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17~18일 오후 1시 30분 본교 대강당에서 개혁신학사상연구소 신학 특강을 개최했다. 이 특강은 온라인으로도 진행됐다. 18일 강연을 맡은 안상혁 교수(합신대 역사신학, 합신청교도연구센터 소장)는 ‘후기 정통주의의 견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안 교수는 “정통주의의 절정기는 1640에서 1725년까지의 시기이다. 정통주의 절정기를 대표하는 대륙의 학자는 칼빈과 베자를 이어 제네바 아카데미를 이끌었던 프란시스쿠스 튜레티누스(Fanciscus Turrettinus, 1623~1687, 이하 튜레틴)”이라며 “대표적인 문서로는 웨스트민스터 포준문서(1645~1648)와 스위스일치신조(1675)가 있다”고 했다.
이어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옥스포드의 신학자 존 오웬(Jphn Owen, 1616~1683)이 대표적인 신학자였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사무엘 루더포드(Samuel Rutherford, 1600~1661)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브레멘, 프라네커, 그리고 레이드 대학에서 성경과 개혁신학을 가르친 요하네스 코케이우스(Johannes Cocceius, 1603~1669)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그는 “먼저,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코케이우스, 튜레틴, 오웬, 그리고 푸더포드의 가르침은 소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가”라며 “오웬에 따르면 그의 시대에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은 더 이상 증명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신앙고백, 설교 그리고 다른 저작들을 통해 충분히 공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이는 영국의 경계를 넘어 대륙의 개혁파 정통중의 신학자들을 아우르는 광범한 일치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인정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한 가지 유의할 내용은 네 사람 모두 그리스도의 순종의 두 측면이 구분되지만 수동적이며 능동적 순종의 차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라며 “코케이우스는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이 서로 분리도지 않고 모두 우리에게 전가됨을 강조했다. 튜레틴과 루더포드, 그리고 오웬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리를 위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하시는 단일한 순종으로 제시되며(튜레틴),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은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포함한다고 강조했다(루더포드)”고 했다.
또한 “율법을 성취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에 고난이 섞여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은 순전히 형벌적인 것이라고만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단지 ‘수동적 순종’이라고 불릴 수 없다(오웬). 튜레틴은 우리를 향한 최고의 사랑으로부터 기원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이 그 자체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선언한다”며 “이처럼 그리스도의 순종의 두 차원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면, 과연 무엇이 때문에 능동적 순종 개념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다리 말해서 이 모든 논의의 쟁점은 튜레틴이 지적했듯이 쟁점은 과연 우리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공로적 의가 오로지 그분 자신이 당하신 형벌에만 기원하는지 아니면 이것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신 것 모두를 포함하느냐의 여부이다. 종교개혁과 개혁주의 전통의 주류 입장을 따라 코케이우스, 튜레틴, 루더포드, 오웬 모두 후자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리고 안 교수는 “둘째, 성경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에 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특히 율법과 그리스도의 순종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라며 “위 네 명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수동적이며 능동적 순종에 관한 가르침을 성경 주해로부터 도출해 낸다는 공통점을 갖는다”고 했다.
이어 “코케이우스, 튜레틴, 오웬, 루더포드의 주해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 성경적인 근거를 결여한다거나 성경과 무관하게 형성된 개념이라는 오해를 교정한다”며 “오히려 이들은 그리스도의 (수동적이며 능동적인) 순종과 의의 전가와 관련한 성경의 주요 구절들을 통합적이며 균형 있게 주해하면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핵심으로 하는 성경적 칭의론의 건전한 주석적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는 “셋째, 그리스도의 순종은 성경의 언약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며 “코케이우스, 튜레틴, 오웬, 루더포드는 성경의 언약 개념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며 “일례로 이들은 아담의 불순종과 둘째 그리스도의 순종을 대조시키는 성경의 본문을 주해할 때, 행위언약을 유용하게 활용한다”고 했다.
또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순종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구속 언약에 기원한다고 가르친다”며 “구속 언약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보증인이 되셨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공로적으로 만든 중요한 근거들 가운데 하나(코케이우스와 루더포드)”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처럼 코케이우스를 포함한 네 명의 신학자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순종을 행위언약 및 구속언약과 관련지어 설명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곧 이들의 시대에 이르러 그리스도의 순종과 성경의 언약에 대한 이해가 상호 연결되어 함께 교리적 성숙을 이루었음을 시사한다”며 “물론 이러한 교리적 발전을 사변화 된 신학이나 차가운 이성주의의 산물로서 섣부르게 평가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성경 계시의 신비를 드러내는 데 일조했으며 이를 통해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찬양하도록 고무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