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서공회에서 베드로전서 새한글성경 번역 작업을 맡았을 때, 꼭 바로 잡고 싶었던 본문은 3:21 하반 절이었다. 이 본문이 베드로전서의 ‘출애굽 신학, 나그네 된 교회론’을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개역개정은, 세례란 “육체의 더러운 것을 벗어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라고 번역해 놓았다. 여기서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라는 대목은, 그 이전 개역한글에서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역동적으로 번역했던 본문이다.
개역개정과 비교할 때, 개역한글이 원문이 놓인 문맥의 흐름을 훨씬 잘 반영하는 잘 된 번역이라고 생각했다. 그 타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2009년도에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c의 번역과 해석”(<신약논단> 16/2호, 589-628)이라는 논문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에 새한글번역에서 이 본문은, “선한 양심이 응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로 번역하게 되었다. 개역한글로 되돌아가지는 않으면서, 개역개정의 ‘선한 양심의 간구’라는 정체된 표현보다는 나아진 번역으로 생각한다.
베드로전서 3:21은 그 전후문맥 안에서, 초기교회가 세례를 얼마나 폭넓게 이해하고 가르쳤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본문이다. 베드로는 이를 1세기 독자들의 귀에 익숙한 이야기를 들어 설명한다. 즉, 성도가 받는 세례란, 노아의 방주가 단지 홍수 심판을 피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마른 땅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갔던 것처럼, 단지 죄를 피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 나아가는 ‘구원의 전 과정’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결국, 베드로전서는 보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 세례를 재해석한다. 세례란, ‘거듭난 심령의 새롭게 된 선한 양심의 길’로 해석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따라, 악한 자들을 만나는 세상 한 복판을 지나,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르는 그 ‘나그네와 행인의 여정 전체'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회적이지만 동시에 ‘긴 과정’이다. 선한 양심으로 세상을 지나가 하늘 보좌 우편에 이르는 ‘나그네 길 전 과정’을 가리키는 성례인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전서가 가르쳤던 세례 개념의 특징이다.
초기교회에게 있어서, 새신자를 위한 세례 교육서이기도했던 베드로전서는, 신자란 세례를 받았고, 세례 속을 지나가고 있으며, 결국 온전한 세례를 받게 될 존재라고 가르치는 셈이다. 당시, 로마 속에 흩어져서 로마를 상대해야 했던 베드로전서의 수신자 교회들이 세례를 이토록 적실하고도 풍성하게 이해했다는 것이 놀랍고 감동적이다.
베드로전서의 새한글번역에서, 오해를 일으키는 다른 부분들, 예컨대, 2:9도 ‘선택받은 종족, 임금이신 하나님의 제사장 일을 맡은 사람들, 거룩한 민족,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번역되어 원문에 가까워진 점도 다행스럽다.
기타, 새한글번역은 쉬운 표현들로 구어체에 가깝게 번역했기 때문에 젊은 층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교회에게 많이 읽히고 또 사랑 받는 성경이 되기를 기도한다.
채영삼 교수(백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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