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민중신학의 두 번째 전거인 교회사
서남동은 민중신학의 두 번째 전거로 교회사를 든다. 그는 “원래의 ‘오실 메시아’ 영상(고난 받는 민중을 구원할 메시아)이 비정치화 되어서 천상의 그리스도 영상(지상의 지배 질서를 보장하는 자)으로 바뀌었다. 메시아가 그리스도로 비정치화 되면서 정치적 차원의 십자가형은 종교적 차원의 십자가 상징으로 비정치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천년왕국은 차안적此岸的인 것이며, 역사와 사회가 새로워지도록 만드는 자력적自力的 구원으로 이해한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말하기를, 타력적他力的 구원에 해당하는 예수의 피는 “유대교의 종교의식에서 쓰이는 희생양의 피가 다만 예수의 피로 대치되었을 뿐이고, 그 대속은 율법적・기계적으로나 마법적・화학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서남동은 삼위일체 교리를 민중신학의 전거로 삼음에 있어 12세기의 요아킴 플로리스, 그리고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앙드레 말로의 주장을 수용한다. 그는 역사의 전체 세대를 구약의 성부시대와 예수 당시의 성자시대, 그리고 성령시대로 구분한다. 그는 점진적 계시 과정을 통하여 성자는 성부를 능가하고, 성령은 성자를 능가해서 종말을 향하는데, 이것이 민중신학의 전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령의 시대는 곧 민중의 시대”라고 단언한다. 그는 오늘의 세속, 희망, 혁명, 해방, 정치, 민중, 그리고 성령을 1965년 바티칸 제2공의회와 1966년 WCC 교회의 사회협의회(제네바)를 기점으로 한 “탈기독교시대의 신학”으로 자리매김 하여 민중을 성령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는 성령의 교회는 하나의 사건event이기 때문에 꼭 예배당이나 목회자가 있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분명 그가 말하는 성령은 전통신앙과 신학의 성령과는 전혀 다르다.
서남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로 김지하, 손진태, 안병직, 이우성, 강만길, 이기백 등을 꼽는다. 특히 김지하와 안병무, 그리고 이기백의 민중사관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작가 김지하의 담시 <장일담>을 민중신학의 모본 단계로까지 승화시킨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 전개는 기독교가 전래되기까지 상호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바,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논할 대상이 아니다. 그는 한국의 향가, 경기체가, 별곡, 고려가요, 장가, 속요, 시조, 가사, 풍요, 국문소설, 판소리, 탈춤, 신시 등의 문화예술마저 앙드레 말로가 말한 “신들의 변형”으로서 민중신학에 편입시켜 지배계급에 대한 민중항쟁의 자기해방으로 해석한다. 그는 고은의 《미륵신앙과 민중》에 감화를 받고 “불교의 미륵신앙이 기독교의 ‘천년왕국 신앙’에, 미타신앙이 기독교의 ‘신국신앙’에 어쩌면 그렇게도 상동(相同, homolougs)하는가”하고 경탄해 마지않는다. (계속)
최철호 목사(예장 합동총신 직전총회장, 한교연 다음세대를위한교육위원장)
#최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