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은 거대한 에너지 시스템과 같다고 했다. 예로 내 앞에 있는 종이 한 장을 태웠다면 재가 남을 것이다. 이 재를 손으로 비벼 후~ 하고 불면 공중에 흩어진다. 종이가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종이의 형태만 사라졌을 뿐, 그 종이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에너지들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에너지는 내 방 어느 곳에 일정한 형태로 남아있게 된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다. 마음도 그러하다. 마음을 억압한다 하여 마음의 증상이나 일정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을 억압하면 몸이 울부짖는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화병이요, 신경증이요, 강박증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화낼 일을 자주 겪는다. 우리나라같이 상대적 박탈감이 많은 나라에서는 이런 짜증 섞인 분노가 끝도 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사람은 순간만 진실하다.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진실은 온데간데없다. 사랑했던 연인과 만났을 때 들었던 그 수많은 말들을 기억해보라. 얼마나 달콤하고, 얼마나 대단하고, 얼마나 진실되고,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 달콤하고 뭉클함이 다 어디로 갔나? 인간은 참 약하다. 약한데 강한 척할 뿐이다. 그래서 강하게 보일 뿐 세상에 강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변상규 - 정신분석이 감정과 신앙을 말하다
욥기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그 시대 배경을 사사 시대일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사사 시대라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시대상이 난무하던 때입니다. 이 난맥상 속에서, 그 학자들의 추정 이 옳다면, 하나님은 욥을 들어 자신의 성실하심과 은혜의 능력을 증거하신 셈입니다. 그런데 욥기는 사사기나 룻기와 달리 창조의 능력을 들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윤리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과응보가 가지는 보응의 원리, 권선징악으로 대표되는 윤리적 가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샤머니즘이 그것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라면서도 이런 것들을 벗지 못한 채 하나님과 그분의 권위나 의지나 계획을 도외시할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세운 이상과 윤리를 신앙의 핵심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이해했거나 소원한 것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경과 다른 종교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매달림으로써 참으로 헛된 고생을 합니다. 욥기는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한번은 풀고 가야 할 숙제였습니다. 이제 그 길을 하나 뚫은 기분입니다. 후배들이 그 길을 포장하고 번지수를 달고 개선하고 더 쓸모 있는 길이 되게 해 주기를 빌어 봅니다.
박영선 - 박영선의 욥기 설교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궁전을 떠나 이런 식으로 세상에 오신 일의 의미를 우리가 정말 이해했다면, 그 사건의 영원한 중요성과 심오함과 놀라운 성격을 조금이라도 파악했다면, 어떻게 우리의 혼과 영이 감동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여기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에서조차 얼마나 이 성탄 시즌을 잘못 맞이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그저 자신에 관해 말하거나 서로에 관해 말하는 시간에 그치고 마는지 말입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성탄의 본질은 단순히 선의와 친절과 행복의 감정이 아닙니다. 그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성탄은 우리의 혼과 영이 감동할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이 권고일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모호하고 막연한 기분이 아닙니다. 강력한 선포입니다. 복음은 나랏일을 맡은 사람이 알리는 포고 사항 또는 라디오나 다른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발표와 같습니다. 이것이 복음에 접근하는 바른 방식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식으로 복음에 접근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복음을 받고도 마귀의 부추김에 넘어가 자기 철학 안에 있는 다른 것으로 왜곡시킵니다. 그것은 이 선포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저자), 홍종락(옮긴이) - 마틴 로이드 존스의 내 구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