에티오피아인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해 한국교회에서 독립된 교회,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교회의 필요성을 느낀다”면서 “에티오피아 교회 개척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돌봄 사각지대의 외국인 유학생 도우려면...”
문 목사는 타지 생활에서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인적 돌봄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킹’이라고 말했다. “우선 대학교와 긴밀하게 네트워킹 되어야 유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인프라가 조성된다”며 “유학생 가운데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많다. 특히 대학원생은 학업량도 많고 학교 연구실과 집만 왔다 갔다 하는 굉장히 단조로운 생활 방식 때문에 친구가 없는 경우가 많고, 친구가 있어도 만날 시간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생처 산하 학생지원과 관계자들과 소통하면서 학교의 손길이 못 미치는 유학생들이 있다면, 이들과 교제하고 필요를 돕는 일을 교회와 선교단체가 담당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문 목사는 코로나19 등 여러 이유로 귀국한 해외 선교사들이 국내 유학생 사역을 할 것을 제안했다. “핵심은 늘 사역 현장에 있다. 현장을 잘 아는 귀국 선교사들과 교회, 선교단체가 연대하여 유학생 사역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이주민 선교 사역자, 유학생 선교 사역자를 양성하여 전국으로 파송하는 일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문 목사는 “코로나 상황으로 한국도 선교지로 생각하는 등 이주민 선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며 “그러나 실제적인 열매로 맺어지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담임목사님과 성도들의 마인드를 바꾸는데 최소 3~5년, 이주민 선교 훈련도 3~5년이 더 걸린다고 예상한다”며 한국교회의 꾸준한 관심과 동참을 요청했다.
한편, 문성주 목사는 글로벌비전센터의 사역 비전에 대해 “신명기 28장 1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세계적인 지도자를 양성하고자 한다”며 “요셉, 모세, 다니엘 같은 그 나라와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인재를 키우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국가별 리더를 키워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