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종전선언’ 보다 北 억류 국민 송환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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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아침에 전 세계가 희망을 노래하지만, 코로나가 앗아간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우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 코로나19 확산 이후 날로 심화하는 사회 양극화와 대외적으로 미·중 갈등에 발목 잡혀 점점 외교적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새해 들어 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외교 과제는 갈수록 깊어지는 미·중 갈등 사이에 낀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의 처지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된 대외 상황이 전적으로 우리의 탓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정부의 외교적 무능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우선 새해 들어 우리 정부의 가장 큰 외교 실패는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구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그동안 한국전쟁 당사국 정상들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여 ‘종전선언’을 하는 것을 목표로 외교의 총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그런 정부의 노력도, 문 대통령의 희망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사라지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은 지난 도쿄올림픽 불참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2022년 말까지 ‘자격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북한 김정은이 중국 베이징에 오고 싶어도 제 발로 올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정부는 오랫동안 미국 바이든 정부와 중국으로부터 ‘종전선언’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올인해 왔다. 북한도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는 분위기여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베이징 올림픽을 ‘종전선언’의 최적화된 무대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종전선언’은 중국의 인권 탄압에 대응하는 미국 정부의 대중국 외교 조치에 단단히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조야는 북한의 비핵화가 담보되지 않는 ‘종전선언’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다 북한이 겉으로는 호응하는 척하면서 미군철수 등 무리한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있는 것도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지난해 12월 29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현실을 인정하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한 계기로 삼기로 희망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다”라고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5대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로 설정하고 남북관계 복원 노력에 모든 외교 안보 정책을 집중해 왔다. 북한과 9·19 군사합의를 통해 접경지역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조치를 통한 군사적 긴장 관계 완화를 도모해온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니까 ‘종전선언’은 이 모든 것의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에 단 한 순간이라도 진지하게 호응한 적이 없다. 바다에서 표류하는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총격을 가해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일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 2020 국방백서에 따르면 휴전 이후 지난해까지 북한의 대남침투 및 국지도발 건수는 3,120건에 이른다. 2018년 남북 정상 앞에서 양측 국방수장이 서명한 9·19 남북 군사합의도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이미 사문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은 남북 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비무장지대 ‘도보다리’를 거닐 때 만해도 한반도 평화 통일의 합창이 곧 울려 퍼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한순간의 꿈은 그 후에 반복된 북한의 대남도발로 번번이 깨졌다. 북한은 지난해 1월 김정은의 전술핵 개발 지시 이후 극초음속 미사일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핵 타격용 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하는 등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판문점회담과 평양, 싱가포르, 하노이에서 열렸던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였다. 당시엔 온갖 합의와 선언이 쏟아졌지만,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를 저지하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북한은 김정은 지배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협정이나 합의도 마음대로 했다가 언제든 그걸 휴짓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집단이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민족과 평화를 전제로 약속한 비핵화를 ‘공수표’로 만든 것이야말로 온 세계가 다 아는 ‘사기극’이다.

그런데도 임기 말에 오로지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다. 전문가들은 비핵화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평화 지상주의’로 점철된 ‘왜그더도그’(wag the dog), 즉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과 같은 방식의 대북정책은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 북한에는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 대한민국 국민 6명이 수년째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 문 대통령은 재임 중 남북 정상회담과 평양 방문 등을 통해 세 차례나 김정은을 만났지만,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송환 문제를 단 한 번도 공식 의제로 삼지 않았다. 존재 자체를 잊은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여전히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말았다.

문 대통령과 정부는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도 작고, 성과도 미미한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같은 거창한 구호에 매달리기보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것이 순리고, 그것이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