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은 에베소서 4:11~12절이었다.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개역한글).
우선 여기 한글에서 12절을 보면 교인들의 할 일은 "봉사"라는 데에 못을 밖아놓아서, 교회에 와서는 국수나 끓이고 청소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서, 지난 100년 간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 김상복 목사님의 말씀이셨다(2000년 6월 분당 할렐루야교회에서 개최된 "평신도목회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된 주요 치명적인 요인은 한글성경 번역에서 기인되었다는 것이다. 영어 성경들을 보면 두 가지로 번역되어 있다. The work of SERVICE; 그리고 The work of MINISTRY. 어찌됐든 한글 성경은 초기 선교사님에 의해 번역되었기에 어떤 영어 성경에서 따 왔는지를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The work of service라는 영문에서 그대로 번역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봉사의 일"로 우리 한국교회에 100여년 전해 내려온 것이다. 이런 오류가 바로 고쳐져야 한다는 게 현재 성경학자들과 목회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미국에서 40~50년 전에 이런 얘기들이 학자들과 목회자들 사이에서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평신도 사역자"라는 말이 번지기 시작했다. 목회자는 "구비시키는 자(Equipper)"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고, 평신도들 역시 "사역자"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12절의 주요 요지이다.
엡 4:11~12절을 다시 보면 초대교회 때는 교회 안에 5가지 직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평신도를 훈련·구비시켜 주님으로부터 그들(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역(ministry)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오리지날 성경·희랍어의 근본 의미인 것이다.
이것을 재발견하고 강조한 학자들이 제임스케네디(코랄리지 장로교), 짐갈로우(Ph.D from Drew), 그레그옥덴(Fuller 교수), 폴스티븐스 교수(캐나다밴쿠버), 그리고 한국에선 김상복 목사님이시다.
Dr. Melvin 목사님은 이 개념을 Calling으로 연결해서 강조하셨다. 평신도도 목회자들과 같이 100퍼센트 하나님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되지 않은 데에는 목회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 목회자의 문제는 신학교 책임이고, 신학교의 문제는 교수들의 책임이다. 안수받는 목회자 양성에 급급한 신학교들은 목회자 위주로 커리큘럼을 만들고, 또 훌륭한 목회자 배출에 치중하기에 평신도와의 관계, 즉 how to equip laypeople to do their work에는 관심가질 여유가 없었다.
여기 케냐의 교회들에서도 목회자만 100퍼센트 Calling 받았다는 인식이 교회 안팎에 편만하니 그것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우리 대학의 사명이기도 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미래의 케냐교회는 현재의 신학생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서병채 목사(케냐 멜빈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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