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주일을 전후해 종교개혁 운동을 이끈 마틴 루터의 '칭의론'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프로테스탄트 정신이자 복음의 정수로 받아들 칭의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과거 신약학자 김창락 한신대 명예교수의 ''하나님의 의'를 '칭의론'의 감금에서 해방시켜라!'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도 주목 받고 있다.
「신학과 교회」 제7호에 실은 논문에서 김 교수는 루터가 강조점이 '하나님의 의'에 있었지 '칭의론'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루터의 '칭의론'을 하나님의 의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먼저 이 논문에서 "종교개혁 전통에 속하는 교회들은 대체로 칭의론을 교회의 존망이 달려 있는 신앙 조항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복음의 정수로 받아들인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김 교수는 곧이어 "그렇지만 20세기에 이르러서 칭의론은 원시교회의 특수한 선교 상황에서 생긴 투쟁 교설이며 그러한 상황이 사라지고 없는 오늘의 현실에는 아무 쓸모없는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등장하기도 했다"며 "그뿐 아니라 오늘날 대다수 교회들이 칭의론을 죄 용서에 관한 문제로만 이해하서 범죄 행위를 한 가해자인 범죄자가 어떻게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느냐에 대한 가르침 일변도로 오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회의 칭의론에서는 범행의 희생자인 피해자의 구원 또는 권리 회복 문제는 전혀 교회의 안중에 없다는 비판이 대두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종교개혁 시대에 칭의론이 참 교회를 가름하는 척도와 참 복음을 판별하는 시금석의 기능을 했는지 자문하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김 교수는 "왜냐하면 루터이거나 가톨릭교회 측이거나를 막론하고 양측 다 똑같이 '하나님의 의'라는 어구의 '의'라는 명사의 의미를 '의로움'이라는 윤리적 덕성을 뜻하는 추상명사로 곡해한 데서 출발해서 구원 사건을 천명하는 것을 제쳐둔 채 어떻게 구원 사건이 일어나는가 또는 구원 사건이 인간에게 일어나는 절차나 과정은 어떠한가에만 관심을 집중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루터의 의는 자기 자신에게 속한 의가 아니라 자기 외부의 것, 곧 그리스도의 의 또는 하나님의 의가 그의 것으로 여겨진 의, 즉 전가된 의라 했다. 이에 반해 가톨릭 측에서는 죄인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된 그 의는 그 죄인에게 주입된 의라는 것이다.
이에 김 교수는 "루터의 전가설에 따르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죄인은 실제로는 여전히 죄인이지마는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전가되어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 셈이 된다"며 "여기서 인간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라는 루터의 유명한 대립 명제가 나온다. 이에 반해 주입설은 성의론 또는 의화론이 된다"고 했다.
이어 "루터의 전가설 및 칭의론/의인론 대 가톨릭 측의 주입설 및 성의론/의화론은 각각 어느 한 측면에 강조점을 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는 판정을 내릴 수 없다"며 바울이 원래 의도했던 '하나님의 의'애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의'는 사람을 구원하는 구원 행위이고 그 전후에 관련해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하나님의 의'와 관련해서 일어날 문제들을 놓고 신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신학적 논쟁들이다"라며 "필자는 이것을 바울이 원래 말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의'라고 일컫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구별해서 이른 바 칭의론/성의론이라 명명한다"고 했다. 결국 바울이 원래 의도했던 '하나님의 의'가 2천년 간 신학자들의 이른바 칭의론 논쟁에 감금되어 운신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놓여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화급한 중대한 과제는 '하나님의 의'를 그릇된 칭의론의 감금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라며 "칭의론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거나 새로이 덧붙여야 할 이론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꼭 따라야 할 지침들은 일찍부터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로 제시되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를 강조한 바울의 로마서를 인용한 김 교수는 '하나님의 의'가 싸구려 은총 신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은 죄와 용서라는 개념에 붙들려 있는 게 아니라 압제 받고 있는 백성에 대한 절대자의 공정한 판결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기독교의 전통적 칭의론이 죄인이 사지를 통해 구원을 받는 문제를 주제로 삼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범죄의 희생자 즉 피해자의 구원 문제는 끼어들 틈이 전혀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러한 부조리의 실태를 지적한 서남동 교수의 다음의 날카로운 주장도 인용했다.
"'죄' 또는 '정죄'는 사회적으로 볼 때 흔히 지배자가 약자, 반대자에게 붙이는 딱지(label)에 불과하기 때문에 '죄'의 사회학적인 분석 없이 신학적인 이론전개란 오히려 성서적인 근본 의도를 배반하고 역기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죄론에 앞서서 한(恨), 곧 범죄 당한 경우(sin against)가 문제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죄인들'이란 범죄를 당한 자들(those who are sinned against) 곧 억울한 자들이다"(『민중신학의 연구』(서울:한길사), 1983)
이에 덧붙여, 김 교수는 "놀랍게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교회 바깥에서 기독교의 칭의의 교리를 정조준하여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쏜 일이 있었다"며 "이창동 감독이 제작한 <밀양>이라고 하는 영화는 이청준 씨의 중편 소설 '벌레 이야기'를 각색해서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작품의 주제는 완전히 일치한다. 그 둘은 기독교의 칭의의 교리가 현실에서 오용되고 있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롬 8:33-34)를 인용하며 김 교수는 "여기에는 '우리'로 지칭되는 집단이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 우리를 고발하는 자들이라고 지칭된 집단에서 겁박당하고 법정에 고발당하는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인 우리가 하나님께 희망을 걸고 매달리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분이라고 부르짖는 것은 그 분은 사회적인 약자를 편들어서 공정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약자를 구출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천명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재판이라는 것은 원고와 피고 사이에 또는 소송 당사자들 사이에 발생한 문제에 재판관이 개입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공정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쪽의 유린된 또는 박탈당한 그 본래의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법적 장치다. 이와 같이 칭의론에 사용된 동사가 법정적 용어라면 재판관으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역사 속에서 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또는 어떤 인간 집단과 제3의 다른 인간 집단 사이에 벌어진 불의한 관계를 처결하시는 일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이 경우에 사회적 약자로서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을 편들어서 그를 의롭다고 선고를 내리시는 것은 역사 속의 불의와 악을 척결해 그에게 본래적 존재/삶의 권리를 회복해 주시는 일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의로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 사건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칭의론은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법정적 재판 행위와 유비해 개진하는 것이었지만 바울은 칭의론을 개진할 때에 특히 롬 3:25에서 칭의론을 죄인이 죄사함을 받는 문제와 결부시켜 개진했다"며 "그 결과로 칭의론 해석에 불행한 혼란이 야기되었다. 법정적 용어로 사용된 '의'라는 용어에 '의로움'이라는 윤리적 의미가 끼여 들어와서 죄의 문제가 칭의론의 중심적 논쟁점의 자리를 부당하게 점령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법정적 사건으로서의 하나님의 칭의 사건은 그 본래적 삶터가 상실되고 하나님과 개개 인간 사이의 수직적 사적, 심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로 변형되었다"며 "이렇게 되면 이 일은 비유하자면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 개인 사이에서 병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 또는 아기의 엄마가 아기를 욕실에 데려가서 아기의 몸에 묻은 더러움을 씻겨주는 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셈"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법정적 사안과 윤리적 사안을 마구 혼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인 하나님의 의를 올바로 이해하는 첫걸음이며 칭의론 논의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확고할 길잡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