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전통은 수도원적 금욕주의는 거부하지만 육정의 문제와 관련해 그것을 십자가와 함께 못박아야 한다(갈 5:24)고 가르칠 정도로 육체의 욕망을 금기시하며 금욕과 절제를 강조한다. 루터는 종교개혁 신학의 금자탑으로 알려진 삼대 논문 중 하나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그리스도인이 육체에 대해 어떠한 이해를 가져야 하는지 기술하고 있다.
이후정 감신대 총장은 과거 「신학과교회」(제7호)에 실은 연구논문 '마르틴 루터의 삼대 논문: 종교개혁 신학의 금자탑'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루터의 논문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지니는 의미를 되새겼다. '그리스도의 자유'는 루터가 1520년 11월 초 발표한 논문으로, 그 계기는 로마교회 신학자들과의 면죄부 논쟁이 진행되는 중 밀티즈의 중재로 교황 레오 10세에게 화해의 편지를 쓸 것을 권유받음으로서 이뤄졌다.
이후정 총장은 해당 논문의 핵심을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케 된다는 것과 △사랑으로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신앙이며 내면적인 것"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자유의 핵심은 신앙이며 신앙은 "덕행의 하나가 아니라 그 능력을 맛보는 체험을 통해 가능한 하나님과의 가장 직접적인 관계"라고 이 총장은 덧붙였다.
루터에 의하면 신앙은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산 샘물과도 같은데 그리스도인은 더할 수 없이 충실한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 종이다. 루터는 특히 인간 본성의 이중성에 근거해 자유를 해명하는데 "사람은 한편으로 영혼에 관하여 볼 때 영적 내적인 새 사람이다. 다른 한편, 육체의 본성에 의하여 사람은 겉 사람, 후패하는 현세적, 외적인, 옛 사람"이라고 한다.
이 총장은 "이 배치되는 대립 속에 한 인간이 존재한다"며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필수 요건은 물론 속사람이다. 영적으로 새롭게 된 의롭고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이다. 이 차원은 외적인 것과 무관하며 영혼의 자유, 곧 의를 이룬다. 어떠한 육의 조건도 영혼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의 자유를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 필요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믿음이 일으켜지며 바로 거기에 자유가 있다. 말씀만으로 영혼은 부족함 없이 부요하며 생명, 진리, 빛, 평화의 구원, 기쁨, 지혜, 능력, 은총, 영광, 축복 등이 다 허락된다"고 했다.
이 총장은 그러면서 "루터는 종교개혁의 대 주제를 여기서 힘차게 밝혔다"며 "그것은 행위에 의해서 구원은 불가능하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와 생명을 주는 신앙에 의한 칭의로 구원하신다는 메시지다. 말씀에 대한 신앙은 죄인 됨을 깨닫게 하며 고난 받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필요를 알게 해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가 소멸되고 죄사함 받음으로써 그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전했다.
루터에 의하면 신앙만이 의에 이르게 하는데 그는 "외적인 선한 행위가 아니라 내면의 인간 안에서 신앙이 지배할 때 죄에서 자유를 얻는 구원의 보화를 누리게 된다"고 말했다고 이 총장은 밝혔다.
루터는 신앙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그에게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은총을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이 총장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거룩하고 참되며 의롭고 자유롭고 선으로 가득한 은혜의 말씀이다"라며 "굳건한 신앙은 이 약속에 매달리는 영혼을 말슴과 밀접히 결합시키며 그 능력에 동참하며 잠겨 도취하게 해준다"고 했다.
또 "이와 같은 동화는 부드러운 영적 접촉에 의해 말씀에 속한 모든 것을 영혼에게 주며 축복으로 충만하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준다"며 "신앙의 위대한 힘이 여기에 있는데 행위는 그것을 못한다. 말씀과 신앙만이 영혼을 다스리면서 그 본질을 분여하며 그리스도인에게 자유를 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루터는 신앙의 능력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우러러 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하나님께 우리가 마땅히 돌려야 할 진실성, 정직성, 믿음직하게 생각 함, 의 등을 돌리는데서 신뢰 즉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신뢰의 근본을 찾는다는 것이다.
루터는 죄를 정복하는 신앙에 대해서도 힘주어 강조했다. 이 총장은 "이러한 유익은 신랑, 신부처럼 영혼과 그리스도가 결합되어 신비 속에 한 몸이 됨으로써 가능해진다"며 "혼인은 서로 가진 것을 동일하게 공유하는 교환을 낳는다. 루터는 여기서 그리스도와 영혼이 서로의 것을 주장하면서 자랑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리스도가 선한 것이라면 영혼은 상대적으로 악한 것들인데 그들 사이에 교환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했을까? 이 총장은 "그리스도는 신부의 것들인 죄, 죽음, 지옥의 고통을 취하고 자신의 것인 의, 생명, 구원, 정복될 수 없는 영원과 전능을 주신다"고 했다.
이 총장은 "그의 의가 모든 인류의 죄보다 더 크고 그의 생명이 모든 죽음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이 승리하심을 입어 믿는 영혼은 죄와 죽음에서의 참된 자유를 누린다. 죄와 죽음이 그리스도에게 지워져 삼켜졌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루터는 또 이 논문에서 만인사제직설에 대해 서술한다. 종교개혁 전통의 원리로 손꼽히는 만인사제직설은 실로 혁명적인 교회론의 개혁 명제로 불린다. 이 총장은 "왕 같은 영원한 제사장 반열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실상 세상의 왕보다 훌륭하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장직 즉 기도와 도고를 행하며 거룩한 일을 서로 가르칠 자격을 가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제사장 직무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이에 따라 공동 상속인, 동료 왕,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현전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라며 "그리스도인의 고귀한 진가는 장엄한 권능으로 만물을 다스리며 제사장적인 영광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며 전능하시며 모든 권능을 주시는 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한다고 루터는 역설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루터는 영과 육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의 원리에 대해 해명해 나간다. 루터에 의하면 영에 있어서 신앙에 따라 인간은 내적으로 풍부하게 충분히 의롭게 되는데 이 신앙, 부요함은 날마다 자라야 한다. 이를 위해 이생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을 제어하며 사람들과 관계 맺는 행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죄인이요 동시에 의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문제는 육체를 훈련하고 적절히 단련하여 성령의 지배하에 두도록 힘쓰는 것이다"라며 "이를 위해 금식, 절제, 노동 등의 훈련이 필요한데 루터는 수도원적인 금욕주의는 거부하지만 금욕적인 삶이 육의 지배를 위해 필수적임을 인정한다"고 했다.
또 "하나님의 형상인 내면적인 사람은 그러나 신앙에 복종, 순응하여 영에 항거, 방해가 안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신앙인에게는 그리스도로 인해 기쁨과 행복이 넘치고 자발적인 사랑으로 자신의 이득을 초월한 비이기적인 태도로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가 주어진다"고 덧붙였다.
이 총장은 "그러한 삶 가운데 계속 두 법 사이의 투쟁이 존재하는데 육 가운데 세상을 섬기고 이기적인 것을 구하려는 반대되는 의지가 남아 부딪힌다"며 "그리스도인은 따라서 신앙으로 영 가운데 거하면서 몸을 제어하고 쳐서 복종시키며 육정과 방탕과 정욕적인 욕심을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극기와 절제가 의롭게 하는 구원은 아니라고 이 총장은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선행의 목적은 결국 몸을 복종시켜 몸의 악한 정욕을 깨끗하게 하며 몰아내는 것을 지향한다"며 "루터는 신앙으로 영혼이 정화되듯이 사랑으로 영혼은 몸을 정화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미하는데 동참하기를 바라게 된다"고 했다.
이어 "몸을 강제하고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선을 행해야 하지만 그 행위의 공적 자체는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발적인 사랑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면서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허락만 생각하는데서 루터는 행위의 역할을 본다. 육체는 징계와 훈련을 통해 온갖 정욕을 억제함을 요하는데 금식, 철야, 노고 등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공적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정육의 극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자체만 생각한다. 그들은 이로써 의롭다함을 신앙 없이 구하며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가장 어리석은 일에 잘못 처하는 것이다"라고했다.
이 총장은 그러면서 "선한 사람이 되지 않고 선행이 불가능한 것은 예수의 비유에서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라며 "그 역은 아니다. 필연적으로 나무가 먼저 좋아야 하며 그것은 신앙을 말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모든 율법에서 해방되어야 순수한 자유 속에서 자유롭게 행할 수 있게 된다. 신앙만이 선한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불신앙은 반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죄의 시작이 되며 결과적으로 악하고 저주받을 일을 행하게 만든다"고 했다.
루터가 말하는 선행은 당시 로마교회가 가르쳤던 선행과 구별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총장은 "로마교회는 인간적인 명령, 교훈과 함께 많은 기도, 금식, 육체의 제어, 나아가서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구해지는 공적들을 종교적 행위로 가르치고 규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루터의 선행은 "신앙의 자유로부터 나오며 선행,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이웃 사랑, 즉 값없이 자신을 주는 무사적인 그리스인의 행위"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루터의 정의도 살펴봤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이웃 안에 산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린다" 이 총장은 "신앙으로 그리스도 안에 살며 사랑으로 그의 이웃 안에서 살면서 전자에게 하나님께 올려지며 후자에서 이웃에게 내려간다"며 "결국 자유는 영적인 차원에서 차묀 자유이며 그것은 모든 죄, 율법, 계명에서 우리 마음을 해방시켜 주는 자유인 것이다. 루터에게 이 자유는 다른 모든 외적 자유보다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기리며 이 총장은 "한국에 복음이 선교된 지 130여년을 지내면서 과연 한국교회는 개신교회의 역사적 유산을 올바로 계승하고 있는가? 아니면 개신교회가 오히려 중세 말 로마 가톨릭교회와 같이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물질주의, 교권의 지배에 포로, 속박되고 외형과 번영, 세상적인 성공과 출세의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실로 종교개혁을 요청하고 있다"며 "오늘은 루터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종들이 다시 일어날 때이다. 때가 악한 고로, 선한 싸움과 영적 투쟁이 힘차게 치러져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