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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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수 박사, 5일 한복신 제98차 신학 포럼서 발제
전광수 박사가 5일 한복신 제98차 신학 포럼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줌 영상 캡처

한국복음주의신학회(회장 이승구 박사)가 5일 오전 제98차 온라인 신학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전광수 박사(Calvin Theologicla Seminary)는 ‘17세기 말 뉴잉글랜드의 신학과 자유의지론: 새뮤얼 윌러드와 죠지 키이쓰의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논쟁(1688~1704)’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전 박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종교개혁 신학과 후기종교개혁 신학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관한 잘못된 오해들에 대한 상당한 수정이 이루어져 왔다”며 “그러한 오해들 중 하나로, 개신교·개혁 스콜라주의와 종교개혁가들 사이에 대한 단절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점들이 반박을 받았고 중세 스콜라주의와 개혁 스콜라주의 사이의 방법론적 연속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주목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와 같은 특정 이슈 역시 정통 개혁주의 혹은 개혁·개신교 스콜라주의 혹은 칼빈주의자들의 입장이 운명론이나 스토아 결정론과 같은 강한 결정론으로,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과 반대된다고 주장되어 왔었다”며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개혁 신학은 어거스틴과 같은 오랜 기독교 전통,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 스콜라주의자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 왔다는 사실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7세기 말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인 새뮤얼 윌러드(Samuel Willard, 1640~1707)와 반스콜라주의 및 반개혁주의를 주창한 죠지 키이쓰(George Keith, 1638~1716) 사이의 논쟁을 들여다 보면 당시 개혁 스콜라주의가 신대륙에서 어떻게 발전하였고,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문제에 대해 개혁신학이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며 “새로운 정치와 사회적인 환경의 변화와 알미니우스 신학의 점증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7세기 말 뉴잉글랜드 청교도들은 큰 틀에서 개혁주의 신학 전통을, 방법론에 있어서도 개혁 스콜라주의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개혁 스콜라주의를 스토아주의의 결정론으로 보고 종교개혁 신학과의 불연속성의 근거로 삼는 견해들은 수정되어야 한다”며 “많은 종교개혁자들과 그 후예들이 신학에서 사용된 용어, 언어, 그리고 그 구분법들에 대해서 중세뿐 아니라 고대의 신학적, 철학적 전통의 수혜를 입었다”고 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문제에 있어서, 개혁 스콜라주의는 반아리스토텔레스주의, 반스콜라주의, 신플라톤주의에 기초한 퀘이커주의, 그리고 알미니안의 합리주의에 기초한 키이쓰의 관점과 비교할 때, 오히려 더 타당한 측면들을 지닌다”며 “키이쓰는 선택과 유기를 오로지 시간의 차원에서 고찰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을 지키기 위해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을 시간 속으로 제한한다. 이에 대해 윌러드는 키이쓰의 해결법이 신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들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키이쓰의 방식은 인간의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는 문제를 인간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며, 궁극적인 제1원리를 제2원리로 이해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키이쓰는 하나님의 작정을 오로지 허용적인 것으로, 그래서 악에 대해 미리 결정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세계의 질서 속의 인과관계로 제한하는 것이라 하겠다”며 “하지만, 제1원인과 제2원인들 사이의 근본적인 인과적 차이는 극복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그러한 차이를 좁혀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로 여기게 된다는 설명은 제1원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는 설명으로, 하나님을 시간 속에 가두고 궁극적인 유효원인을 단지 하나의 결과에 대한 선행 원인으로 제한하는 문제를 지닌다. 다시 말해, 모든 제2원인들에 대한 우위성을 가진 궁극적 원인으로서의 인과적인 우위를, 하나의 결과에 대해 가능한 여러 2차적 원인들에 대해서 어떠한 능력도 섭리적인 간섭도 가지지 못하는 단순히 인과관계의 사슬에서 첫 원인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에 비해, 윌러드의 개혁 스콜라주의의 입장은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작정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 복수의 인과성(mutiple causality)을 제안한다”며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은 인간성에 부여된 자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어떠한 단일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 하나님의 전능함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하나님은 모든 2차적 존재들의 행위와 작용들에 대해 지시하시고 간섭하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절대적 의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이 디자인하고 유지하는 피조물 세계의 원리들과 그 인과체계 안에서 2차적 존재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도록, 그것들을 매개적이고 도구적인 방식으로 일하신다”며 “하나님은 단지 인과체계의 처음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원인과 결과의 잠재적 원인이자 유효원인”이라고 했다.

아울러 “키이쓰는 이러한 인과관계의 복수성과 또 다른 형상인, 질료인, 도구원인과 같은 여러 인과성에 과한 이해를 하나의 유효원인으로 줄여서 이해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비판하는 홉스의 결정론을 따랐다”며 “하지만 윌러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인과적 차이를 유지하고, 그에 따라 하나님의 절대적 작정을 인간의 인과관계 속으로 제한하지도 않으면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양립하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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