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박사와의 동역이 크로스비를 따뜻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로 이끌었다면 피비 파머 냅(Phoebe Palmer Knapp, 1839-1908)과는 사회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피비 파머 냅은 전형적인 감리교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녀는 16살 때에 23살의 사업가이자 독실한 감리교인인 조셉 페어 차일드와 결혼했다. 피비의 남편은 사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이루어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회사’를 소유한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들의 집은 화려해서 각종 비싼 작품들이 있는 예술실이 따로 있었고 음악실이 있었는데 그 음악실에는 최고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였다.
<피비 파머 냅(Phoebe Palmer Knapp)>
피비 냅은 음악에 재능이 있어 직접 노래하고 연주했으며 곡까지 썼다. 그리고 또한 ‘왕의 딸들’이라는 단체를 비롯해 많은 단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녀의 엄마가 찬송가 가사를 쓰면 피비 냅은 그 가사에 곡을 붙이곤 했다. 피비 냅은 주일학교 곡도 많이 썼으며 주일학교 찬송가 집을 편집하기도 했다. 크로스비는 이 주일학교 찬송가 집에 가사를 보냈으며 냅이 편집한 찬송집의 반을 크로스비가 썼다. 이후 피비 냅은 크로스비와 함께 동역하면서 서로에게 관심과 도움을 주었다.
크로스비와 피비 냅의 동역으로 가장 유명해진 곡이 탄생했는데 그 찬송가는 “축복받은 확신”(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이었다. 이 곡은 미국에서 즉시 인기를 끌었고 미국전역과 캐나다의 대부분의 교단에서 찬송가에 포함되었다.
축복받은 확신, 예수님은 나의 것이다!
오, 미리 보는 영광스런 거룩함!
구원의 후사와 하나님의 사심,
성령으로 태어나, 그의 피로 씻는다.
이것이 나의 이야기이며, 이것이 나의 노래다
항상 나의 구세주를 찬양하라
이것이 나의 이야기이며, 이것이 나의 노래다
항상 나의 구세주를 찬양하라
완벽한 복종, 모든 것이 쉼을 얻네.
난 구세주 안에서 행복하고 축복 받았네
위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보라
그분의 선함으로 채워지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길을 잃는다.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피비 냅은 그의 모든 생애를 사회의 병폐 추방과 자애 운동에 쏟았다. 이 운동들은 그녀의 찬송가 곡과 가사에도 잘 나타나있다. 그녀는 유럽에 한 회의에 참석한 후, 1908년 7월 폴란드의 한 휴양지에서 죽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피비 냅을 만남으로 사회에 눈을 뜨게 되었다. 후에 그녀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자신의 찬송가를 통해 가지지 못하고, 병으로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게 되었다. 피비 냅과의 동역은 하나님이 사회를 향한 그 뜻이 무엇인지를 폭 넓게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사회봉사와 사회복지와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피비 냅을 통해 조금 더 자신의 찬송가를 통해 그들에게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 되었다.
언젠가 패니는 아주 어렸을 때 알았던 오렌지 주에서 아주 먼 길을 달려온 한 선교사를 만났다. 그녀의 수많은 찬송가를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해주었고 한번은 한국에 있는 기독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온 선교사였다. 그 선교사는 그녀를 ‘작은 맹인 패니 크로스비’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자주 이 작은 맹인 패니 크로스비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150마일을 달려오곤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패니에게 그들이 ‘예수 품에서 안전한’(찬송가 417장 ‘주 예수 넓은 품에’), ‘축복받은 확신’(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죽어가는 자를 구원하라’(찬송가 498장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나를 지나치지 마세요, 온유한 구세주여’(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이 나라에서만큼 자신이 다녀 온 외국의 선교지의 모든 나라에서 잘 불린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한국에서 들었던 최근의 찬송가는 ‘은혜로 구원된’(찬송가 608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이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다른 작가들의 찬송가를 경시하거나 자신의 찬송가만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훌륭한 시인들과 작가들을 통해 더욱 배우려는 자세를 가졌다. 훌륭한 많은 사람들의 작품들이 늘 그녀의 기억 속에 있었다. 패니는 짧은 식사 시간조차도 찰스 웨슬리나 윌리엄 쿠퍼, 왓츠, 몽고메리, 보나르, 케블, 뉴턴, 헤버와 훼이버의 시를 들었다. 이 작가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에 쓰였다.
믿음의 조상들은 아직도 살아있네
지하 감옥과, 불과, 검에도 불구하고;
아, 우리의 심장은 얼마나 기쁨으로 높게 뛰는지
우리가 그 영광스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믿음의 조상! 거룩한 믿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당신께 진실 될 것입니다!
다른 훌륭한 사람들도 그녀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중 스코틀랜드의 한 목사에 의해 쓰인 위대한 찬송가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조지 매티슨(George Mathison)이었다. 그는 놀라운 시들을 많이 썼으며, 그의 시는 패니 크로스비에게 매우 매력이 있었다. 그의 시는 패니를 정말 감동시켰으며 그의 찬송가를 좋아했다. 패니가 처음 그의 시를 읽은 후에 작가가 맹인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고 마음속 깊이 그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1880년대 동안에, 패니 크로스비는 비글로 & 메인 출판사, 생키, 커크패트릭(우리 찬송가에 14곡이 실려 있으며 패니와는 40장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과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를 함께 만들었다.), 스웨니(우리 찬송가에 9곡이 실려 있음),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찬송가를 계속 썼다. 그 찬송가에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 8:35), 그리고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말씀에서 영향 받은 ‘주 예수의 이야기를 말해주시오.’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이 있었다. 그녀의 많은 찬송가들은 성경의 이야기를 기초로 했다. 그녀는 특별히 그녀가 ‘구속’(시편 107:2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 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의 시에서 많이 사용한 시편을 좋아했다. ‘오 놀라운 구세주’(찬송가 391장)에서, 그녀는 다윗의 시인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 27:5)와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시 94:22)의 주제를 선택했고, 찬송가 615장 ‘그 큰 일을 행하신’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 126:3)에서 따왔다. 성경은 그녀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의 단어를 그대로 따라 쓰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녀는 메시지에 집중했고 그러고 나서 성령의 감동으로 음악으로 그것을 이해하기 쉽고 즐겁게 만들었다.
1890년대 패니는 찬송가보다는 서정시를 많이 썼는데 하워드 돈과 크리스마스 칸타타 ‘산타클로스’를 작업했고, 하트 당크스와 ‘자니’를 작업했다. 그녀 친구들 중 몇 명은 그녀가 찬송가를 고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패니는 악에 대항하는 선을 표현하는 방법은 찬송가를 쓰는 것 이외에 또 다른 방법도 있다고 믿었다. 찬송가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패니는 그들이 서정시 등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주님께 이르도록 노력했다.
그녀는 계속 찬송가를 썼으며, 1890년대쯤 되자 그동안 너무 많은 찬송가를 써서 그 모두를 기억할 수 없었다. 때때로 그녀가 그 노래들을 들었을 때,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하나의 찬송가만 더 쓰고자하는 압박을 받을 때에도 여전히 그녀는 항상 기도했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기다렸다. 때때로 그 감동은 그녀가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나왔다. 비록 70대가 되었지만 주님은 그녀의 재능을 낭비하게 하지 않으셨고 주님께 받은 사명은 계속되었다. 우리 찬송가에 9곡이 실려 있으며 패니와는 두곡,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군기를 손에 높이 들고’가 있는 존 스웨니(John R. Sweney, 1837-1899)는 무언가 부드러운 것을 원했고, 그래서 그녀는 ‘무엇보다도 내 구세주’를 썼다. 곧 그 찬송가는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죽은 그녀의 사촌 하워드 크로스비 박사에 대한 헌시로 비글로 & 메인 출판사과 작업한 ‘은혜로 구원된’(찬송가 608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을 썼다. 비글로 & 메인 출판사는 다른 수천 개의 작품과 함께 그 찬송시를 보관했다가 수년이 지난 후 발견되어 출간하기도 했다.
패니 크로스비가 쓴 찬송가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중에서 패니가 애정을 가졌던 사람들은 경찰관들과 철도원들이었다. 그녀는 항상 어디를 가든지 그들을 ‘나의 소년들’이라고 부르면서 반갑게 맞이하곤 했다. 그녀가 언젠가 철도원들이 많이 참석한 집회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철도원들을 소년들이라 부르면서 오래전 사역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 오래전에 친구가 뉴욕 시에서 많은 철도원들을 맡았었습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일해야만 했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전차들을 수리하기 위해 기다리는 방에 함께 머물게 되었습니다. 매주 주일 아침 예배 중 마지막 1시간은 열차 차장들과 운전기사들을 위해 배려되었습니다. 비록 그곳은 작고 냄새나고 볼품없는 작은 곳이었지만 약간의 꽃들과 식물들이 뒤덮여있어 상쾌했습니다. 나는 철도 소년들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권면하고 위로했습니다. 수많은 시간들을 YMCA 모임과 선교회에서 그들을 위해 연설했습니다. 내가 쓴 찬송가들을 부르는 강건한 그들의 음성을 들었을 때 나의 마음은 항상 기뻤습니다.”
패니의 찬송가와 복음 성가들은 세계의 모든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축복을 심어주었다. 그 간증들은 너무나 많아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나님은 나에게 놀라운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일들은 나에게 헤아릴 수 없는 축복과 커다란 기쁨을 주었습니다. 때때로 방황하는 영혼이 나의 찬송가를 통해 회복되고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때, 나의 마음은 한량없는 기쁨으로 감동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영광스러운 사역을 주신 것에 대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면서 그분의 일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만큼 귀중한 일은 없으니까요.”
패니 크로스비가 비글로 & 메인 출판사에 지불되어 쓰여 진 찬송가는 약 6,000편이다. 허버트 메인은 다른 출판사나 친구들에게 쓰여 진 것과 일반 시들을 더하여 2,700편 이상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녀의 찬송가와 시들이 8,000편이 넘는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중 많은 찬송가와 시의 대다수는 믿음, 소망, 사랑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렇게 많은 찬송가를 쓴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패니 크로스비가 쓴 시들의 인기는 끝이 없었다. 광대한 땅을 넘어, 바다를 가로지르는 나라에서도 달콤한 목소리의 가수들은 그녀의 복음 메시지를 노래로 옮겼다. 더욱이 수만 명의 성도들에 의해 노래 불려진 그녀의 시들은 전 세계를 넘어 불려졌다. 한편 많은 찬송 시 가운데 어떤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채로운 것은 아이라 생키의 이름으로도 알려진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생키의 비글로 & 메인 출판사에서 그녀의 시들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모든 곳에서 기억하고 존경하는 새로운 시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천편의 패니 크로스비의 찬송가가 불릴 때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 찬송가들은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오늘도 불려지며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열정과 힘을 새롭게 한다. 그 찬양의 메시지는 모든 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선포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패니 크로스비의 사명 감당을 통해서.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가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