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수많은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목회와 선교 그리고 예배 사역을 꿈꾸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길은 절대 인기를 얻을 생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아니 절대 가면 안 되는 길이다. 나 또한 오랜 세월 이 욕망에 갇혀 있었고 주변에도 이런 욕망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는 듯하다. 모두가 평생 싸워야 할 주제다. 난 떨리는 가슴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쓰기 시작했고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이렇게 만들어진 곡이 바로 '그 사랑'이다. 스스로도 놀랐고 감동했다. 멜로디와 가사가 이렇게 한 번에 완성되다니! 무엇보다 내가 원하던 복음이 한 곡에 모두 들어간 것 같아서 너무 행복했다. 아버지의 사랑, 은혜, 변함없으심(불변성), 꺾지 않고 끄지 않으심(성취하심), 죽으심(십자가)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의 완성은 오직 예수님뿐. 이 찬양이 한국 교회 어디서든, 전 세계 교회 어디서든 불리고 있다.
박희정 - 그 사랑에 담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미래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염려하고 두려워한다. 이럴 때 교회에 필요한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경건하고 유능하며 건강한 리더십이다. 그 리더십은 지역 교회의 경우 담임목회자와 교역자 같은 전문적 리더의 리더십을 포함한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소그룹 리더와 다양한 사역팀 리더, 그리고 주일 학교와 다음 세대 사역의 교사와 같은 소위 평신도 리더십도 필요하다. 어떻게 1장이 없는 2장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과 냉소, 패배주의를 버리고 성령의 역사에 대한 기대감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한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도에 힘써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내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먼저 순종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우리 교회에는 1년 과정 제자 양육 프로그램이 있다. 그 과정에서 가끔씩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마음 놓고 양육을 받을 수 있도록 참여자의 자녀를 다른 성도가 돌봐 주는 것이다. 주로 교회 소그룹인 목장의 리더가 그 일을 한다.
이재기 - 사도행전에서 리더십을 배우다
그래서 '다시 오실 예수'(Jesus to come again)라고 부르는 것이 본서의 전편적인 재림 신앙의 표현인 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종말의 징조가 보일 때에 재림 직전도 될 것을 무시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날은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재림의 징조를 보고 모두 재림 직전으로만 생각하기에 성경적인 재림 신앙(파루시아)과 다르게 되어 실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단 재림 신앙(?)은 넘쳐나고, 기성 교단은 재림 신앙을 잃어가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시대를 분별하라"고 하셨다. 그것이 현재성이다. 미래만(세상 끝) 징조가 아니라 현재도 미래에 대한 징조가 현실에 나타나고 있는 것을 분별하라는 것이다(눅 12:56). 그러므로 파루시아는 자유주의 종말론신학자들처럼 미래나 현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현재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면 예루살렘의 멸망과 주의 임하심을 함께 말씀하신 예수의 대답이 바로 그것이다.
이수행 - 신앙을 지키려면 신앙을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