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귀족인 '시브자와 자작'이라는 사람이 미국의 초청을 받아 온 일이 있습니다. 여러 곳을 방문하던 중에 백화점의 왕이라 불리는 존 와나메이커가 섬기는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은 유교 신자라고 밝혔고, '유교의 인(仁)'과 '기독교의 사랑'은 결국에 같은 것이라고 연설을 했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와나메이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공자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자작께서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성자의 교훈을 믿고 따르시는군요.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여 오늘도 우리 곁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와나메이커를 본 '자작'은 그의 신앙적 용기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2013년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면서 이 이야기에서 작금의 몇몇 부끄러운 목회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올바른 신앙의 부활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요즘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교회의 모습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지경으로 세상에 지탄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 문제의 중심이 '교회 지도자'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안과 밖이 이러니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거스르는 '동성결혼'에 대한 문제 하나도 책임 있는 모습으로 대처해 가질 못합니다. 사회의 분위기와 여론을 몰아 미 연방법원에서 동성결혼이 불법이 아님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들이 활발합니다.
부활절이 되면 지역마다 나라마다 연합행사다 뭐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이라도 하듯 진행하면서 그곳에 소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목사님들을 강사로 세워 성도와 교회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찬양하고 선포하는 이 성스러운 예배에 앞서 자신들에게 주신 복음에 부끄러운 목사는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뭐 좀 한다 싶으면, 이름 좀 난다 하면 자기 위치도, 사역의 목적도 잊은 채 카톨릭이다 불교다 할 것 없이 부르면 쫓아가서 자신들이야말로 정말 깊은 신앙의 도를 깨달은 양 "어디에나 구원은 있고 무엇이든지 잘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가 거듭 될수록 그 수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절'에도 '부활절'과 '성탄절' 현수막이 걸리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앞에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 걸리고 '염주'와 '목탁'을 손에 쥔 스님들이 교회 강단을 접수하는 일은 이제 아주 가까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교회가 성숙해졌다고, 우리 목사님이 신력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좋아해야 할 일입니까? 즐거워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거기 관여하셨던 목사님들이 부활절연합예배에 강사로 서서 그 입으로 주님의 부활을 찬양합니다. 무엇이 진정한 모습인지 모르겠습니다.
백화점 왕 와나메이커의 당당한 고백은 유교 신자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진리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은 또 다른 신뢰감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 구원의 길 가운데 하나로 매도해 버리는 행위는 우리 스스로 주님의 죽으심을 저속한 죽음으로 '비하'하는 것입니다. 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 진리를 지키고 전하기 위해 생명을 아낌없이 희생하신 순교자들에 대한 모욕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근간인 '구원론'과 '기독론'이 흔들린다고 하면 이제 교회와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입니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이미 구약을 통해 예언되신 분이시며, 이미 스스로도 유일한 구원의 길이심을 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이루시려 사망 권세를 깨고 살아나셨습니다. 이 진리를 지키는 일에는 일평생 양보하지 않겠노라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외에 구원이 있음을 신령한 척 떠들어 대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야합했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과 함께 "오직 주님 많이 내 인생에 아니, 온 인류에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흔들림 없이 고백하며 증거할 수 있는 신앙으로 우리도 부활하길 원합니다." 고백하는 복된 날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