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동성애 이슈다. 동성애는 선천적이거나 유전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기인한 죄다. 그것이 또한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동성애만이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죄인 것도 아니고, 가장 큰 죄인 것도 아니다. 사실 우리의 탐욕은 동성애보다 더 큰 죄일 수 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들이 동성애자들보다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유독 동성애가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의 사회가 동성애를 죄가 아닌 사랑으로, 비정상이 아닌 정상으로 둔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죄이지만 우리 사회가 거짓말을 아름다운 것으로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동성애에 대해서만큼은 오늘날 우리의 학교가 자녀들에게 정상적인 것으로 교육하고 있고, 우리의 문화 미디어는 동성애를 아름다운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동성애를 죄로, 비정상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자들을 처벌하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는 그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곳이지만, 세상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이 같은 흐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법안들이 통과가 되면 이미 서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세상적인 법의 기준으로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진리가 검열을 받아야 하는 그런 세상이 올 수밖에 없고 이미 어느 정도 와 있다.
한 때 기독교 문명의 꽃을 피웠던 서구의 많은 국가들의 교회는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조금씩 위축되어 갔고 결국 세상에 삼켜져 갔다. 한국의 교회도 현재 그와 같은 중대한 위기이자 기로에 서 있다.
창세기 41장에 보면, 바로의 꿈 이야기가 나온다. 흉하게 마른 일곱 암소가 아주 아름답게 살진 일곱 암소를 잡아먹는 꿈이었다. 연이어서 두 번째 꿈을 꾸게 된다. 가늘게 말라 비틀어진 일곱 이삭이 무성하게 자란 일곱 이삭을 다 삼켜버리는 꿈이었다.
저는 이 환상이 하나님께서 오늘날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에게 주시는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 사회와 교회의 근간을 뒤흔들만한 아주 심각한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다. 흉하게 마른 암소가 아름답게 살진 일곱 마리 암소를 다 삼켜버렸던 것처럼, 건강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가정과 교회, 학교와 사회를 삼켜 버리기 위한 파상공세가 펼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요셉과 같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국 교회와 사회는 혹독한 흉년을 맞이하게 될 것 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 한 가지가 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 같은 꿈을 보여 주신 이유,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 같은 환상을 보여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교회가 삼킴을 당할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가 더럽고 흉칙한 이 어둠의 영을 삼켜버릴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가 이 흉하게 마른 암소들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는다. 그리고 이 싸움의 중심에 저와 여러분들이 있고, 특별히 이 땅에 허락하신 기도의 용사들이 있다. 새벽마다 밤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우리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을 믿는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3종류의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세계관의 전쟁, 둘째는 문화 전쟁, 셋째는 입법전쟁이다.
세계관은 한 마디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관점”이다. 그런데 세계관은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특정한 관점을 제공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그 관점에 기초한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간다.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또 하나의 세계를 가리켜 “문화”라고 부른다. 마치 기독교적 세계관을 기초로 서구 문명이 탄생했고, 이슬람교적 세계관을 기초로 이슬람 문명이 탄생했듯이 말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화는 다양한 세계관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다양한 문화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문화 간의 충돌은 다름 아닌 세계관의 충돌에 기인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세계관의 충돌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문화 간의 충돌은 그냥 단순한 문화 충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관과 문화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에 반대하는 세력들과 물리적으로 대립하는 “권력 전쟁”의 양상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세계관의 전쟁’으로 말미암은 ‘문화 전쟁’은 최종적으로 ‘입법 전쟁’(권력 전쟁)의 형태로 진화하게 된다. 자신들의 세계관과 자신들의 문화를 녹여낸 법을 입법화하므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의 세계관과 문화를 따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관의 변화는 문화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문화의 변화는 변화된 문화에 익숙해진 대중을 등에 업고 법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법은 그 사회의 정의와 불의, 평등과 차별, 정상과 비정상을 결정짓는 최종적 기준이 되기 때문에, 법의 변화는 결국 자유의 개념, 평등의 개념, 차별의 개념, 인권의 개념의 변화를 낳게 되고, 그와 같이 재정의된 개념은 이 세상의 교육, 문화, 법 집행 등을 통해 우리 모두의 생각과 삶을 다스리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바로 이와 같은 경로를 통해 변화 되어져 온 것이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변화는 ‘세계관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 가운데 펼쳐지고 있는 영적 전쟁의 본질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적대시하는 정치 문화적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법칙을 수호하여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를 이 땅 가운데 회복시키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거대한 사상, 또는 세계관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의 전쟁은 낙태, 동성애나 공교육의 쇠퇴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국지전에 불과하다. 진짜 전쟁은 하나님의 진리를 기초로 한 ‘성경적 세계관’과 하나님의 진리를 인정하지 않고 이에 대항하고 있는 ‘세속적 세계관’ 사이의 갈등이다. (계속)
이태희 목사(그안에진리교회 담임, 윌버포스크리스천스쿨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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