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중동 순방 성과를 놓고 뒷말이 많다. 마침 오미크론 변이의 국내 확산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로 안보 상황이 여의치 않던 터라 임기 말 대통령의 순방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특히 문 대통령이 순방 마지막 일정으로 택한 이집트의 경우 목표로 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귀국하자 야권에서는 ‘빈손 귀국’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더구나 중동 순방 중에 문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 경호처 직원 등이 코로나에 확진된 사실을 숨겼다가 뒤늦게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에 부채질을 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열흘만인 2일 이집트 현지에서 2조원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청와대는 K-9 자주포 수출 계약 성사를 “쾌거”라며 그 배경에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 대통령이 지난달 19~21일 중동 3개국 순방 중 마지막 방문지인 이집트에서 압델 파타 알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K9 자주포 수출 최종 타결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순방 기간 내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자 ‘순방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협상하지 말라’는 특별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통령의 지시가 결과적으로 “국익을 위한 통 큰 결단”이었다는 청와대 수석의 설명에 수긍이 간다. 그렇지 않아도 임기 말에 ‘버킷리스트’ 관광 여행이니 뭐니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 해외 순방이었는데 오로지 국익을 위해 ‘빈손 귀국’도 마다하지 않았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해 줄 만하다.
그런데 이런 평가에 찬물을 끼얹는 보도가 있었다. SBS 보도에 따르면 한화디펜스가 지난 2일 이집트 정부와 약 2조원 상당의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한국형 중거리 요격체계 천궁-Ⅱ를 아랍에미레이트(UAE)에 약 4조원대로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데 이은 대형 국산무기 수출 계약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타결된 계약의 이면이다. SBS가 취재한 내용을 보면 해당 무기의 가격을 대폭 인하한 데다 K-9 수출 대금 중 약 80% 가량을 이집트 정부가 아닌 우리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이집트에 싼값에 K-9을 넘기면서 돈까지 꿔준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돈을 꿔주면서까지 무기를 수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집트의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거저 돈을 빌려 현지에서 무기를 대량 생산하게 됐으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도 먹게 된 셈이다.
수출입은행은 수출하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거나 신용 보증을 서주는 일을 목적으로 설립된 은행이다. 다른 나라 정부에 돈 빌려주고 그 돈으로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물품을 구매케 하는 일도 가끔 있지만 그게 주 업무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 무기 계약 건은 전문가들조차 매우 드문 사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국가 간에 이루어진 이번 계약이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수입국에 유리한 조건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이집트 무기수출 건은 계약을 맺는 데만 10년 이상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 빌려준 돈을 받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지 걱정된다. 이것이 나쁜 선례가 될 경우, 차기 정권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한국형 전투기 KF-21 개발사업에 인도네시아를 참여시켰다가 지금까지 개발 분담금을 못 받고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구 소련에 현금 15억불을 차관으로 대줬다가 소련 정부를 승계한 러시아로부터 현금 대신 T-80U 전차 등 무기를 대신 받은 예도 있다. 이런 전례로 볼 때 이집트에 꿔준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는 언제부턴가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무기수출 계약을 성과로 포장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계약에는 눈에 보이는 한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순방의 성과라는 목표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데 선선히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줄 나라는 없다.
통상 임기 후반기를 맞은 대통령은 아주 급한 사안이 아니면 해외 순방을 삼가는 게 통상적이다. 초청하는 나라 입장에서 곧 물러날 지도자에게 연속성 있는 정책 협상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15일 중동 3개국 순방에 나섰던 문 대통령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쏠렸던 게 사실이다. 더구나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로 안보 위기가 가중되는 시점에서 컨트롤타워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정말 국익을 위해 해외 순방을 했다면 그 성과가 기대치에 못 미치더라도 모든 걸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의 말대로 “대통령은 기업의 손해보다 차라리 ‘빈손 귀국’이라는 비판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기업과 대한민국의 국익이 되어 당당하게 귀국했다”는 표현이 흔한 ‘자화자찬’이 아닌 정말 국익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었다면 비판이 박수가 되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기를 마친 후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통령이 끝나고 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런데 그건 문 대통령의 희망일 뿐 아니라 더는 초라한 모습의 전임 대통령을 보고 싶지 않은 온 국민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 종료까지 꼭 94일 남았다.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지금은 잦은 해외 순방 성과를 자화자찬하며 포장할 때가 아니라 차분히 정권 이양에 만전을 기할 때다. 임기 5년의 공과(功過)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