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요나의 물고기 배 속에 갇힌 것 같은 충격"

목회·신학
목회
김재건 기자
haeil2021@gmail.com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14일 주일예배 설교서 전해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가 "코로나19로 우리들은 그동안 쌓아올린 문명이 물고기 배 속에 갇힌 것과 같은 충격을 경험했다"며 "이제는 새로워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15일 '물고기 배 속에서'라는 제목의 주일예배 설교에서 이 같이 전하며 "어리석음, 편협함, 이기주의의 옛 생활에서 벗어나 생명 중심의 삶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에게 주신 이러한 소명에 삶으로 응답할 수 있기를 빈다"고 밝혔다.

앞서 김 목사는 요나서 2장 1절에서 10절을 본문으로 성경 본문을 풀이했다. 김 목사는 먼저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나오는 "나는 다시 인간이 될 때까지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를 인용하며 "이 대목을 떠올릴 때마다 감동한다. 한 걸음씩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 더 평화롭고 생명이 존중되는 세상을 향해. 한달음에 목표에 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씩 인내하며 나아가면 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본격적으로 요나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 목사는 "요나 이야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이야기다"라며 "짧은 책이지만 그 속에는 온갖 드라마적 요소가 다 담겨 있다. 요나의 성격도 확실하다. 요나는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욘1:2)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마자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욥바로 내려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성경은 다만 그의 행동의 동기를 '주님의 낯을 피하여'라는 말로 갈무리하고 있다. 이 구절은 선악과를 따먹고 나무 뒤에 숨었던 아담의 행동을 표현할 때도 등장한다. 주님의 낯을 피한 삶의 결과는 하강 곧 낮아짐이다. 요나의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욥바로 내려가고, 배 밑창으로 내려가고, 바다 속에 던져지고, 급기야는 물고기 배 속에 삼켜진다.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을 피할 장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어느 냉소주의자는 지옥은 한 순간도 자기를 잊을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옥은 하나님의 부재 경험이다"라며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멀어지려 해도 떨쳐버릴 수 없는 분이시다. 요나가 아무리 낮아져도 하나님의 은총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은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마련하여 두셨다가, 그를 삼키게 하셨다. 지중해에 사람을 쉽게 삼킬 수 있는 그런 물고기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물고기 배 속'이라는 말은 많은 이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암담하고 절망스런 상태를 나타내기에 그보다 좋은 은유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후텁지근하고, 캄캄하고, 악취가 진동하고, 뭔가 왈칵왈칵 넘어오는 데 도무지 피할 곳은 없는 곳이 바로 물고기 배 속이다. 요나가 처한 상황이 그러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특히 "여기서 한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사실 커다란 물고기는 앗시리아 사람들이 섬기던 다곤 신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다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섬김을 받던 어업의 신이다. 물고기 배 속에 갇힌 요나의 상황은 어쩌면 앗시리아의 억압을 받던 이스라엘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 밤낮을 갇혀 지냈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버틸 수 있는지 따지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사흘은 수메르 신화에서 지하 세계인 스올에서 산 자의 땅으로 귀환하는 시간을 가리킨다는 말이다"라며 "요나서는 수메르 신화를 차용하여 더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성경에서 사흘은 변화의 시간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까지 걸어간 시간이고(창 22:4), 요셉이 식량을 사려고 애굽에 내려온 형들에게 간첩죄를 씌워 감옥에 가둔 시간이고(창 42:17), 출애굽 당시에 이집트 온 땅이 어둠에 갇혔던 시간이고(출 10:22), 희생제물의 남은 고기를 처리해야 하는 시간이고(레 7:17),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주님이 부활하시기까지 걸린 시간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이어 "물고기 배 속에 갇힌 요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라며 "그때 비로소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바친다. 2절부터 9절에 이르는 이 기도는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감사 기도와 매우 유사하다. 홍해를 건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요나서 2장이 이 책의 종교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삽입한 시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아울러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사람은 절박할 때 기도한다"며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기도하고,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하나님은 땅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조차 기도로 들으시는 분이시다"라며 "아벨의 피가 흐른 땅의 외침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다. 요나는 삶의 가능성이 다 끊어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인간의 한계상황은 구원의 입구인지도 모르겠다"고도 전했다.

김 목사는 이어 "한계상황이란 유한함에 대한 자각, 무력감, 공허, 질병, 죽음, 죄책 등 우리가 아무 것도 해볼 것이 없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라며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인간은 한계상황에 직면할 때 비로소 본래적 실존으로의 비약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쉬운 말로 하자면 그 동안 집착하고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로부터 놓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또 "한계상황은 돈, 출세, 명예, 권력 따위에 집착하던 삶에서 벗어나 사랑, 우정, 나눔, 돌봄, 아낌, 섬김의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도 했다.

김 목사는 "그는(요나는) 이미 기도의 응답을 받은 자로서 기도하고 있다. 요나는 자기가 겪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낯의 피하여 달아난 삶의 결과임을 자각하고 있다"라며 "바다풀이 머리를 휘감고, 깊음이 에워싸고, 영혼까지 물에 잠긴 것 같고, 마치 땅이 빗장을 질러 자기를 가둔 것 같았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만에 빠져 있을 때, 그 고질병으로부터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를 깊은 바다 가운데로 던지기도 하신다. 고통의 심연 속에서 자기의 실상을 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높아지려고 한다고도 했다. 그는 "사람은 스스로 낮아지기 어려운 존재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를 전해준다. 우리는 자기를 비워 종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낮아질 생각이 없다"며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작은 손해를 참지 못하고, 차별을 받는다고 속상해 한다. 하나님은 때때로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낮춰주신다. 낮춰진다는 것은 쓰라린 일이고 회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러나 낮은 자리에 설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구원의 문은 몸을 낮추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더 넓은 세계에 이를 수 없다"고 역설했다.

요나의 본분에 대한 자각도 살펴봤다. 김 목사는 "가장 낮은 자리, 절망의 심연에서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 "주님의 눈 앞에서 쫓겨났어도, 내가 반드시 주님 계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습니다"(4). 이 구절은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를 떠올리게 한다. 솔로몬은 그의 백성들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성전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 응답해달라고 청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어 "성전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회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자기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는 뜻이다"라며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회복되는 순간, 절망의 어둠은 희망의 빛으로 바뀐다. 목숨은 '네페쉬nephesh'의 번역어인데, 정말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숨 쉬는 존재, 영혼, 감정과 열정의 자리 등을 나타낼 때 두루 쓰인다. 요나는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은 물론이고 살 희망조차 잃어버려 의욕도 다 사라진 상태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기억하였다고 말한다. 절망의 자리가 희망의 문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은 우리 아픔을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시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또 "이 고백에 이르기까지 요나는 땅 속 멧부리까지 내려가야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그는 빗장을 지른 땅 속에 갇힌 채 힘없이 꺼져 들어가는 상황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은혜의 신비 앞에 섰다. 그 덕분에 그는 헛된 우상의 길에서 확고하게 벗어나, 베풀어 주신 은혜를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침내 하나님은 물고기에게 명하시어 그를 뭍에다가 뱉게 하셨다. 그리고 그를 또 다시 파송하신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3장의 요나는 1장의 요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절망의 심연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은 한 번에 벗겨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그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요나서는 니느웨 사람들과 임금 그리고 짐승까지도 굵은 베옷을 입고 참회하고,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폭력을 그쳤기에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 민족의 이런 총체적 변화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 요나의 편협한 생각을 고치고 계셨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요나는 원수의 나라가 망하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은 그들까지도 아끼시는 분임을 일깨워주셨다'며 "요나서가 의문문으로 끝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하나님의 이 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편협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큰 마음에 접속되는 과정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