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시작한 ‘위드 코로나’에 급제동이 걸렸다. 불과 한 달 만에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된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 21일 “하루 확진자가 1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대비했다”는 말을 놓고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대비했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14, 15일 연속해서 방역대책회의를 열었다. 골자는 일상회복을 잠시 멈추고 이전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조치에 준하는 사적모임 인원 축소와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 등 거리두기 방역을 다시 시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비판이, 다른 한쪽에서는 이러다 자영업자만 다 죽는다는 질타가 쏟아진다. 이미 수도권 중환자 병상 가동률이 90%에 육박했고, 의료 대응 역량이 코로나19 환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마당에 신속한 대책을 세우고 국민의 희생을 최소화하는데 전력을 다해도 모자란 판에 촌각(寸刻)을 다투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지금의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정부의 대비가 과연 정상적이었나부터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입으로는 1만 명까지 확진자가 늘어날 것을 예상한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생활치료센터 등의 병상은 줄였다. 이런 역주행은 문 대통령이 자랑한 백신 접종률 세계 4위, K방역이 모든 걸 다 해줄 거라고 믿지 않는 한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러니 의료계에서 병상 가동률을 걱정해 ‘위드 코로나’ 시행이 너무 성급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싹 무시할 수 있었던 거다.
정부가 특단의 조치라며 시행한 ‘방역패스’가 첫날부터 먹통 사태가 벌어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린 탓이라지만 부실한 준비가 원인이다. 마스크 대란 때와 백신 예약 초기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경험이 쌓일 만도 한데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고질병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보건당국이 여전히 청와대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적시에 방역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청와대가 ‘후퇴는 안 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학이 아닌 정치에 방역이 휘둘리고 있다는 증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위드 코로나’에서 후퇴할 수 없다”고 대못을 박았다. 그러더니 확진자 7,000명대 돌파를 코앞에 둔 7일에서야 “방역의 벽을 다시 높이겠다”고 말을 바꿨다. 방역 현장에서 기만하게 대응할 ‘적기’를 놓쳐 둑이 무너진 뒤에 무슨 장벽을 어떻게 높이겠다는 건가.
연일 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자 대한감염학회 등 주요 의료단체들이 지난 13일 ‘긴급 멈춤’이 필요하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현장의 의료대응 및 방역 역량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고, 일선 의료와 방역인력이 한계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보다 못해 정부에 호소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적거리기만 했다. 전문가들이 긴급조치를 당장 발령해도 늦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하는데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12월 한 달이라도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자 청와대는 “목요일 정도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시한을 못 박기까지 했다.
여기서 말하는 목요일이란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이 호주에서 돌아오는 15일(수요일) 그다음 날과 일치한다. 방역 현장은 난리인데 대통령이 돌아와야 뭔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라면 이보다 답답한 노릇이 따로 없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확산이 심각하던 지난 12일 호주로 떠났다. 야당에서 위중한 시기에 한가하게 외국에 나갈 때냐며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청와대는 예정된 국빈 방문이라며 코로나 대응은 대통령이 해외 체류 중이라도 얼마든지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청와대의 발표는 문 대통령이 귀국할 때까지 “조금만 더”를 연발하며 시간을 끌다 적기를 한참 놓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데서 알 수 있듯 납득할 만한 해명이 아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호주 체류 중에 좀 더 신속한 대응을 지시했거나 아니면 누구라도 나서서 책임 있는 조치를 취했어야 맞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면서 정은경 청장을 ‘방역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런 ‘방역 대통령’인 정 청장이 ‘위드 코로나’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한달 만이라도 일상회복을 멈추자고 했는데 정부와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귀국할 때까지 기다리라며 일축했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져야 하는데 누군들 나설 마음이 있겠나.
오늘의 대혼란은 이미 ‘위드 코로나’ 시작 전부터 예견됐다. 영국 등 유럽 나라들이 하루에 몇만 명씩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도 그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하는 무사안일이 그 원인이다. 그 대가가 확진자 4.7배, 위중증 3배, 사망자 10배 증가, 무작정 병상을 기다리다 29명이나 숨지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 대응은 ‘정치’가 아닌 ‘과학’이어야 한다는 말을 입을 부르트도록 했다. 문 대통령도 종교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놓고 “코로나는 신앙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과학과 ‘K방역’으로 포장한 정치방역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하다. 그러니 SNS에 “K방역이 아니라 Kill 방역”이라는 조롱이 난무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