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변화다. 상상을 초월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주변에서는 코로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라고 한다. 그 변화는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위기와 불안이 우리를 뒤덮고 있다. 특히 기독교는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처럼 인식되어 더욱 큰 지탄을 받고 있어 사회적 신뢰를 잃고 있다.
미국 예일대 교수이자 역사학회장이었던 케네스 라투레트((Kenneth Scott Latourette, 1884년~1968년)는 “영향력 면에서 본다면, 인류 역사에서 기독교만큼 큰 영향을 끼친 단일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고,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년∼1975년)도 “우리 서양문명은 기독교회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한국의 근대사에서도 기독교의 선한 영향력은 다르지 않다.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배재대학교, 배화여자대학교 등 근대교육, 세브란스병원, 이화여대병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등 근대의료, 사회복지의 시작인 태화복지재단 등 기독교로 인한 영향력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다. 성경을 통한 한글보급으로 문명개혁을, 여성들의 교회를 기초로 한 사회활동으로 평등구현을, 근대교육으로 교육혁신을, 근대의료의 시작으로 의료혁신을, 최초의 한글점자개발로 언어혁신을, 민족과 독립운동으로 나라사랑을 이룬 것이 한국교회이다.
한국 기독교는 변화의 아이콘(icon)이었고, 개혁과 혁신의 주역이었다. 한국교회의 회복은 복음으로 근대역사를 이룬 그 선한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는 길이다. 영향력도 떨어지고 호감도도 떨어지고 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더 힘들어진 시대 상황을 기회로 삼자. 이 기회를 살려야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 다산지역의 교회 예배에 참석해 “교회를 교회 되게, 예배를 예배 되게, 우릴 사용 하소서”를 찬양하다 가사의 한 대목에 울컥 은혜를 받으며 자꾸 입가에 맴돈다.
사도 바울은 ‘에클레시아’(교회)를 건물과 조직을 뛰어넘는 공동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요, 신분과 인종과 언어의 경계를 뛰어넘어 평등한 민주적 모임으로 생각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생각한 것이다. 지금 현재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새로운 질서(New Normal)의 재편’이다. 바울은 그 ‘새로운 질서’를 전혀 새롭지 않은 것에서 찾았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것에서 찾았다. ‘새로운 질서’를 요구받는 한국교회는 회복을 위해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헌신이 필요하다.
남양주시 특히 다산신도시의 발전은 눈부시다.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신도시’라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신도시는 발전과 더불어 양극화로 접어든다. 주변 양정동을 보면 그 발전성과가 과연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가. 도시 형성과정에서 생활터전에서 쫓겨나는 원주민들의 피눈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신도시교회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존립 근거부터 명확히 규정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그만큼 지역과 선교, 마을공동체에 대한 교회의 관련성이 야기된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일까. ‘저출산 고령화’아닐까. 출산을 어떻게 장려하고, 노인 빈곤문제에 어떻게 동참해 문제를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교회의 방향성에서 지역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괴로움과 죄가 있는 세상을 외면해야 할까. 아니면 두 눈을 부릅떠야 할까.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교회가 모이는 것만큼 지역과 세상을 향해서 흩어지는 본래의 사명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교회가 변화된 현실에서 미래교회를 준비하며 이 땅의 젊은이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다시 희망을 노래하고 꿈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시급한 일들이 무엇일까? 교회가 지역과 함께하며, 다른 세대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포용이 절실해 보인다. 지치고 힘든 때일수록 가정마다 회복되고 지역의 기초인 교회가 소외된 사람을 보듬어 주어야 하는데, 교회마저 코로나 상황에서 심각한 어려움 속에 제대로 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다산신도시에는 60여 개의 교회가 있다. 이들이 자리나 명예에 대한 욕심도 버리고, 섬기고 낮아지고 헌신하고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지역의 필요를 채우기 시작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주민들과 호흡하며 제2의 삶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주면 어떨까. 개교회 중심의 작은 영역에서 범위가 점점 넓어져 동네만이 아니라 지역 사랑으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산동은 금년 말까지 인구 수가 15만 명에 이르게 되는데,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사회보장협의회가 있지만 그래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데 교회가 연합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것 같다. 다산신도시를 마을공동체가 살아나는 ‘다산특별시’로 만드는 일에 다산행정복지센터(박승복 센터장)와 다산기독교연합회(회장 최식 목사), 서부희망케어센터 (신영미 센터장)와 다산문화예술진흥원(이효상 원장) 등 지역의 기관들이 함께 선한 디자이너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부희망케어센터 신영미 센터장도 “교회가 전하는 따뜻한 마음이 이웃들에게 전달돼 모두가 즐겁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지역 사회를 위한 복지 사업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한다.
교회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 병든 자, 죄를 지은 자, 소외된 자의 친구가 되셔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을 베풀었을 때,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된 공생애 동안에 저 멀리 시리아와 요단강 건너편과 예루살렘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도움을 받았다. 교회가 십자가를 지고 적극적으로 지역과 세상을 향해서 나가야 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교회 주위에서 고통당하는 강도만난 자에게 참된 이웃으로 다가가는 교회의 예수사랑의 길이다.
교회의 선한 영향력은 지역의 ‘MZ’세대를 품는 일이다. ‘MZ세대’는 밀레니얼(Millennials)의 M과 Z제네레이션(Generation)의 Z를 합친 합성어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축복하면서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것은 바로 이 시대의 MZ 세대를 품고 교회를 일깨우는 말씀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 건물은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이를 위해 ‘공유’해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일과 MZ 세대를 품는 일은 지금 고난 속에 있는 한국교회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이제 미래 한국교회는 스스로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모임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교회의 공간을 제공해 주면 좋겠다.
MZ세대를 끌어안는 모임을 위해 교회 시설을 제공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다산 지역의 미래가 소외된 자를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젊은이들의 활동무대가 되어 미래를 향해 날개를 펼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모든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자유롭게 찾아올 수 있는 공유 장소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 참에 NGO단체들이나, 아동센터, 작은 도서관 등 지역 사무실을 별도로 할 것이 아니라 미래교회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공간이 되도록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이 되도로 생각을 전환하고 예산을 재편성해 지원하며, 공유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 선한 영향력은 뻗어 갈수록 좋다. 교회가 플랫폼(platform)이다.
이효상 원장(시인, 칼럼니스트, 다산문화예술진흥원)
#이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