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대란으로 한국 경제 전반이 휘청거렸다. 대단한 전략물자도 아니고 디젤 차량에 넣는 물 때문에 우리 경제 전반에 이토록 큰 타격이 초래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잖은 충격이다. 정부가 이런 사태를 예측하고 대응했어야 함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에 부심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요소수는 말 그대로 ‘요소’와 ‘물’이 합쳐진 단어다. 비료의 원료인 요소(Urea)에 물을 섞은 액체로 주로 디젤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가스를 정화하는 데 쓰인다. 차량 구동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이게 떨어지면 주행 중에 시동이 꺼지거나 다시 시동을 걸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요소수가 없는 디젤 차량은 무용지물이다.
그런 요소수가 갑자기 품귀 대란이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국내에서 대부분을 수입하는 중국에서 한 달여 전부터 요소 수출 제한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간 별도의 검사 없이 수출하던 요소 등에 대해 지난달 11일 갑자기 수출 전 검사를 의무화하겠다고 공고한 후 나흘 만에 수출 제한조치를 단행했다.
그때까지 정부는 마냥 손을 놓고 있었다. 중국이 수출 제한조치를 취한 이후에도 별다른 대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G20 참석차 유럽 순방길에 오르며 그 어떤 대응 지시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국의 주유소에서 요소수 품절 대란이 벌어지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지난 2일 관련 부처 대책회의를 열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좀 더 일찍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대처했더라면 사태가 이토록 심각하게 확산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정부의 무사 안일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원망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로마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할 때 요소수 얘기가 아예 없었다는 것은 심각하다. 두 나라 외교장관이 만나기 2주 전에 중국이 요소 수출을 제한했음에도 정 장관이 이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순한 외교적 불찰로 보기에는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다.
언론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자 정 장관은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해 몰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대통령도, 외교부 장관도 몰랐다는 건데 이런 중대한 사안을 보고조차 하지 않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伏地不動), 무사안일주의를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비판 여론이 날로 격화되자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8일에서야 요소수 사태에 대해 “아프게 반성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초기에 적극성을 띠고 했다면 상황이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정부의 대응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여전히 모든 게 남 탓이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미리 다 예측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일부 언론이 불안감을 조장하는 바람에 사재기 소동이 벌어졌다는 식으로 화살을 언론에 돌렸다. 여기저기서 책임론이 불거지자 속상한 마음에 한 말이겠지만 중국이 요소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공식으로 발표한 후 한 달간이나 무대책으로 일관하던 정부와 청와대가 피해당사자인 국민을 항해 내뱉을 말은 아닌 것 같다.
정부가 ‘마스크 대란’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강제 배급제’를 들고나온 것도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천재지변이나 경제 위기 한시적 특정 물품의 수급을 통제할 수 있도록 지난 1976년에 제정된 ‘물가안정법’을 근거로 요소수를 배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은 70년대 말 2차 오일쇼크,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등 그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단 한 차례도 발동된 적이 없다. 그런 배급제를 문 정부 들어서만 두 차례나 실시하게 되니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다.
다행히 중국이 한국과 이미 계약을 한 요소 1만8천700톤에 대해 수출 절차를 재개하기로 함으로써 요소수 대란사태는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하지만 특정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재의 체계로는 언제든 제2의 요소수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중국은 한국의 요소수 대란에 관영매체까지 동원해 언제든 자원을 무기화할 수 있다며 훈계를 넘어 위협하고 있다. 이런 굴욕을 또 안 당하려면 당장 수입 다변화부터 꾀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2019년 일본이 자국 기업에 대한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보복 조치로 촉발된 한일 무역 분쟁의 경험이 있다. 당시 우리 경제는 크게 흔들렸으나 그 후 기업들이 발 빠르게 탈일본 대응에 나섬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 당시에도 정부와 청와대는 일본에 대한 수출입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했으나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치밀하게 대응하기보다는 국민적 반일 정서를 고조시키는 데 열을 올렸다. 그 후 민간 차원에서 일어난 보복성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정작 일본 경제에 얼마나 타격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양국 관계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멀어져 버렸다.
만약에 이번 요소수 대란의 원인을 중국이 아닌 일본이 제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부가 지금보다 더 강하게 반일 감정을 자극하며 경제 문제를 국민적 정서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을까. 문제는 어느 나라든 대책 없이 의존하다간 언젠가는 그것이 화(禍)가 되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요소수 대란 사태도 결과적으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부의 친중 정책이 얼마나 위태로운 사상누각(沙上樓閣)인지를 보여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