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조원 규모의 새해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공개하자마자 정치권에서는 이를 35조원까지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야가 모두 증액 자체에는 동의를 하는 만큼 추경 규모는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2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추경안을 오는 24일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후 여야 합의를 통해 상임위 심의 일정 등이 정해지고, 정부 추경안에 대한 당정 간 협의도 이뤄지게 된다.
정부 추경안은 코로나19 방역 조치 강화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300만원의 방역지원금을 추가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예산은 9조6000억원으로 그간 지급했던 소상공인 지원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또한 소상공인 손실보상 재원도 1조9000억원을 추가해 총 5조1000억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방역 보강에는 1조5000억원을 쓴다. 이를 통해 2만5000개의 병상을 확보하고 치료제 확보, 생활 지원비, 유급 휴가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오미크론 변이 확산 등 예측하지 못한 방역 지출에 대응하기 위해 예비비 1조원을 추가로 확보해뒀다.
이러한 정부 추경안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확 바뀔 공산이 크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소상공인·자영업자에 지급하는 방역지원금을 1000만원까지 늘리자는 주장이 나온다. 여기에 손실보상률도 현행 80%에서 100%로 높이고, 보상하한액도 현행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확대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는 얼마 전 국민의힘이 기재부에 서면으로 전달한 추경 편성 요구안에 담긴 내용이기도 하다.
국민의힘은 이 요구안에서 소상공인 전기요금을 3개월간 50% 깎아주고, 그간 손실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문화·체육·관광 업종도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코로나 감염 관리 인력의 활동 지원 예산을 현행 6개월분에서 1년분으로 늘리고, 선별진료소의 검사 인력 활동 지원 금액 단가도 1만원(3개월 치)에서 2만원(1년 치)으로 바꾸자고 했다.
여당도 이러한 방향으로 추경 규모를 키우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정부의 추경안 발표 직후 대선후보들에게 추경 증액을 위한 긴급 회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이와 관련된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추경 편성에 100% 공감하고 환영한다"고 발언했다.
문제는 기존 정부 추경안보다 2배가량 커진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나랏빚을 내는 것 이외에는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예상보다 더 걷힌 세금 10조원가량을 활용해 이번 추경 재원을 충당하려고 했다. 초과세수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결산 절차를 끝낸 오는 4월 이후에나 쓸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대부분의 재원은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하게 된다.
10조원의 초과세수가 모두 국채 상환에 쓰이는 것은 아니다. 절차상 초과세수의 40%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교부세로 정산돼야 한다.
즉, 정부 추경안에 따라 14조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는 데에도 빚을 내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추경 규모가 35조원까지 늘어나면 그만큼 나랏빚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 추경안 기준 올해 국가채무는 1075조7000억원으로 본예산과 비교해 11조3000억원 증가한다. 이 액수가 1000조원을 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1%까지 치솟는데 이 역시 역대 최고치다. 나라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68조1000억원까지 증가하며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3.2%로 본예산과 비교해 0.7%포인트(p) 뛴다.
이 때문에 그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치권의 추경 증액 요구에 대해 꾸준히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홍 부총리는 추경안 발표 이후 이어진 브리핑에서 "거시적인 측면에서 물가 또는 국채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경 규모를 판단했다"며 "국회 논의 과정에 협의를 같이 하겠지만 가능한 정부의 추경 규모와 내용이 최대한 존중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정부 본예산 608조원에 대한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끌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 예산안에 담긴 사업에서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사업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재원 마련 방법에 대해 "일단 마련해서 집행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에 초과세수가 충분히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그때 가서 판단하면 충분하다"고 전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