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은 단 한 번도 인쇄된 책이라는 틀 안에 갇힌 적이 없다. 물론 여러 번 등장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우리가 듣거나 읽는) 일련의 단어들이 조리 있게 배열되고 느슨한 서사 구조를 이루어 마침내 최후의 전투, 최후의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과 거룩한 새 도성의 도래에 관한 전망으로 마무리되는, 계시록이라 불리는 문헌 전승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문헌 전승은 초대 그리스도 교회에서는 큰 소리로 낭독되었고 그 후에는 두루마리에 손으로 기록되었다가 이내 코덱스로, 채색 필사본으로, 인쇄본으로, 오디오북과 소프트웨어와 모바일 웹 프로그램으로 변모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 전기를 통해 살펴보았듯 계시록의 단어들은 계속해서 서로 분리되어 새로운 문헌과 구전의 맥락으로 파고들었고, 끊임없이 다른 심상, 음악, 공간, 사물과 결합했다. 계시록은 책이 아니다. 좁은 의미에서의 본문도 아니며, 계속 확장하고 수축하는 다중매체 집합체다. 계시록은 우리의 일부다. 느슨하게 묶인 계시록의 심상과 구절들, 조각과 파편들은 사람들의 상상을 거쳐 수축하고 확장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새로운 계시록, 새로운 역사 도식, 새로운 지정학적 해독, 낯선 신들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 공현epiphany을 위한 새로운 무대, 휴거라는 새로운 환상, 홀로 남겨진다는 새로운 악몽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티머시 빌(저자), 강성윤(옮긴이) - 계시록과 만나다
생각해 보면 70 평생 해 온 모든 일이 씨앗을 뿌리는 일이었다. 열매와 수확을 생각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씨를 뿌리는 것은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고 하는 일이며, 씨를 뿌리는 사람만이 거둘 수 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거둘 수 없다. 물론 씨를 뿌렸다고 언제나 열매와 수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씨 뿌리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씨 뿌려 가꾼 만큼 거둔다는 것은 평생 내가 지켜 온 원칙이자 희망이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열매를 바라보며 나에게 주어진 일을 소명이라고 생각하기에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소명을 가진 사람은 피곤하지도 않고 지칠 줄도 모른다. 소명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즐겁게 일한다. 그래서 소명으로 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유이상 – 나는 오들도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지
당신이 선하고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위기와 고난이 피해 가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내가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어 하고 잘 될 것만 같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도 온다. 믿고 의지하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때로는 안에서부터 은밀하게, 누룩이 부풀어 오르듯 조금씩 커지다가, 갑자기 멱살을 잡아 순식간에 넘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누룩이 있어서 죄가 불어나는 세상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 넘어질 때, 우리는 아픔, 슬픔, 실의, 고통, 분노, 상실, 낙심 같은 감정을 맛본다. 내가 기대하지 않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들은 안전한 곳에서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마치 음식을 맛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양념처럼 삶에도 필요한 것이기에,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거의 매일 맛보게 된다. 그래서 인생을 요리할 때, 말하자면 살아갈 때 감정의 양념들을 어떻게 사용할지 요리법을 알고 있는 편이 차라리 낫다. 갑자기 멱살 잡히듯 맞게 될지 모를 위기를 견디고 극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탓이다.
임흥섭 – 그래서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