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락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담임)가 29일 복음과도시 홈페이지에 ‘사람의 곡선, 하나님의 직선’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최 목사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 사람들은 그의 사역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게 일어난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도움을 준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빌 1:12)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 말 ‘도리어’는 헬라어 ‘에르코마이’를 옮긴 것”이라며 “이 말에는 ‘나쁜 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좋은 일인 것으로 밝혀진다’는 뜻이 들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인 ‘의외성’과 ‘반전’과 ‘상황의 역전’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또 “바울은 자신이 갇힌 것이 어떻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빌 1:13)”라고 말했다”며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이 시위대와 감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감옥에 갇힌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로마의 ‘시위대’(프라이토리온)는 황제의 궁과 총독 관저를 지키는 정예 부대였다. 철저히 로마 시민 중에서 선발한 남자들로만 구성된 시위대의 전체 규모는 9,000명에 이르렀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시위대는 전체 시위대 9,000명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위대는 로마 식민지 전역에 배치되어 있었고, 로마에 있는 시위대는 1,000~2,000명 정도였다. 그러니까 바울은 로마 시위대 1,000~2,000명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이라고 셈한 것”이라며 “또한 바울은 이들과 더불어 이 시위대를 유지하는 사람들과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로마에서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라며 “그런데 감옥에 들어오니 합법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로마를 종일 뛰어다녀도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찾아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만 이런 일이 생긴 것도 아니다. 밖에서도 의외의 반전이 일어났다”며 “함께 복음을 전했던 동역자들 사이에 두 파가 생겼다. 평소 바울을 시기했던 사람들 쪽은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다른 한 쪽은 감옥에 있는 바울을 대신하여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을 내는 착한 마음의 순수파였다. 이 두 파가 경쟁하듯 복음을 전했고, 가속도가 붙은 복음이 로마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감이 결정되었을 때 바울이라고 처음부터 이 반전을 알았을까? 아마도 그도 적잖게 좌절했을 것”이라며 “‘하나님, 걸어 다니고 뛰어다녀도 부족한데, 이렇게 손발을 묶어 두시면 어떻게 복음을 전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 버리신 것이다. 감옥 안에서는 2명씩 돌아가면서 24시간 교대로 바울에게 제자훈련을 받으러 왔고, 감옥 밖에서는 두 팀이 경쟁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다.
또한 “밖에서 고군분투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리 복음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탄성을 발했을 것”이라며 “‘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이루었구나!’ 자신에게는 곡선처럼 보이는 이 일이 하나님께는 직선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바울은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라고 했다”고 했다.
최 목사는 “감옥 안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바울은 이제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며 “‘내가 감옥 밖에 있을 때보다 감옥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더 많은 일을 하신다면, 감옥보다 못한 곳으로 가도 하나님은 더 큰일을 하시겠구나’ ‘감옥보다 못한 곳은 없으니, 내가 이곳에서 죽어도 하나님은 오히려 그 일을 통해서 더 크게 일하실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죽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바울은 드디어 저 위대한 고백을 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실제로 바울이 60~70년 동안 살면서 전한 복음보다, 그가 죽은 후 지난 2천 년간 전파된 복음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널리 퍼졌다”며 “바울이 로마 전역에 써 보낸 13권의 편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전 세계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고, 오늘 우리 손에도 들려 있다. 그는 죽어서 오늘까지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바울의 인생이 감옥 안에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바울의 믿음은 오히려 그곳에서 단단해졌다. 바울이 멈추니 하나님이 더 바쁘게 일하셨다“며 “그래서 바울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 우리는 매여도 하나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고 했다.
그는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었다. 동료 유대인들이 죽어나가는 수용소에서 그는 살아남았다”며 “훗날 그는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대의 역작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그는 ‘로고테라피’ 또는 ‘의미치료’라는, 정신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이론을 제시한다”고 했다.
이어 “유대인 그리스도인 바울은 역시 감옥 안에서, 빅터 프랭클이 발견한 정신의 의미를 뛰어넘는, 영적 의미를 발견했다”며 “내가 살아날 것과 전해야 할 복음이 있다는 것과 감옥 안에 있는 순간조차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우리 생각에는 곡선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직선일 때가 있다”며 “우리 눈에는 멀리 돌아가야 하는 길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지름길일 때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