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갖추어야 할 12가지 요소①] 기획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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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목사 (품는 교회 담임, Next 세대 Ministry 대표)

우리는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리더로 살아가게 된다. 또래 집단에서 리더로, 학교 혹 회사에서, 가정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리더로 살아간다. 왜 우리는 리더십에 대해 배워야 할까? 그 해답을 빈스 롬 바르디의 말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리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리더십에 대해서는 누구나 고민을 해야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리더로 섬긴다. 세상에서는 리더로 서 보지 못한 사람도 교회 안에서는 리더로 섬기는 쉬운(?)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막상 섬길 자리에 그냥 앉아만 있다면 아주 곤란하다. 이런 경우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있다. “말아 먹는다.” 지금 조국 교회의 문제는 리더가 아닌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리더의 부재가 문제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고, 역량이 부족한 자가 그 자리에 있는 자체가 아주 큰 문제다.

리더를 세울 때는 억지로 세워서는 안 된다. 정말 섬길 마음이 있고, 겸손히 자신을 부인하는 자를 선택해야 한다. 리더를 세울 때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다 세우면 곤란하다.

나는 “저, 리더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지체들을 세우는 것을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하고 싶은 사람보다 리더를 해야 할 사람을 찾아서 세우려고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져 가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본인이 하고 싶다고 아무에게나 CEO 자리를 내 주지 않는다. 주요 임원 자리에도 아무나 앉히지 않는다. 그만큼 리더 한 명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더를 돕는 부 리더 한 사람을 뽑을 때도 아주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은 부 리더로 세워져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부 리더가 리더가 된다. 그리고 리더들을 섬기고, 대표하는 탑 리더가 된다. 따라서 부 리더 한 사람을 선정할 때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정말 끔찍한 일에 휘말리게 된다.

부 리더 때는 몰랐던 모습이 리더와 탑 리더로 섬길 때 드러난다. 잘 성장하고, 성숙하지 않으면 좀 더 큰 리더십의 옷을 입을 때 여실히 그 허점과 부족함이 드러난다. 한 리더의 미성숙함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해야 할 공동체가 악취가 가득한 곳이 되게 만든다. 그래서 부 리더를 한 명을 뽑을 때도 신중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도하는 가운데 뽑아야 한다.

대구동신교회에서 청년부 리더와 섬김이를 450여 명가량 세웠다. 그때 청년부를 함께 섬겼던 교역자가 목사님 5명, 풀타임 전도사님 3명, 그리고 함께 섬기는 2명의 풀타임 간사님, 3명의 파트 타임 간사님과 같이 리더십을 세웠다. 그때 리더를 세우는 원칙은 교역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리더 혹은 섬김이로 뽑지 않았다. 부 리더를 뽑을 때도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선정했다. 그런 뒤 리더로 세울 때 다시 점검하고, 탑 리더로 섬길 때 조금이라도 시비가 있으면 뽑지 않았다.

디렉터로 섬길 초반에 탑 리더로 세워도 될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내가 생각할 때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세우려고 했는데 반대하는 교역자가 있었다. 디렉터가 얘기했으니 통과 시켜 줄 법도 한데 안 뽑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예전과 달라졌으니 예전 모습을 염두에 두지 말고 탑 리더로 한번 세워보자고 했다. 디렉터가 그렇게 하자고 하니 더 이상 반대를 하지 않았다. 아... 그런데 몇 개월 지난 뒤 문제가 터졌다. 그 탑 리더로 인해 리더들이 힘들게 되었다. 함께 동역하는 지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 뒤로 아무리 디렉터라 할지라도 누군가 아니라고 하면 세우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리더를 세웠느냐는 그 한 사람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호수 전체를 다 구정물로 만들 듯한 사람이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것은 한순간이다.

한 선교단체 전국 캠퍼스 간사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Time을 Timing으로 만들라!”특강을 하고, 잠시 쉬는 시간에, 한 캠퍼스 간사님이 다가와 질문을 하셨다. “캠퍼스에 한 지체를 세우려고 하는데... 이 지체가 섬겨주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세우기에 힘들 것 같기도 해요. 목사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절대 뽑아서는 안 된다고 대답하였다. 캠퍼스 간사 한 명이 50명, 100명을 책임지고 리드할 수 있다. 많은 리더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캠퍼스 간사님 자신도 확신이 없는 사람을 세워서는 안 되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인재(人材)가 아니라 전체 공동체를 힘들게 할 인재(人災)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냥 혼자 섬기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드렸다.

리더 한 사람의 역량은 10명이 아니라 사실은 50명, 100명이 가능하다. 한 사람이 생각보다많은 사람들을 잘 케어할 수 있다. 그러나 리더로서 역량이 부족한 섬김이에게 50명 혹 100명을 맡기면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5명 혹은 10명만 간신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차라리 캠퍼스 리더 한 사람이 50명, 100명을 맡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리더가 아닌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있는 것은 바르지 않다. 함께 하는 공동체 지체들에게 어려움을 주고 그들의 성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작은 공동체일수록 오히려 리더 한 사람이 여러 명을 케어할 수 있다. 그러나 마구잡이식으로 맡기면 좋지 않다. 일단, 리더를 양성하고, 이양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절대 맡겨서는 안 된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은 교육과 훈련을 더 받고 성숙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좋다.

어린 자녀에게 불을 주는 부모가 없다. 그랬다가는 화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 전체가 불탈 수도 있다. 또한 아직 어린 자녀에게 부엌에서 요리하라고 칼을 주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는 아무에게나 불을 주고, 칼을 사용해 보라고 할까? 멀리 내다보지 않고, 당장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리더로 사용하기보다 리더로 준비시켜야 한다.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이 교육을 받지 않고, 훈련을 받아야 할 사람이 훈련을 받지 않고, 섬기는 것은 결코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리더로 쓰임 받고, 이미 현재 리더로 서 있더라도 리더십에 대해 더 숙고해야 한다. 지금부터 다룰 12가지 리더십 요소를 균형 있게 가지고 있다면 더 건강한 리더로 공동체를 잘 리드하게 될 것이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12가지 요소 1: 기획력

리더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요소는 기획력이다.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먼저 전체 그림을 그리고,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획력’이다. 리더는 멀리 내다 보고, 어떻게 그 길을 가야할 지 고민하는 자이다. 리더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무엇을 할지 알지 못하면 공동체는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교회 내 작은 공동체를 맡았을 때는 기획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L.T.(Leadership Training)를 가야겠다. 비전 트립은 어디를 가야겠다. 멤버들과 교육과 훈련은 무엇을 듣게 해야겠다.’이런저런 부분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으로 구상해야 한다.

나는 젊은이 목회를 하면서 다음 해 사역 기획을 보통 가을쯤인 9월부터 시작한다. 10월이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는다. 11월이 되면 교역자들, 부장단들, 임원단들과 함께 마무리 정책 회의를 한다. 마지막으로 12월 초 담임 목사님께 보고를 드리고, 수정 보완할 사항이 있는지 검토한다.

이렇게 하면 그다음 해 사역의 모든 그 일정들이 픽스된다. 다음 해 일정이 담긴 달력을 만들고, 이것을 통해 다음 연도 7월, 혹 8월 언제 비전 트립을 가고, 수련회를 가는지 멤버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홈페이지에도 공지하여 다음 해 일정을 참고해 휴가를 쓸지 알도록 한다.

이렇게 사역 기획을 미리 하면 좋은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 비전 트립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유럽 비전 트립을 준비할 때 티켓을 일찍 구매하면 저렴하게 예매할 수 있다. 그러면 유럽 비행기 티켓을 8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필리핀 같은 경우는 20만 원대에도 가능하다. 그런데 출발하기 한두 달 전에 예매하려면 2~3배는 더 지불해야 티켓을 끊을 수 있다. 가까운 중국 연길도 100만 원 혹은 120만 원을 주어도 티켓 구매하기가 어려워진다. 사역 기획을 통해 준비를 미리 하지 않으면 그만큼 비싼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리더가 기획을 안 하거나 느리게 하면 팔로워가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늦게 준비하다 보니 20만 원이면 되는 경비가 100만 원이나 들게 된다. 그러면서도 가는 것 자체가 감사한 것이라고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리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복잡하고 어렵게 표를 구하고는 이렇게 간증한다. 기도 제목이 이루어졌습니다! 기적적으로 간신히 표를 구했습니다! 주님이 도우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니다. 이것은 완전 ‘놀렐루야!’다. 왜 그런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값을 톡톡히 치르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사역 기획을 미리 해야 한다.

방향성도 미리 잡아야 한다. 내년은 성경 읽기에 주안점을 둘 것인지, 특별새벽예배는 언제, 얼마 동안 할 것인지 미리 정해야 한. 특별한 일정은 없는지, 먼저 고민하고,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리더만 그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어야 기대감도 있고, 마음속으로 사모하며 동참하게 된다.

기획은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브레인스토밍이다.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는 대략적으로 어떤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교육과 훈련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떤 교육과 훈련이 공동체 지체들에게 필요한지 떠올려 보는 것이다. 성경적 상담학교가 필요할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정말 필요하다면 어느 분야의 어떤 전문 강사분을 모시면 좋을지 그려 보는 것이다.

주위 사람과도 이런 생각을 나누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얘들아, 얘들아, 내년에 이거 하면 어떨까?”, “우와~”. 공동체 또한 정말 필요로 하면 반영하여 계획을 잡는 것이다. 물론, 항상 지체들이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리더의 생각을 공동체 일원들과 나누며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브레인스토밍이 되면, 그 다음 단계는 기획의 단계이다. 그것을 언제쯤 할지 연중 계획을 짜는 것이다. 브레인스토밍만 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년 계획을 구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에서는 꼼꼼하고 디테일하게 계획을 잡는 것이다. 이렇게 자세히 몇 주에 걸쳐서, 어느 장소에서, 어떤 강사를 모시고, 무슨 내용을 중점적으로 할지 세부적인 계획을 구상해야 한다.

그냥 뭉뚱그려서 생각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년에 섬겨 줄 강사에게 연락하고, 가능한지 체크해 봐야 한다. 그리고 강사에게 교회에서 잡은 방향성을 나누어 드려야 한다. 다른 강사분들은 어떤 강의 중심으로 하는지 미리 파악하고, 통화하는 강사님은 어떤 강의를 집중적으로 해 주시면 좋을지 알려 드려야 한다. 그리고 강의 일정이 가까이 오면 다시 연락을 드리고 리마인드 시켜 드려야 한다.

이런 브레인스토밍, 기획, 세부적인 계획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다 필요하다. 각자 생활하고, 일하는 곳에서도 요구된다. 심지어 개인적인 삶에도 적용하면 좋다. 각자의 인생에서 40살까지는 무엇을 하고, 60살까지는 이런 것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80세까지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22살 때 신학교 도서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앞에 흐르는 남한강을 보고 있었던 날이 있다. 길게 쭉 흐르는 강을 보면서 ‘아, 인생의 40살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생각해 봤다. 그냥 문뜩 그런 질문에 스스로 이런 마음을 먹었다. ‘아, 공부를 해야겠다. 국내에서도 하지만 외국에서도 공부를 하면 어떨까?’ 사실 그 당시에는 유학을 가는 게 흔하지 않았다. 신학교에서 유학 가는 선배들이 많지 않았다. 특히나 나는 그럴 가정 형편도 아니었다. 신학교를 입학하는데도 집에서는 반대를 심하게 하였다. 신학교를 가면 호적에서 파 버린다고 하셨다. 집을 나가라고 하셨다. 유학을 생각해 본 뒤 영어 공부를 좀 더 성실히 하게 되었다. 영어 성경책만 읽었다. 채플실에서 기도할 때 떠듬떠듬 영어로 기도를 했다.

당시 학교에 외국 분들이 한 4~50명 계셨는데 그분들과 아침, 점심, 저녁을 같이 먹었다. 주말에도 학교에 남아서 그 외국 목사님들 라이드도 해드리고 같이 이야기도 나누었다. 식사뿐만 아니라 기숙사에서도 같은 방을 썼다. 그래서 신학교 다닐 때 얼굴도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외국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일부러 외국인 무리 속에서 그분들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그분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외국에 가면 느끼고 경험하게 될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멀리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시는 것 같아서 섬겨 드리고 싶었다.

외국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니 외국인 같이 되었는지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친구 전도사님 집에 가게 되었다. 어머니가 전도사님을 잠시 따로 부르시더니 속삭이셨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전도사님은 아주 크게 웃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셨길래 그렇게 크게 웃냐고 물었다. 전도사님은 어머니께 들은 얘기를 나에게 했다. “동남아에서 오신 분이시냐?”.

유학이라는 단어를 브레인스토밍하고 난 뒤 내 삶은 많은 부분 바뀌었다. 40살까지 공부를 어떻게 할지 기획을 해 보았다. 한국에 구약학 교수가 없는 것을 알고는 언어를 많이 공부하기로 하였다. 신학교 때 모든 선택 과목을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 독어로 했다. 총신대학원을 가서도 언어만 선택과목으로 택해서 들었다. 히브리어, 헬라어, 독일어, 영어 그리고 라틴어 수업까지 들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서는 영어 공부에 매진하려고 아예 헤드셋을 끼고 학교에 다녔다. 졸업하고 나서야 내 별명이 ‘노란 헤드셋’이었다는 것을 들었다. 24시간 헤드셋을 끼고 도서관에 가고, 길을 다녔다. NIV 영어 성경을 들으면 영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숙사에서 잠잘 때도 들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외국 방송을 틀어 놓았다. 그 당시는 영어 프로그램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영어를 배울 인터넷 매체도 없었다. 공영 방송 외에 주한미군을 위한 AFKN 채널 하나뿐이었다. 이 AFKN 방송을 보다가 틀어놓고 잤다. 그런데 어느 날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지나니 문장이 들렸다. 새벽에 미국 사람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크리스천 법률대학원에서 영어로 메시지를 전했다. 대구동신교회에서 5년 동안 영어 예배 디렉터로 영어 설교를 했다. 유학할 때도 많은 어려움 없이 수업과 과제를 했다. 유학 가기 전에는 학원에서 1년 동안 영어 강사를 하기도 했다. 교회에서 주는 사례비의 15배 많게는 20배 정도 벌었다.

영어를 준비하여 유학을 가니 성서학에 깊이 뛰어들 수 있었다. 영어 공부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집중하고, 더불어 고대 근동어인 시리아어와 아람어를 공부할 수 있었다. 심지어 시리아어 교수님한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교수님의 해석이 틀릴 수 있습니다.” 교수님도 이렇게 말했다. “학생도 틀릴 수 있다.” 서로 해석이 맞지 않을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배우는 나 자신이 틀렸을 수 있다. 나중에 그 과목의 교수님이 A+을 주셨다. 영어 자체가 어려울 수 있었지만, 유학에 대해 브레인스토밍하고, 어학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세부적으로 기획했던 것이 삶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사실 브레인스토밍, 계획, 세부적인 기획만 잘한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섭리해 주시고, 역사해 주셔야 한다. 신학생 시절,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외국에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래서 북미 사람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졸업한 신학 대학교에서 아는 전도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학교 교수님이 외국 교수님 커플에게 서울 가이드를 시키셨는데 본인은 영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내가 영어를 곧잘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켄과 엘리 교수님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 교수님 부부가 나중에 북미로 유학을 할 수 있도록 초청해 주셨다. 개인적으로 캐나다 부모님이 되어 주셨다.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유학할 때, 금요일마다 근처 한인 금요기도회를 참석했었다. 기도하는 시간이 너무나 감사해 매번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유학 생활을 보냈다.

2018년 8월 말 10년 동안 섬긴 대구동신교회를 사임하고, 3주 동안 캐나다에 다녀왔다. 가서 켄과 엘리 교수님 부부를 뵈었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건강하고, 은퇴 후에도 협력 목사로 교회를 섬기고 계셨다. 그분들은 나의 캐나다 부모님 같은 분들이시다. 지난번에는 나의 두 딸 하음과 주예의 캐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어 주셨다. 호텔을 잡아 주시고, 큰 쇼핑몰의 놀이 공원에서 하루 종일 놀아 주셨다. 젊은 사람도 아이들과 함께하면 피곤한데 두 분은 피곤한 내색도 없이 신나게 놀아 주셨다. 천사와 같은 이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안 날 수가 없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두 분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한다.

유학을 가고, 좋은 분들을 만난 것도 사실은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준비해 나가는 과정에서 받게 된 축복이다. 이를 위해 기도도 했고, 주님께서도 선하게 역사해 주셔서 기대하지 못한 더 큰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주님 앞에서 기도하며 부어주실 은혜를 바라보고 큰 틀을 잡아보라. 그리고 그 틀 안에서 세부적인 그림을 그려나갈 때 각자에게 주실 선한 열매가 풍성하게 맺어지게 될 것이다.

김영한 목사(품는 교회 담임, Next 세대 Minist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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