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날의 창조로서 그분은 그것들의 질서 있는 아름다움과 선하심을 바라보며 그분의 일을 멈추셨고, 우리를 그분께 동참하도록 초대하신다. 창세기의 첫 장은 그것을 읽는 모두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한 모든 것들의 창조주이심을 말하고 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그분은 단지 특정 지역의 신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게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의 조성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구약성경에는 교회가 답해야 했던 문제들이 제기되었다는 증거가 없다. 문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단순한 유출이 아니었고 인격화된 개념 이상의 분이셨다는 점이다. 그분은 사도들과 이야기하시고, 그들과 함께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분은 하나님과 실제적인 즉 그들이 가진 것보다 더욱 실제적인 교통을 나누셨다. 참으로, 그들은 구약성경에 그 흔적이 있다면 아주 적은 “신성한 인격 안에 있는 교제”, “신성 안에 있는 대화”를 엿들었을 뿐이다.
로버트 레담(저자), 김남국(옮긴이) - 개혁주의 삼위일체론
‘복음’이란 성부하나님은 인간의 구속을 계획하시고 성자하나님은 인간의 구속을 십자가 보혈로 성취하시고 성령하나님은 그 예수님만이 그리스도 메시야이심을 가르쳐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셔서 우리로 믿게 하셨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런 우리를 미래형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곳에서 삼위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영생을 누리게 하신 복된 소식을 가리킨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신 말씀에 따르면 죄와 사망은 늘 함께 붙어다닌다. 무겁고 음침하고 칙칙하며 뭔가 끈적끈적하다. 그 ‘죄’의 배경에는 더 무겁고 더 어두운 나락인 ‘사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느낌이 생생하게 다가올 때면 죄에 대한 경각심으로 더 긴장이 되곤 한다. 동시에 손에는 흥건하게 땀이 고이며 급기야는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게 된다.
이선일, 윤요셉, 이선호 –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을 거듭 나게 하신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자는 다만 죄 사함만 받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을 성령으로 거듭 나게 하신다. 더 자세히 말하면 예수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성령의 능력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거듭 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두 가지 은혜를 받음으로 비로소 참으로 죄와 악에서 구원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거듭 난 사람은 죄악을 미워하고 의를 사모한다. 이제부터는 마귀를 신봉하는 자가 아니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며, 자기의 욕심만 위하여 사는 자가 아니요 거룩한 일을 행하는 자이다. 전에는 아무 것도 아니하고 조용히 있을 때면 스스로 악한 일을 생각하고 악한 일만 행하던 자가 이제부터는 자연히 좋은 일을 생각하고 착한 일만 행하도록 그 마음이 완전히 변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은 하나님의 신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하시는 큰 이적이다.
야마무로 군베이(저자), 장형일(옮긴이) - 평민의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