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자와 비접종자를 구분하는 ‘방역패스’ 적용 대상이 대형마트 등 다중이용시설 17개 업종으로 확대되면서 형평성 논란과 함께 방역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연일 비등하고 있다.
‘방역패스’란 백신 접종을 완료했거나 코로나19 PCR 검사에서 음성으로 확인된 사람에게 정부가 발급하는 일종의 증명서다. 이런 ‘방역패스’가 어제(10일)부터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국민생활 밀착형 시설에까지 확대되면서 형평성은 물론, 방역 효과에 잇단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접종자를 차별한 것이라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일관성 없는 정부의 방역 정책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논란의 내막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렇다. 대형마트 하나만 놓고 볼 때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에게는 ‘방역패스’가 적용되고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은 예외로 인정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방역 당국은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해당 시설 종사자들에게는 ‘방역패스’를 적용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사용자와 종사자를 구별해 침투하면 모를까 방역에 왜 고용문제가 끼어드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마트에서 장 보는 사람은 ‘방역패스’ 인증이 안 되면 혼자라도 들어갈 수 없는 반면에 마트에서 종일 일하는 사람은 백신을 맞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쉬 납득할 국민은 없다.
형평성 논란뿐만 아니라 ‘방역패스’ 시행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도전과 저항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백신 미접종자를 불합리하게 차별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과 함께 실제로 정부를 상대로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이 줄을 잇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1,023명은 지난해 12월 31일 보건복지부 장관 등 방역 당국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17종 시설 모두 방역패스 적용을 취소해달라는 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방역패스’ 줄소송은 앞서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4일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 등 청소년 이용시설에 대한 정부의 방역패스에 대해 집행정지를 인용한 것이 일종의 도화선이 됐다.
‘방역패스’ 확대에 따른 사회적 논란에 대선 후보들도 가세했다. 야당의 두 유력 대선 후보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정부의 방역 정책을 신랄히 비판하며 모처럼 입을 맞춘 것이다.
윤 후보는 지난 9일 SNS에 올린 글에서 “10일부터 ‘마트에 갈 자유’조차 제한된다. 장을 봐 집에서 밥도 해 먹을 수 없게 하는 조치는 부당하다”며 “비과학적 주먹구구식 방역패스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안 후보도 전날 SNS에서 “문재인표 백신패스는 비과학, 비합리적”이라며 “방역은 정치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방역이 비과학 비합리 비상식적이라는 볼멘소리가 야당 정치인에게서만 나오고 있는 게 아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 정책이 과학적 근거가 아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불신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것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문제투성이의 ‘방역패스’를 이번 주부터 대형마트 등에까지 확대하면서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하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런 ‘방역패스’ 형평성 논란의 불씨가 엉뚱하게 종교시설, 특히 교회 예배에까지 튀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일부 언론 등에서 식당이나 마트에 ‘방역패스’를 적용하면서 교회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이중잣대’가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 하나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일부 교회시설 등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사례를 말하고, 둘은 이미 교회 등 종교시설은 ‘방역패스’보다 강력한 규제와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교회는 예배시 수용인원의 30%만 가능하다. 아무리 큰 교회라도 299명을 넘을 수 없다. 또 접종을 완료한 사람이라도 70%밖에는 허용이 안 된다. 이는 식당과 마트 등에 접종 완료자 수에 제한이 없는 것만 비교해 봐도 이미 그 어떤 시설보다 훨씬 강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방역 당국도 교회 등 종교시설은 미접종자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방역패스’ 보다 더욱 강화된 조치가 적용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방역패스’는 최근 오미크론 변이의 전 세계적인 확산세 속에서 확진자와 위중증 환자가 동시에 폭증하자 정부와 방역 당국이 고심 끝에 내놓은 ‘고육지책’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백신접종 완료율을 높여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최근 변이 바이러스와 돌파 감염 사례로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시행 한 달 만에 효과도 미미하고 국민 사에 갈등만 유발한다는 불만이 마트 확대 적용과 때를 같이해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야당 유력 대선 후보가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버스와 지하철은 되고, 생필품 구매는 안 되는 대책을 누가 받아들이겠느냐”. 생필품 구매를 위한 최소한의 자유까지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방역패스에 대한 존폐를 판가름할 법원의 결정이 이르면 금주 내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라도 정부가 백신 접종에 따른 효과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그래야 이 혼란을 수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