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통제와 지배 밖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더 이상 바로의 확실성과 예측 가능성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 그들에게 광야는 위험 속으로 자유 낙하를 하는 상황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바로가 주는 일거리가 없으면 어떻게 돈을 구할 것인가?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제 그들은 바로의 빵 공급이라는 확실성만 다시 얻을 수 있다면 자유를 포기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바로가 주는 일거리를 잃으면 삶에 큰 위험이 찾아온다. 팬데믹이 맹위를 떨치면서 시스템의 실패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사람들은 소리 높여 변화를 촉구했다. 하지만 바로를 벗어나 광야로 향한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을 직시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게 만들 수 있다. 광야는 더없이 기쁜 곳이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불안해하고 안전한 옛날을 그리워하게 될 수 있다.
월터 브루그만(저자), 정성목(옮긴이) - 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성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교회를 향한 비판의 수위도 도를 넘어선 것 같다. 혹자는 '코로나 방역에 실패해서 그런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난 동의할 수 없다. 방역에 실패하고, 대처에 미흡한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였기에 그렇다. 교회가 욕을 먹고 짓밟히는 수준에 이른 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맛을 잃어 버린 소금과 같았기 때문이다. 교회다움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나는 기도한다. 이 저서가 코로나 사태 이후 위축되어 있는 한국 교회에 위로의 메시지가 되고 다시 달릴 수 있는 강력한 동인이 되기를 원한다. 아울러 우리의 후대들에게 '교회'에 대하여, '교회다움'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꼭 추천하는 교과서이길 소망한다.
백윤영 - 교회가 길을 찾다
한국 교회의 이주민에 대한 관점이 계속해서 공존이 아닌 선교에 고정되어 있다면, 한국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이주민들과 한국 교회와의 간격은 좁혀질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이주민들에 대하여 더 이상 선교의 대상으로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조셉 A. 피츠마이어(Joseph A. Fitzmyer)는 사도행전이 그리스도적 교회의 실제적 역사임을 선언하면서 그의 사도행전 주석을 시작한다. 그는 사도행전의 역사적 사료를 통해 역사성을 의심하는 회의주의자들의 의견을 반박하며, 교회 역사는 실제적인 사건들의 기록이고 세계 역사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당시 예루살렘교회가 유대교 또는 유대인 혈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비춰볼 때, 안디옥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은 안디옥교회가 새로운 교회의 형태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권주은 - 다문화 교회의 모델: 안디옥교회