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겠다더니 가스요금 인상?…한숨 나는 부처 간 '엇박자'

기재부 "물가 안정", 산업부 "원가 반영"
13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주택단지에 주민이 가스 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물가가 나날이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공공요금 인상을 놓고 부처별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선제적인 물가 잡기에 나선 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원가를 반영한 요금 현실화가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17개월째 묶인 민수용(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을 놓고 이런 갈등 양상이 더 두드러진다.

15일 정부에 따르면 산업부와 기재부는 내년 1~2월 적용되는 도시가스 요금 인상 여부를 협의 중이다. 가정에서 쓰이는 민수용 도시가스는 요금 상승이 생활물가에 직결되는 만큼, 물가가 높은 시기에는 요금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국제 유가, 액화천연가스(LNG) 증가세에도 불구, 국민 생활 부담 등을 고려해 지난해 7월부터 동결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양 부처는 내년 초 도시가스요금 인상 여부를 놓고 이견이 팽팽한 상황이다.

기재부에서는 물가를 고려한 요금 동결, 산업부는 인상 요인을 반영한 요금 현실화를 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부와 기재부는 이달 20일쯤 발표되는 내년 1분기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연료비 조정 단가도 협의 중이다. 전기요금의 경우 최근 4분기 연료비 조정 단가가 이뤄진 만큼, 2개 분기 연속 인상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 부처의 상황을 살펴보면 도시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접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기재부는 물가 대책이 좀처럼 '약발'이 받지 않는 상황에서 공공요금 인상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9년 11개월 만에 최고치인 3.7%를 기록했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안정 목표치인 2%를 확정적으로 넘어설 전망이다.

다급해진 기재부는 최근 관계 부처 논의를 거쳐 비축해둔 원자재를 중소기업에 우선 판매하고, 급등한 가공식품 가격을 내리기 위해 옥수수·설탕 관세는 한시적으로 낮추기로 확정했다. 기름값도 자영 주유소 가격 인하를 독려하는 등 정책 노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물가 대응 체계의 개편에도 나섰다. 소관 부처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분야별로 '물가 책임제'를 도입키로 했다. 가격·수급 점검 결과, 단기 안정화, 구조적 대응 방안을 포함해 분야별 종합 물가 안정 방안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반면 에너지 총괄 부처인 산업부는 공공요금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올해 국제 유가 상승세가 가파르고, LNG 가격 급등 등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인상 요인을 반영하지 못해 산하 공기업의 실적도 나빠지고 있다. 가스공사는 민수용 요금이 17개월째 동결돼, 올해 말 미수금이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산업부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에너지 정책을 주관한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원가를 반영한 가격 신호 기능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원칙을 고려해 산업부는 요금 현실화 필요성에 더 힘을 싣고 있다.

실제로 산업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에너지 탄소중립 혁신전략'을 보면 내년부터 '원가주의 요금체계'의 단계적 정착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가격 기능 회복을 위해 도시가스 요금, 전기요금 등의 상승요인을 적기에 반영하겠다는 의지 등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경제부처 간 시각차는 이미 지난 9월에도 확연히 드러난 바 있다.

앞서 기재부는 9월 29일 제29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이미 결정된 공공요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연말까지 최대한 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하루 뒤인 같은 달 30일 산업부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원료비 인상이 계속되고 있고 누적 압박이 커져 적절한 시점에 (기재부와) 가스요금 인상에 대해서 다시 협의할 계획"이라고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결국 4분기 전기요금이 먼저 인상되며, 도시가스까지 비싸지면 물가가 빠르게 뛸 수 있단 우려에 11~12월 적용되는 민수용 요금은 오르지 않았다.

일각에선 양 부처가 공공요금 가격 결정 방침에 대한 시각차로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공공요금의 가격을 통한 물가 통제 혹은 공기업 실적 개선에 나서기보다, 수급 안정에 집중하는 게 먼저라는 분석도 이어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에서는 공공요금 가격으로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공급을 어떻게 확대시킬 수 있느냐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재부와 산업부 모두 도시가스요금, 전기요금과 관련해 "조정을 협의 중이며 정해진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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