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쩔 수 없이 찍었다는 국민의 마음 돌아봐야

오피니언·칼럼
사설

치열했던 22일 간의 대선 레이스가 막을 내렸다. 국민은 야당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제20대 대통령으로 선택했지만 어느 한쪽의 완벽한 승리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역대 유례없는 초박빙의 승부를 만들었다.

당초 국민의힘은 각종 여론조사와 지표를 근거로 여유 있는 승리를 장담했다. 그러나 출구조사에서 불과 0.6%차로 앞서는 결과가 발표되자 당혹한 표정이 역력했다. 반대로 겉으론 큰 소리를 치면서도 내심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던 더불어민주당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양 진영의 탄식과 환호는 정확히 5시간 만에 다시 갈렸다. 밤새 개표가 진행된 끝에 0.63% 포인트, 약 25만 표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 당선인은 역대 대선에서 가장 작은 표 차이로 승리한 대통령이 됐고 동시에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뤘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이 왜 정치 경험이 전무한 0선의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에게 대통령이라는 희망의 무거운 짐을 안겼는지 그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출구조사에서 유권자들이 윤 당선인에게 투표한 이유를 물어본 결과 후보로서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는 응답이 절반이었다. 그 어쩔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정권교체였던 것이다.

촛불민심을 기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한 때 80%대의 지지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문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 득표율이 41.8%였던 것을 감안할 때 거의 곱절이다. 여권에서는 이런 폭발적인 국민 지지를 발판으로 향후 20년을 넘어 50년 집권을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호기롭던 기세는 불과 5년 만에 정권교체라는 최악의 성적표로 나타나고 말았다. 문 정부와 180석의 거대 여당이 국민의 심판을 당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부동산 정책 실패 등 각종 경제 실정의 요인이 크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2030 세대에게는 부동산 문제로 인한 박탈감과 상실감이 지지 철회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문제는 단순한 시장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부조리, 즉 공정의 문제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현 정권에서 벌어진 조국 사태는 공정과 정의가 내 편과 네 편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기하고 ‘내로남불’마저 정치 수단화하는 권력을 국민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이번 대선의 키워드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40%대의 지지율을 보이며 역대 레임덕이 없는 유일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만 봐도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야당에 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20년은커녕 단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정치 평론가들은 문 정부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으로 무엇보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꼽았다. 문 대통령은 5년 전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인상적이고 멋진 취임사를 했다. 취임사를 가득 채운 미사여귀를 간추리면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꿔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키워 나라를 두 쪽으로 나눴다는 혹평을 받는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국민 앞에 한 그 숱한 핑크빛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딱 하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만 지켰다는 일각의 조소가 현실화되었다는 말이다.

정치 평론가 강준만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에도 40%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비결 중 하나로 ‘편 가르기 정치’를 들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지지율 하락을 겪은 것은 국익을 위해 지지자들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했기 때문인데 문 대통령은 끝까지 지지자 편만 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 정부의 실패 사례가 윤 당선인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갈라지고 쪼개진 나라를 통합하고 치유해야 할 막중한 책임과 의무는 그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 되는 순간 이미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른 0.73%포인트, 24만7,000여 표 차가 윤 당선인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이끌어줄 묘수로 풀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교계도 한 목소리로 국민 통합을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교회연합은 논평에서 “국민이 윤석열 당선인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은 것은 더욱 겸허하게 국민을 섬기라는 명령일 것”이라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를 버리고 국민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포용 대통령, 국민 통합시대를 여는 국민의 머슴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한국교회총연합도 “대통령 당선인은 공약한 대로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국민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상처 난 국민의 마음을 속히 치유하여 상생과 공존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앞으로 갈등을 봉합하고 협치를 구현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민을 화합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성숙된 사회를 이루고, 기독교 가치관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물론 윤 당선인이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가 ‘국민 통합’ 하나에 국한되진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정치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돌려놓는 것부터 시작해 친북·친중 외교 안보 정책의 전면적인 재편과 탈원전과 소득주도 성장 등의 정책 전환도 시급하다. 당장 ICBM 발사와 핵실험 등의 무모한 도발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도 윤 당선인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이 모든 국정 과제에 앞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썩 맘에 들지도 않고 경험도 일천해 표를 줘야 할지 망설이다 오로지 정권교체를 위해 찍을 수밖에 없었다는 그 국민의 마음이다. 그리고 절반의 국민이 나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냉엄한 현실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만일 절반의 승리에 취해 지지자만 바라보고 겸허한 자세마저 잃어버린다면 누구처럼 5년 뒤에 쓰디쓴 실패를 바로 그 국민이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