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월 7일은 평양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날로 한국교회사에 기록되고 있다. 사무엘 마펫은 평양을 1890년 1차로 선교 답사를 하여 그곳에 2주간을 체류하면서 교회를 세우려는 계획을 확정하고 그후 8 차례에 걸쳐 도보로 한성에서 평양까지 다니며 준비하였다. 거리상으로는 300킬로가 넘는 거리였기에 7~8일이 소요되었고 어느 때에는 평양의 소수의 사람들과 성탄절을 보내기 위해 홀로 자전거로 5일 걸려 눈바람을 맞으며 가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는 외국인이 거주하는 것이 금지되어있었기에 여관에 머물며 그곳에서 주일이면 예배를 드렸다. 1893년 1월에 마펫은 한석진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된 최치량이라는 여관집 주인과 함께 10여 명이 주일과 수요예배를 인도했다. 최치량은 25년 전에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 직전에 던져준 성경을 갖고 있었고 그 여관방에는 성경으로 도배되어 있기도 하였다.
드디어 1894년 1월 7일 첫 주에 학습자반 10명을 문답했고 그중 통과된 8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최치량, 전재숙, 문홍준, 이동승, 조상정, 한태교, 박정국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명이었다. 나머지 2명을 학습교인으로 받았다. 마펫 선교사는 이 감격스런 첫 공식 예배이자 평양 최초의 '널다리골교회'를 대동문 안에 개척하였다. 이 날에 대해 그는 미국 선교 본부에 이같이 보고하였다.
"그날은 한석진 조사와 저에게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합심기도와 간절한 소망을 통해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모인 것을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조선에서 가장 사악한 이 도성에 일하고 계시며 주님의 사람들을 불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두 명은 40대이고, 나머지는 20~30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기도하는 무리입니다......."
이후 이동승을 첫 교회 영수로 선출했으며 최치량을 집사로 안수했다. 이동승은 마펫의 어학 선생이었으며 교인들을 잘 지도하여 장로로 채택되었으나 안수 받기 전 1900년 5월에 병사하였다. 이처럼 평양에 교회의 시작은 1893년 3월경에 제 2차 선교 여행에 최치량의 여관방에서 마펫과 한석진과 최치량 등 불과 몇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고, 그후 1893년 홍종대의 집을 구입하여 12월에는 성탄예배를 드렸다. 일 년이 경과한 그 다음 해에 마침내 그 땅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마펫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갖고 그의 발자국이 평양 도성에 다 찍힐 정도로 발품을 팔면서 열정적으로 노방전도를 하였다. 그는 청교도의 개척 정신과 제자화 교육을 누구보다 철저하게 실향하였으며 개척기 때에 남다른 전도 방법으로 현지인들과 사랑방 교제를 쌓았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신앙 공동체가 되어 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그는 1894년 선교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1893년 10월에 평양에 도착하여 석 달 동안 그곳에 머무르면서 사랑방에서 전도 사업을 계속했습니다. 나는 그 방으로 떼 지어 오는 방문객들을 맞으면서 매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오후에는 1,2시간씩 대동 강변과 변두리를 다니며 사람들이 모인 곳에 전도하였습니다. 이 노방전도에는 두 가지 효과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널리 전하였고 둘째는 서양 선교사가 왔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저명한 인사의 집으로 초청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겠다고 한 후에는 저녁에 그 집에서 성경학습을 하였습니다. 주일 아침에는 우리 사랑방에서 정식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사회와 설교를 하였고 오후에는 아이들을 위한 주일학교를 개설했습니다. 저녁에는 한석진 조사가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매우 진지하였고 찬송을 부를 때에는 그 뜻을 알고 진심으로 불렀고 기도할 때에는 무엇을 간구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회중 기도를 할 때는 그 뜻을 함께 모았습니다."
마펫 선교사는 이처럼 평양의 주민들과 같은 생활을 하며 저들과 교제하면서 그들의 참된 이웃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 당시 사랑방에서 조선인들 특유의 냄새와 특히 겨울에는 통풍 창이 없는 방에서 여러 시간을 함께 보낸 다는 것은 매우 힘들기도 한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가버나나움이라는 작은 어촌으로 오셔서 저들과 함께 하면서 제자화하며 말씀하신 그 모습을 그대로 그 곳에서 행한 것이었다. 마펫이 저들과 친구처럼 행한 것이 저들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서로 주안에서 한 형제가 된 것이었다.
이처럼 평양에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큰 역할을 한 주역을 꼽는다면 바로 여관집 주인인 최치량이었다. 그가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자기의 집을 마펫과 그 일행에게 제공하지 않고 배척하였다면 교회가 세워지기 전의 준비 과정을 있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토마스 선교사가 전해준 성경과 그 당시의 목격자였음으로 토마스선교사와 마펫선교사와의 선교의 인과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주도면밀한 인도하심으로 볼 수 있다. (계속)
강석진 목사(「근현대사로 읽는 북한교회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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