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는’ 학생을 좀비로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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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작가

청소년이 주인공인 학교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19금이라 청소년이 보면 안 되는 드라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든, 이는 학교와 학생들의 현실을 어른들이 보고 생각하도록 이끌어주는 드라마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 ‘지금 우리 학교는’ 어떤 상태인지, 학생들이 어쩌다 좀비가 되었는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좀비 바이러스(요나스)의 근원이 효산고등학교임에도 어른들은 무관심했다. 학교 밖으로 나간 좀비에만 관심 있고 근본은 해결하지 못했다. 좀비는 효산시 전체로 퍼졌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 컴퓨터를 켰으나 정부는 “가짜뉴스가 퍼진다”라며 인터넷을 폐쇄했다. 가짜뉴스가 있었던 것이야 사실이겠지만, 정부는 어리석게도 모든 표현을 거세시켰다. 가짜뉴스를 막겠다며 국회에서 발의한 '언론중재법'과 같다. 이에 학생들은 인터넷을 시작도 못하고 더 큰 위기에 직면했다.

효산고 교장선생님(엄효섭)은 어땠나? 학생들이 단체로 좀비로 변하는 위기에 처했음에도 혼자 교장실에 숨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 전부터 드러났다. 학교폭력 피해자 학생이 있음에도 모두 숨기고 학교 이미지만 좋게 만들려 할 때 그의 이기심이 보였다. 마치 2014년 세월호 사고의 선장, 그리고 이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을 보는 듯하다.

스마트폰은 또 어떤가? 드라마를 보면, 지금 우리 학교는 카카오톡으로 선생님과 학생이 소통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초등학생만 되어도 스마트폰이 생기는 것이 오늘날의 분위기다. 과연 청소년이 스마트폰 내의 수많은 미디어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잘못된 문화를 보고 분별할 수 있을까? 분별력을 갖추기 위해 많은 것을 쌓아나가야 할 시기, 즉 아직 분별력을 갖추기 전인 청소년에게 스마트폰을 통한 권리를 늘려주는 것이 적절할까?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 내에서 스마트폰 사용 권리를 보장해준 것이 학생들의 삶을 바르게 이끌어줄까? 이는 학생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쌓아야 할 시간에 미디어가 말하는 대로 이끌려가는 좀비와 같은 어른으로 만든다.

현실의 좀비로 살아가는 어른들을 봐도 그렇다. 그들이 수많은 경로를 통해 잘못된 세계관에 빠져 좀비처럼 살고 있을 때 그들을 비판하고 처벌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 역시 필요하겠으나, 근본을 해결하려면 또 다른 좀비가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는 것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청소년 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가정과 학교를 보고 아이들에게 바른 방향을 제시할 때 해결할 수 있다. 가정에서 자녀들의 인성보다 성적에 관심 가지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편향된 교육을 한다면 청소년들을 현실의 또 다른 좀비로 양성할 수밖에 없다.

그럼 드라마에서 좀비 바이러스를 처음 만든 건 무엇이었나? 복수심이었다. 아들이 학교폭력 당한 것에 복수하고 싶었던 과학교사 이병찬(김병철)은 좀비 바이러스를 만든다. 그리고 아들을 괴롭혔던 학생을 감금하여 바이러스 실험을 한다. 학생은 좀비가 되었고, 감금에서 풀려나면서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결국 바이러스는 학교폭력 가해자 학생들을 좀비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피해자 학생들까지도 좀비로 만들었다. 물론 교장의 이기심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것이 이병찬을 크게 괴롭혔을 것이지만, 복수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끝은 모두를 황폐화시킨다. 어른의 왜곡된 복수심을 끊어내지 못하면 아이들만 피해를 입는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이처럼 오늘날의 학교 현실을 은유적으로 알려주면서도, 미혼모 박희수(이채은)의 아기 사랑과 박선화(이상희) 선생님의 제자 사랑 등을 보여 재미와 감동이 있다. 아쉬운 점은 억지가 많다는 점이다. 남온조(박지후)의 아버지 남소주(전배수)가 굳이 죽지 않고도 다 같이 살 수 있는데 억지 희생 코드를 만들어 억지 감동을 이끈다. 또 효산시에 퍼진 좀비를 잡기 위해 폭격 명령을 내린 계엄사령관 진선무(김종태)가 죄책감에 자살하는 부분이 그렇다. 좀비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서는, 바이러스를 만든 이병찬이 말했듯 좀비를 모두 잡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고 사령관은 유일한 방법을 이행한 것이다. 거기서 사령관이 자살하는 장면을 굳이 넣은 것은, 문제 상황에 현실적인 방법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괜히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것일까.

억지 코드를 넘어 청소년의 삶을 바라보자. 청소년들을 좀비와 같은 어른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면 어른이 먼저 해결해야 한다. 어리석은 정치, 어른들의 이기심과 복수심, 그리고 청소년을 향한 지나친 권리 부여가 청소년들을 좀비로 만들고 있다. 현실의 효산시에 사는, 좀비가 아닌 사람을 구출할 자 누구인가. 학교가 이를 해줘야 하나 그러지 못하면 나부터라도 나서자. 이기심과 복수심으로 뒤덮인 학교에서 아이 한 명이라도 더 지켜주려 했던 박선화 선생님처럼, 자신이 좀비가 되었을 때 자신을 묶어서라도 자녀를 지켜줬던 미혼모 박희수처럼.

황선우 작가(<선의 비범성> 저자, 문화비평 채널 <선우작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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