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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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금주에 있을 사면심사위원회에서 신년 특별사면 대상자를 선정한다. 그런 가운데 정치권과 교계 일각에서 국민통합을 위해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박범계 법무부장관 주재로 열리는 사면심사위는 20~21일에 예정된 전체회의에서 사면 대상자를 검토한다. 이를 법무부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사면·복권 대상자를 최종 확정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네 번의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그중 2019년에만 3·1절 100주년을 기념한 특사였고 세 차례가 성탄절과 신년을 앞둔 특사였다. 그러니까 이번 특별사면이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사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전직 대통령은 이미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3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39년이 돼야 풀려나게 된다. 현행법상 가석방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을 채워야 가능하기 때문에 두 전직 대통령이 풀려날 수 있는 길은 대통령의 특별사면밖에는 없다.

한국기독인총연합회는 지난 1일 발표한 성명에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교도소 좁은 공간에 가두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인권과 공평, 양심과 애국심, 비전과 진실마저 실종된 듯하다”며 “이제라도 다시 용서와 화해, 평화의 에너지를 만들어보자. 감옥에 있는 전직 대통령을 즉시 사면해 국민통합을 이루자”고 호소했다.

이어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도 13일 발표한 논평에서 “지금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를 5개월 앞두고 아직도 전임 대통령 두 분(이명박·박근혜)이 영어의 몸이 된 불행한 국가에 살고 있다”며 “이제 마지막 기회다. 국민통합과 국격을 위해 전직 두 대통령을 사면하라”고 촉구했다.

교계의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전망이 매우 어두운 게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을 일체 배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그 배경에 대해 “국민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문 대통령이 사면의 조건으로 ‘국민의 동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미 여러 차례 그와 비슷한 견해를 밝혀왔다. 특히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임기 이후 평가에 신경 써야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국민적 동의가 없는 정치적 사면을 결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문 대통령의 사면 결단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어쩐지 궁색하다. 대통령이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나쁘다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국정 운영을 여론의 풍향계에 맞추는 것을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는 없다. 그건 곧 국민 전체보다 지지층의 눈치를 본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문 대통령과 정부가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했다가 지지층이 등을 돌리게 될까봐 극히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경우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화두로 던졌다가 지지율이 급락하는 결과를 가져온 예도 있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는 정부와 여당뿐 아니라 제1야당인 국민의힘까지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전직 대통령들을 사면할 경우 지지층의 분열을, 국민의힘은 중도층의 이탈을 염려해 뚜렷한 입장표명을 주저하는 듯 보인다.

지난 1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그런 분위기를 좀 더 체감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은 39.2%, 반대가 43.7%였다. 반대가 조금 더 높지만, 오차 범위 수준이어서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결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세대별 찬반이다. 60대 이상에서는 67.2%가 사면을 찬성한 반면에 40대에서는 23.7%, 30대에서는 20.5%, 20대에선 15.4%로 급격히 낮아진다는 점이다. 소위 대선의 승부처로 여겨지는 2030세대가 반대하는 사안에 역풍을 염려하지 않을 대선 후보는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 통합 차원의 임기말 사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도 대선 후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로선 안철수 국민의 당 대선후보만이 “국민통합을 위한 대통령의 사면 결단”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전직 대통령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사법적 판단에 따른 법 집행에 있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이 지위 고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거나 함부로 남용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반대로 그 권한이 정치 보복, 또는 정적에 대한 비수로 사용되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12·12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때 내란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고 구속되었다. 그러나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2년이 채 안 되었다. 김 전 대통령이 임기 전에 두 사람을 사면했기 때문이다.

이·박 두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의 일로 재판을 받고 수감된 것을 정치 보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을 임기 중에 단죄하고 임기 내에 사면으로 마무리한 예로 볼 때 이번 사면 기회를 놓친 것이 돌고 돌아 훗날 불행한 정치 보복의 악순환, 그 서막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결국,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 적기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