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교회(담임 김주용 목사)가 지난 17~19일 3일간 오후 7시 30분 본당에서 ‘말씀, 그리고 사색과 결단’이라는 주제로 2021년 감사절 말씀 사경회를 진행했다. 사경회에는 전 100주년기념교회 담임 이재철 목사가 강사로 나섰다.
마지막 셋째 날인 지난 19일에는 이 목사는 ‘신앙적인 자녀교육은?’(삼상17:12~19)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목사는 “자녀교육이라고 하면 크게 세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교회교육이며, 둘째는 가정교육, 셋째는 학교교육이다. 여기서 교회교육과 가정교육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했다.
이어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주일학교는 기로에 서 있다. 한국교회가 쇠퇴함과 맞물려 교회학교도 쇠퇴 일로에 있다”며 “우리 세대는 한국교회 주일학교가 몰락하는 것을 바라보는 증인이 될 수도 있고, 교회학교를 다시 부흥시키는 구원투수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한국교회에서 왜 교회학교 아이들이 없어졌는가”라며 “교회학교 아이들은 옛날과 다르게 자발적으로 교회를 선택하지 못한다. 지금은 어느 교회이든지 동네 마을교회가 아니라 큰 지역교회이다. 아니면 서울 전체를 상대로 하는 교회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부모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가용을 타고 교회를 간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교회를 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 교회학교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주일학교에 다닐 적정 연령 아이들의 부모세대가 교회를 떠났다는 의미”라며 “주일학교를 다시 부흥시킬 방법은 하나로, 교회를 떠나간 30·40대를 돌아오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왜 30·40대가 교회를 떠났는가. 지금의 30·40대는 지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세대들이다. 이 세대들이 있기에 미래가 새로워진다. 귀하고 보배 같은 세대”라고 덧붙였다.
또한 “30·40대가 볼 때, 교회가 교회다운지를 생각할 때, 아닌 것이다. 모든 기득권을 장악했던 가톨릭과 맞서 왜곡된 세상과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프로테스트(저항)한 사람들이 개신교를 세웠다. 세월이 흘러 개신교회들은 개교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21세기 민주적인 시대에 가장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져 게토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드로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주일예배 시간에는 장로님들만 기도한다. 이것이 만인 제사장인가? 젊은이들이 볼 때 이런 이율배반(二律背反)이 없는 것”이라며 “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의 핵심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이다. 그런데 헌금 봉투에 이름을 써야 한다. 아무리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 명분을 쌓아도 누가 얼마를 헌금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이 알고 싶으니 이름을 쓰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젊은이들은 아는 것이다. 교회가 30·40대를 몰아내었던 모든 모순과 이율배반적인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인간에 의해 왜곡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그 안에서 그들이 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한다. 그렇게 젊은이들이 교회로 들어오면 아이들은 따라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교회학교는 어릴 때 아이들이 하나님께 굴복하는 DNA를 심어 주어야 한다”며 “아이들이 예배 시간만큼은 재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을 배우게 되면 일평생을 살아가는데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 “우리나라 교회학교 교사는 지원하면 된다. 훈련되지 않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며 “그러다 보니 재미 위주가 된다. 아이들은 현존하는 미래인데, 아이들이 바른 신앙을 하고, 미래의 신앙인으로 사회에 한 몫을 담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여력이 있는 교회는 교회학교를 전담하는 목사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청년들과 더불어 교회학교 교사에 어머니들이 많이 지원을 해야 한다. 어머니들이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신앙적으로 같이 양육해야 한다”며 “일주일에 한 번 교회학교에 가서 내 아이가 신앙인으로 완전히 자랄 수 있다고 한다면 집 안에서 아이들이 버릇없이 만들어 두고 유치원 보내고 예절 바른 아이가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교회학교 교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여기에 가정교육이 대두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정교육을 시키는 가장 좋은 시간과 장소는 식탁이다. 밥 먹으면서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부모의 가치관이 아이들에게 심겨지고 부모의 신앙관이 아이들에게 신앙관이 되며, 부모의 인격이 아이의 인격에 스며들게 된다”고 했다.
이어 “안타까운 것은 식당에서 편하게 밥을 먹기 위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전자기기를 주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와 자식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첩경이 된다”며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이와 밥을 먹는 것이다. 거기에서 아이들의 행동이 다 세워지고, 정서가 깊어진다. 그리고 아이와 밥을 먹으면서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지 상을 가지고 그 상대로 부모가 살아야 한다. 즉, 보여 주면서 밥을 먹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자녀들과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은 공생의 본질을 가르쳐서 공생인이 될 수 있게 자립이 무엇인지를 행하게 하면서 자립인이 되게 하는 것”이라며 “공생의 본질은 먼저, 법의 문제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은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요14:15)”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다 다르다. 성격, 학력, 재산정도 등 다 다르다. 이 이질적인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법”이라며 “법을 지키지 않고 ‘공생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덧붙였다.
또 “두 번째로 공생한다는 예절의 문제”라며 “공생하기 위한 타율적 장치가 법이라면 예절은 자율적인 규범이다. 나의 자식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게 하려면 예의를 갖춘 아이가 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더불어 살길 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공생은 물질의 문제”라며 “공생하면서 자신의 물질에 터치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공생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는 ‘청지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돈은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주머니에 있는 돈의 일부는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위해 맡기신 몫이다. 이러한 사람이 공생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더불어 “마지막 네 번째로 공생은 마음의 문제”라며 “상대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의 빈 터가 있어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에게 공생이 불가능한 것은 자기만 아는 이기심이 가득차서 다른 사람을 품을 공간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몇 사람을 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기도할 때 가족·혈연관계를 제외한 몇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가에 있다”고 했다.
그는 “공생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실생활에서 공생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공생의 대전제가 자립이기 때문”이라며 “자립하지 않으면 공생을 못한다. 성경은 일관되게 우리의 자식들이 자립할 것을 명령한다. 레위기 19장 9~10절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의 법칙이며, 신명기 23장 24~25절은 은혜를 받는 자의 법칙이다. 한끼를 해결하지 못할 때 남의 밭에 들어가서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립하기 위함이다. 평생을 남에게 빌 붙어서 살라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원주민들이 농사했던 농산물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먹고 난 이후 광야 하늘에서 떨어졌던 만나가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땅은 무위도식(無爲徒食)의 땅이 아니라 땀 흘려 자립해서 일해야 하는 땅이었다. 자립인이 되지 않으면 공생인이 아니라 일평생 기생인으로 사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립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법칙은 부모가 먼저 죽는 것이다. 자립심을 키우지 못한 자식을 두고 부모가 먼저 죽게 되면 자식은 어떻게 사는가”라며 “유대인들이 자식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듯이 자립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자립에는 먼저, 경제적 자립이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자립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경제력을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자립은 자신에게 주어진 경제적 여건에 자신을 맞추어 자족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경제적으로 자식을 도와줄 수 있지만, 자식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자기에게 주어진 경제적인 여건에 자기를 맞추어 갈 때, 그 자식의 삶 속에 창의력과 독창력이 생기는 것”이라며 “그 헝그리 정신 속에서 이 세상의 모든 도전에서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 자식들이 새로운 길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이 목사는 “두 번째 자립은 행위의 자립”이라며 “내 자식이 지나간 자리는 다른 사람이 치우지 않도록 내 자식이 행위의 자립이 되게 해야 한다. 행위의 자립인이 될 때, 나의 손과 발이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세 번째 자립은 의식의 자립 즉, 생각의 자립”이라며 “이 세상에는 진정한 자립에 걸림돌이 되는 그릇된 풍조나 관습이 만연해 있다. 특히 그릇된 체면 문화가 세상을 지배한다. 의식이 자립되지 않아 남의 눈에 종속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남의 눈에 종속되는 의식의 비자유인이 아니라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쪽방에 살아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지 옷이 아닌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마지막 네 번째 자립은 영적인 자립”이라며 “주일예배에 참석해 목사님의 설교는 듣는 것은 총론을 듣는 것이다. 그 총론을 바탕으로 매일의 현장의 삶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지를 씨름하며 하나님께 물으며 찾아가야 한다. 이것이 영적 자립이다. 아이들이 식탁에서 이야기 하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자답하면서 영적 자립인 되게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지난 18일이 수능일이었다. 여기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실패할 권리,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그 보다 자립인이 되기에 더 좋은 과정은 없다”며 “세상 사람들은 스펙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공생성과 자립성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들어 쓰신다. 미래는 그냥 오지 않는다. 새로운 미래가 오게 하려면 지금부터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생성과 자립성을 키워 주어야 한다. 미래는 여러분의 식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