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 예정된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1년 뒤로 미루자고 주장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 법안 심사가 시작된 지 2주째이지만 양측 간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반면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회가 다음 달 2일인 법정 처리시한에 맞춰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결정하면 정부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 여야가 지난해 가상자산에 세금을 매기기로 결정한 지 1년 만에 스스로 말을 바꾸는 셈이다.
26일 기재부에 따르면 이날 열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소득세법 개정 처리를 재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15일부터 약 5차례 조세소위가 진행됐고 법정 처리시한 전까지 몇 차례 회의가 더 남아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 1월1일부터는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가 시작된다. 가상자산 양도차익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연 250만 원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 세율 20%를 적용해 분리 과세하는 식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소득세법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내년 거래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의 납부 시점은 2023년부터다. 더 구체적으로는 같은 해 5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부터 세금을 걷게 된다. 현재 여야의 주장대로 과세를 유예하면 실제 납부 시기는 2024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세까지 한 달이 남지 않았는데 정치권에서는 유예를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가상자산의 주요 투자자가 대체로 젊은 층이고 내년 대선이 예정돼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실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를 공약으로 걸기도 했다. 같은 당 노웅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에는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내년부터 시행하기에는 과세 체계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지 않아 과세 시점을 늦출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야당도 비슷한 의견이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도 소득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 시행일을 1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공제 한도도 250만원에서 주식 거래처럼 5000만원까지 늘려야 한다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의견이다.
모처럼 정치권에서 한목소리를 내는 만큼 소득세법 개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법을 고치는 것은 국회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에 국회 입장에서는 눈치껏 정부가 뜻을 굽히기를 바랄 수도 있지만, 현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여야는 정부가 세금을 걷을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과세 시점을 미뤄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몇 차례의 조세소위에서도 이와 관련된 질의가 집중됐다고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과세 인프라 등 준비 상황에 대해 국세청과 함께 국회에 충분히 설명했다"며 "정부 입장은 그대로이다. 과세 체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 청와대가 기재부의 의견에 힘을 실어준 점은 변수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얼마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선거를 앞두고 여러 주장이 여야에서 나올 수는 있다고 보지만, 정부로서는 이미 법으로 정해진 정책을 일관되게 지켜나가야 하는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날 조세소위에서는 부동산 거래에 대한 양도소득세(양도세) 공제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올리자는 논의도 함께 진행될 것으로 점쳐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나 양도세 완화에 대해 "정부로서는 신중한 입장"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세금을 더 걷고 덜 걷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혹시 이와 같은 변화로 인해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우려되는 사안"이라고 언급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